삶이 피곤하고 마음이 상할 때
*** 삶이 피곤하고 마음이 상할 때 / 시편 143:1-12
시편 143:1-12,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눈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3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같이 흑암 속에 두었나이다. 4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5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7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9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11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12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 들어가는 말
지난주일 주보 ‘신앙의 생활화’에 이 내용을 실었습니다.
어느 잡지사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의식 조사를 했습니다. 주제는 ‘일상적 삶에서 오는 나쁜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의 몇 가지 질문과 응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속상할 때 어떻게 하는가?
20대들의 대답입니다. ①술을 잔뜩 취하도록 마신다. ②디스코텍에 가서 진땀나도록 흔든다. ③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소리지른다. ④문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한다. ⑤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난다.
30대나 40대들의 대답입니다. ①술을 마신다. ②무조건 집을 뛰쳐나간다. ③드라이브를 한다. ④책을 본다. ⑤친구를 만난다. ⑥노래방에 간다. / 20대나 40대가 주로 노래방에 가서 많이 불렀다는 노래는 ‘소양강 처녀’가 제일 많았습니다.
2)당신이 선택한 그 방법으로 속상한 게 풀렸는가?
이 질문에는 단 한 명도 이런 방법으로 속이 풀렸다든지, 상한 감정이 치유됐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밤새도록 술 마시고 속이 쓰려 죽을 뻔 했다”, “밤새도록 술 마시고 다음날 해장국 먹느라 돈만 들어갔다”, “노래방 가서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다가 이비인후과 신세졌다.”는 등 자신들이 선택한 방법이 자신의 감정을 치유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3)당신이 선택한 방법 가운데 어느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서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당신은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 있다면 몇이나 있는가?
이 질문에는 92.5%가 “그런 친구가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세상에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온전한 삶의 만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사노라면 기쁠 때도 있지만 마음이 상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사소한 오해나 말다툼에서 또는 서로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심에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에서, 슬픔과 고통의 현실 등. 마음 상할 일들은 친하지도 않는데 매일 만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나 나라의 형편을 보면 가슴 답답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렇게 삶이 피곤하고 마음이 상하는 현실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전도서 1:8절에서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라고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이 고백합니다. 사람의 구멍 난 가슴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시편 본문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는 다윗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윗은 대적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마음이 상하고 비참한 심경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이렇게 삶이 극도로 피곤하고 마음이 상할 때 취한 다윗의 태도에서 길을 찾아봅시다.
1. 마음이 상할 때는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봅시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이는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행하신 일들을 되돌아보며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난날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일이며,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신 일, 그리고 ‘자신에게 복을 내리고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하신 약속,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등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지난 날 하나님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자신에게 떠올리기 위함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믿음의 불씨입니다. 야고보서 5:13-14절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앞서 설문조사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람들은 마음이 상하면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좌충우돌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사람들은 흥분된 마음으로 떠들면서 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잊어보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적인 마음으로 떠들고 경거망동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것이 됩니다. 출애굽기 14장에는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바로가 보낸 기병대의 추격을 받는 상황이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니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였습니다. 당황한 이스라엘 백성이 술렁거리며 인도자인 모세를 원망하면서 아예 애굽으로 돌아갈 태세를 보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선언합니다. 출애굽기 14:13-14절입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즉 술렁거리지 말고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마음이 비참하게 피곤하며 심령이 상할 때, 조용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되돌아보며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면 속만 더 상할 뿐임을 안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과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잠잠히 하나님을 생각하며 의지하는 것이 상한 영혼이 치유 받는 최상의 비결입니다. 다윗은 시편 62:5절에서도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24-26절을 봅시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이처럼 삶이 피곤하고 마음이 상할 때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돌아보면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참된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이 상할 때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일어나야 합니다.
본문 6절을 봅시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5절에서 되돌아보고 생각했다는 것은 내적 행동이며 정신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나 6절에서 “손을 폈다.”는 것은 외적 행동이며 결단을 의미합니다. “손을 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라는 표현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행동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못난 척하며 사는 사람, 없는 체하며 사는 사람, 모르는 체하며 사는 사람들보다, 잘난 척하고 있는 체하고 아는 체하며 사는 사람이 10배 이상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자신의 믿음이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사람보다, 스스로 믿음의 자부심을 가지고 나타내며 자랑하는 사람이 훨씬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됩니다. 야고보서 4:6절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마음이 상할 때 세상을 보거나 사람의 도움을 구하게 되면 고통만 더하게 됩니다.
미국 예일대학교 신학부의 교수였던 헨리 누엔(Henri J.M.Nouwen)이 쓴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Healer)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네 왕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전 세계를 탐색하여 특수한 과학을 배운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왕궁을 떠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네 왕자들은 다시 한 곳에서 만나 서로 배워온 과학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첫째 왕자는 한 조각의 생물의 뼈만 있으면, 거기에 붙일 근육을 만드는 과학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둘째 왕자는 뼈에 근육이 붙어있다면, 피부와 털을 돋아나게 하는 기술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셋째 왕자는 근육과 피부와 털만 있으면, 사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넷째 왕자는 사지만 완성되어 있다면,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술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네 형제는 자기들이 배워 온 기술을 실험하기 위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 동물의 뼈 한 개를 주웠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기술을 발휘하여 그 뼈에 근육을 붙이고, 피부와 털이 돋게 하고, 사지를 만들고, 그리고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큰 사자가 숨을 토하며 일어나더니 그 큰 입을 벌리며 네 형제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발톱으로 할퀴고 날카로운 이로 물어뜯어 결국은 네 왕자를 모두 죽인 후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들의 능력이나 과학문명의 힘을 믿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파괴하면서 온갖 문명의 이기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행한 파괴와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로 인하여 스스로 자멸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피해 중의 하나가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입니다. 아마 자연들도 말할 수 있다면 인간들로 인하여 받은 자신들의 상한 마음을 토로할 것입니다. 다윗은 “나는 주를 향하여 손을 폈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폈습니다. 이 간절함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도록 하며, 자신의 행할 길을 알게 해 달라는 겸손한 소망을 담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행하게 해 달라는 호소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 8-10절입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9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저는 기도하면서 자주 내가 지나온 삶의 길을 돌아봅니다. 이렇게 하면 당시에는 잘 몰랐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분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어렵고 힘들 때에 나 자신은 허덕이며 걸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과 상황과 환경을 통하여 내 삶을 도우셨음을 너무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지쳤던 마음이 다시 힘을 얻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면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강력한 기도는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서 다윗도 그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다니엘 9:19절을 봅시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요한 웨슬레가 남긴 유명한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라는 말입니다. 이는 ‘가장 최선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함께 하셨다거나, 앞으로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은 항상 현재여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과거에 잘 했던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앞으로 잘 하겠다는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비록 지금의 삶이 피곤하고 마음이 상한다고 할지라도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지금 일어서야 합니다. 속상한 마음, 참담한 아픔으로 한숨짓는 마음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번민하는 마음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아픔이나 상한 심정을 노출시키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할 때, 조용히 하나님을 향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는 자들을 만나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