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려면
***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려면 / 여호수아 3:1-6
여호수아 3:1-6, “1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 들어가는 말
오월은 가정의 달이며,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지킵니다. 이 시간에는 가정이 대를 이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려합니다. 거두절미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신명기 6:1-2절입니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사도 바울이 신앙의 가문을 이어온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디모데후서 1:5절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이처럼 가정에서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엘리 대제사장의 가정은 이 믿음의 대를 이어가지 못하여 가문이 패망했습니다. 이렇게 가정에서 믿음의 대를 이어가게 하는 근본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믿음의 대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의 근원입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의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위대한 생명의 약속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약속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과 연단의 시간을 지난 후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찰나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2년도 안 되어 들어갈 수 있었던 약속의 땅을 40년 동안 징벌과 훈련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이제 40년 전에 불순종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그 자녀들이 자라서 약속의 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시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3절을 봅시다.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이제 내일이면 그토록 기다리던 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지켜야 할 사항을 백성들에게 가르칩니다. 백성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그들이 머물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에게도 이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려면 우리가 머무는 자리에서 떠나야 하고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에 미련이 남아서 주저앉아 있거나 머뭇거리게 되면 결코 약속의 땅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2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고는 하나님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고사성어 중에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깊고 깊은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몹시 나쁜 사이를 두고 ‘오월지간(吳越之間)’이라고 합니다. 와신상담은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는다.’는 말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오와 월, 두 나라가 서로의 원한을 갚기 위한 오직 한 목표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원한을 갚기 위하여 이렇게 고통을 감내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약속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인내하며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인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13-14절에서 자신의 각오를 이렇게 밝힙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려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분명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자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헤아릴 수 없도록 번성하게 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대를 이어 지금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약속의 땅인 가나안 앞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약속을 의지하여 여기까지 왔던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약속된 가나안은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약속하신 삶의 자리입니다. 지금의 우리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모두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가나안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이며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약속은 앞서 읽었던 요한복음 1:12절과 3:16절의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약속’입니다.
여러분은 이 약속을 100% 확신합니까?
지금 육신의 생명이 끝나도 이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할 수 있음을 확신합니까?
이 약속은 단 1%의 의심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야고보서 1:6-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 확신은 지금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부르실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믿음의 등불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준비만큼은 결코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약속을 확실하게 붙잡으십시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처럼 이 땅에서 호화롭게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다가 그 끔찍한 지옥에 들어가시렵니까? 저는 차라리 나사로처럼 거지로 살더라도 하나님의 품에 있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신하는 사람은 이 땅에 살 때에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1-32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약속이 성취되도록 약속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약속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믿고 받아들이느냐?’ 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약속이라고 할지라도 믿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 약속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여서 그 약속이 내 삶에서 이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약속이 내게서 이루어지기 위하여 취해야 할 행동은 가장 먼저 지금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지금의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는 약속의 자리로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가나안은 아무에게나 그냥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혹독한 광야가 있고, 반드시 건너야 할 죽음의 강인 요단강이 있습니다. 광야와 요단강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지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11:12절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침투해서 빼앗는 것처럼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머뭇거리고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주님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의도적으로 적당한 신앙생활을 유지합니다. 그런 삶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40년을 맴돌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도록 훈련받았습니다. 모든 불평과 원망과 불순종의 요소들이 고난의 삶을 통하여 녹아졌습니다. 이제 광야의 끝자락인 ‘싯딤’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인 요단강으로 향합니다. 이른 아침, 싯딤을 떠나 요단에 이르렀습니다. 이 요단만 건너면 가나안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기 부모들이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서두르다가 실패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일 후에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점검 사항을 지시하셨습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이스라엘은 모든 준비를 철저히 점검해야 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 준비하는 일 중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약속의 방향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차지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나기 전, 또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일을 경험하기 전에는 반드시 성결 작업을 거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는 크고 위대한 일을 준비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받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또 다른 약속의 방향은 ‘땀을 흘리는 수고와 헌신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9절에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2: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러한 수고와 헌신을 마다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24절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모든 것을 전부 투자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온 몸과 마음으로 따라가십시오.
전도자 ‘헨리 무어 하우스’의 일화입니다. 그가 아주 힘든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근심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기 부인의 짐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들어갈 때였습니다. 자신이 오는 것을 본 소아마비를 앓는 그의 어린 딸 ‘미니’가 기쁘게 반겼습니다. 그는 딸을 안고 입 맞춘 후, “엄마는 어디에 있니?”하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이층에 계셔요.” “그래, 엄마에게 줄 짐 꾸러미가 있단다.” 그러자 딸이, “아빠, 그것 내가 엄마에게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나섰습니다. “아니다 아가. 네가 어떻게 들고 가니? 너 혼자서는 못 들고 가잖니?” 그러나 딸은 애교를 부리면서 “그건 그래요 아빠. 하지만 짐은 내가 들고 아빠가 나를 안고 가시면 되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린 딸 ‘미니’와 짐을 함께 안고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주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그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근심했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안고 가시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도 없으시고 어기지도 않으십니다. 내가 그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그 약속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3:14절에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 약속 안에서 여러분과 가정의 모든 삶이 진정한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