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희망의 노래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046회 작성일 2020-07-21 12:41
*** 희망의 노래 / 하박국 3:16-19
 
 하박국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공동번역) “16 그 소리를 듣고 나의 뱃속이 뒤틀립니다. 입술이 떨리고 뼛속이 녹아내리며 아랫도리가 후들거립니다. 우리를 덮쳐 오던 백성에게 재앙이 떨어지는 날만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17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 데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18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19 야훼 나의 주께서 힘이 되어 주시고 사슴처럼 날랜 다리를 주시어 나로 하여금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십니다.
 
** 들어가는 말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품은 절대적인 신앙 중의 하나는 ‘소망’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이지요. 뿐만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세상에서의 희망적인 삶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을 강하게 하는 신앙적 요소입니다. 이 소망과 희망을 강렬하게 어필하는 성경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희망의 고백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저는 이 희망을 말할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소설가인 ‘O.헨리’의 단편소설인 ‘마지막 잎새’라는 작품입니다. 예전에는 교과서에도 실렸던 작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존스’를 기억하십니까? 폐렴을 앓는 존스는 침상에 누워 창밖에서 떨어지던 낙엽을 헤아리면서 간호해 주는 친구 ‘수우’에게 ‘저 담장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존스의 아래층에 사는 늙은 화가 ‘베어만’은 40년 동안 아직 걸작을 그려보지 못했습니다. ‘수우’는 노인에게 존스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정말로 마지막 낙엽과 함께 떠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수우가 창문의 휘장을 올려보니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벽돌담 벽에는 담쟁이 잎 하나가 그대로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잎새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존스는 그 마지막 잎새를 보면서 희망이 생겨나면서 병세가 호전되게 됩니다. 그 마지막 잎새는 아래층 노인이 남긴 걸작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면 작은 희망 하나라도 잡으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애플사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의 대부이자 세계적인 거부였습니다. 애플 컴퓨터, 아이팟, 아이맥, 아이폰, 아이패드 등. 세계의 IT산업을 선도했습니다. 그는 2004년 췌장암을 선고받고 투병하면서 살기위해 수술과 치료를 거듭하다가 2009년 10월에 6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이미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였던 2005년에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런 연설을 남겼습니다.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겠지요.”
 
그는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죽음을 앞두고는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과 명예와 부귀영화라고 할지라도 그 어떤 도움도 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스티브 잡스처럼 세상의 둘도 없는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력을 누렸던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도서 3:12-13절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2:24절에서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누렸던 솔로몬의 고백처럼 인생에서 누리는 소소한 기쁨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러한 행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고, 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다의 16대 왕인 ‘요시야’의 시대부터 사역했습니다. 하박국서의 내용은 신정론(神正論)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신정론이란 ‘악의 존재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이론인데,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악의 세력들이 선한 사람을 억압하고 삼켜도 보고만 계시느냐?’라는 하박국 1:13절에 나오는 하나님께 대한 하박국 선지자의 항의입니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환경은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의 침략 소문으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더욱 두려운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6절). 게다가 생활의 궁핍으로 고통이 더해지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연과 바벨론을 통하여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들이 열매를 내지 않았으며, 밭작물들은 적군에게 약탈되고 짓밟혀서 수확이 없었습니다. 양과 소도 바벨론의 약탈에 의하여 폐허가 되고 비었습니다(17절). 한 마디로 총체적인 재난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상황 같으면 감사는 고사하고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 18절의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는 고백처럼, 환경적인 조건을 초월하여 그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능히 자신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시편 55:22절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래의 회복까지도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진정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을 노래하게 하는 희망은 무엇입니까?
 
‘화석(化石)’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수성가하여 엄청난 재벌이 된 50대의 중년사업가입니다. 그는 유럽 여행 중에 자신의 주치의가 수행 비서에게 건 전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주치의의 말은 ‘사업가가 말기 암이며 잘해야 앞으로 1년 정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절망감이 온 몸을 감싸서 자포자기와 허무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헛 살아온 것을 깨닫습니다. 정신없이 살면서 일구어놓은 일들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그토록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그 보다 더 귀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다 놓치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1년 앞두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를 키워 준 계모를 찾아가 고개를 숙여 감사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만나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지내며 형제의 우애를 되새겼습니다. 수십 년 만에 옛 전우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 이후로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말들도 떠올랐습니다. 그 말은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 늘 “예수 믿으라.”고 하면서 들려주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서 1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분투와 분주함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두 딸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자신도 별 수 없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는 인생은 먹고 살기 위한 삶 그 이상이며, 창조자가 준 시간은 귀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에 잠긴 채 이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오늘은 계속 이런 우울한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네요. 이유는 희망이라는 것이 이런 암울함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터넷의 발달로 가만히 앉아서 세계 속의 사건과 상황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SNS(Social Network Service)인 페이스북(Facebook)이나 트위터(Twitter) 그리고 세계 최대의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You Tube)를 통하여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많은 전문가들은 말하기를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의 대유행) 을 일으킨 코비드 19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누리던 이전의 환경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온 세계의 국가경영 방침이 바뀌었으며, 경제생활이 무너지고, 상호 불신과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지진, 화산, 홍수, 이상기후 등의 자연재난도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파상적인 형태로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영토 분쟁으로 말미암는 국가 간의 군사적인 대립도 극심해지며,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위한 공격성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인들도 피해의식 과잉으로 인한 의혹과 감시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부의 편향적인 사상으로 말미암아 신앙마저 위기로 몰리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하박국 선지자 때의 이스라엘 형편을 봅시다. 본문 16절입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그 소리를 듣고 나의 뱃속이 뒤틀립니다. 입술이 떨리고 뼛속이 녹아내리며 아랫도리가 후들거립니다. 우리를 덮쳐 오던 백성에게 재앙이 떨어지는 날만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갑작스러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과부화가 걸려서 온 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고, 맥이 풀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 몸의 힘이 빠지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말은 바로 이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노래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온 몸이 두려움으로 떨리는 때에 희망을 노래합니다. 본문 17-19절을 봅시다(주보에 나오는 공동번역으로).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 데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18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19 야훼 나의 주께서 힘이 되어 주시고 사슴처럼 날랜 다리를 주시어 나로 하여금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총제적인 난국 속에서 이렇게 노래할 수가 있습니까? 전쟁의 흉흉한 소문, 소유의 절대적 빈곤,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인 먹을 것이 없는데도 환성을 지르고 기뻐 뛰면서 노래한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지요? 그런데 이 말씀에서 가장 핵심 포인트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라는 구절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의 상황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환난 중에서도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경에는 하나님께 대한 표현이 수없이 많지만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종합 편은 시편 91편입니다. 1-8절을 봅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에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그 많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기꺼이 죽음을 택하고 고난을 달게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이 약속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방금 읽은 아래의 14-1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그 조건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을 노래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을 노래하게 하는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신뢰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눈물 나게 할지라도 이 상황을 아시며 우리를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가 처한 환경 속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일하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주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고 하십니다. 흔들리지 말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이 어려운 시기를 인내하며 주님의 은혜를 믿고 희망으로 삼은 우리들에게 기쁨과 구원의 승리를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울 때도 이 희망의 노래를 잊지 마시고 주님을 신뢰하여 주님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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