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비밀과 능력
***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비밀과 능력 / 요한복음 6:1-13
요한복음 6:1-13,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 들어가는 말
읽은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외울 정도로 잘 알려진 예수님의 이적입니다. 특히 네 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몇 안 되는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이 본문으로는 여러 번 말씀을 전한 바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본 이적의 여러 의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차원에서 내용을 살펴보려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고 부릅니다. 거의 같은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이 다른 것은 예수님의 많은 이적 중에서 몇 가지만을 골라서 설명과 설교를 덧붙이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특히 이 시간의 본문말씀인 ‘오병이어의 이적’사건은 ‘육신의 떡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신 생명의 떡과 대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비밀’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전하신 로마서 6장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비밀’과 내용을 같이 합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비밀이며 가장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 복음서 모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비밀과 능력’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요한복음 6장에는 오병이어(熬餠二魚)의 이적 이야기와 이적을 통하여 나타내시려는 예수님의 설교가 들어있습니다. 1-10절은 이적의 서론이며, 11-13절은 이적 사건, 14-25절은 이적의 후기입니다. 26-58절까지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비밀에 대한 가르침이 성찬식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적의 내용은 잘 아는 대로 ‘어린 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가 든 도시락으로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배부르게 먹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이적의 의미는 단순히 배고픈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는 사실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영생하도록 하는 하늘의 양식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즉 육신의 양식을 통하여 영의 양식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26-27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이 이적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는 이유를 봅시다. 53-5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그리고 로마서 6:3-5절을 봅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증언하십니다.
※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어떤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장 쉽게 알려면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보면 됩니다. 요한복음 15:4-5절을 봅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리고 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바울의 고백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즉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실 때에 아직은 제자들이 ‘당신 자신과 연합 되지 못한 것’을 아시고 이 이적으로 제자들을 깨우치십니다. 본문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시자 곁에 있던 안드레가 조금 더 나은 발상을 밝힙니다. 그래봤자 도토리 키 재기이지만, 그나마 이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굳이 이 사실을 밝힌 것은 앞으로 제자들이 해야 할 일과 이 말씀을 읽는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해야 할 사역을 깨우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도 예수님과 연합되지 않으면 생명의 떡을 먹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필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4-5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나타나는 능력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는 길은 앞에서 읽었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많이 알고 대단한 믿음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생활 속에서 순종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신앙의 이론이나 지식, 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순종하는 삶입니다. 본문 10-1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사람들을 섬기신 것(service)입니다. 마태복음 4:23절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에서 나타내신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인생의 육신적 필요를 채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복음을 전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무리들이 피곤과 굶주림에 지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에서는 그 사실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5:32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고 하십니다. 어떤 성도들은 기독교가 마치 인간의 영혼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이 육신이 있음과 그 육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소작인들이거나, 주인을 모시고 있는 일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먼 길을 가야만 집에 당도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굶주리고 지쳐 있는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육신의 음식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약 2:15-17). 그래서 지금도 제 3세계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반드시 음식이 따라갑니다. 기아대책기구, 굿 네이버스, 월드 비전 등이 떡과 복음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역사하시는 참 주인이신 예수님이 사시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일을 할 때에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1절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능력으로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게 되면 결코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 되지 못합니다. 로마서 10:2-3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면 당연히 자신의 뜻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면 그의 삶에서는 말 그대로 ‘오병이어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예수님과 연합한 삶을 살게 되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면 이루게 된다고 하십니다. 신나는 일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정말 복된 삶을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 하나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솝의 우화입니다.
어느 숲에 왕 노릇하는 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자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여우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저 사자를 숲에서 쫓아낼 수 있을까?’하고 궁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꾀를 생각해내고는 사자에게 도전장을 보냈습니다.
“너 사자는 들어라! 이제부터 이 숲의 동물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나니까 사자는 그만 왕좌에서 내려오기를 바란다.”
사자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미심쩍어서 ‘동물들이 무서워하는 증거를 대라.’고 했습니다. 여우는 ‘나를 하루만 따라 다녀 보면 알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당장 여우의 뒤를 따라 숲을 다녀 보았습니다. 아, 그랬더니 정말 동물들이 여우를 보고 줄행랑을 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토끼며 노루는 물론이고, 곰과 멧돼지도 도망을 쳤습니다. 여우보다 힘도 세고 덩치도 큰 동물들이 모두 슬금슬금 도망을 쳤습니다. 이것을 본 사자는 저 여우에게 뭔가 막강한 힘이 생겼다고 생각을 하고는 그만 짐을 사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동물들이 여우 앞에서 도망친 이유를 알지요? 여우 때문이 아니라 여우 뒤를 따라 다니는 사자를 보고 도망간 것이지요. 즉 여우가 다른 맹수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사자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힘과 능력과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면 사탄과 그 하수인들을 비롯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를 당할 수 없습니다(롬 8:38-39). 주님과 연합한 승리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