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소중한 것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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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4-08 16:55
*** 내게 가장 소중한 것 / 빌립보서 3:7-14
빌립보서 3:7-14,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들어가는 말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가장 소중합니까? 나를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조선 최고 의학 교육기관이었던 경성의학전문학교 (京城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경성의전에 입학할 당시 ‘돈이 없어서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속을 항상 잊지 않았습니다. 1950년 월남하여 부산에 복음병원을 세웠고, 자신은 병원 건물 옥탑방에서 기거하며 밤낮없이 환자를 보살폈습니다. 덕분에, 그가 근무한 병원에서는 어떤 시간이라도 아픈 사람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병원비가 없는 사람을 위해 자기 월급을 가불해서 대신 병원비를 내주는 그런 마음 따뜻한 바보였습니다. 남북 분단으로 이산가족이 되어 해어진 아내를 그리워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이 의사는 장기려 박사입니다. 이분은 지금 우리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초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선생님께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께 발급된 월급수표를 어떤 노숙인이 사용하려다 신고로 잡혀 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이 사람에게 적선을 하려는 데 마침 가진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냥 드린 겁니다. 아이고, 저 때문에 이분이 괜히 경찰서까지 와서 고초를 겪으시니 이거 미안해서 정말 어쩌지요.” 어느 날은 한 환자가 병원비가 없다고 한탄을 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의 월급을 미리 받아 환자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려고 했으나 병원에서 거절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선생님이 돈이 없어서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할 판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던 선생님이 환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밤중에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눈치를 봐서 살짝 도망가세요.”
장기려 박사가 이런 인술을 펼친 이유는 ‘하나님과의 약속’에 있습니다. 그는 이 약속이 가장 소중했으며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마치 본문말씀 7-9상반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이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분명한 신앙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빌립보는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를 거쳐서 유럽으로 들어간 첫 성이었으며,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두 번째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의 초청을 받고 유럽에 건너가 최초로 세운 교회였습니다(행 16:11-40). 그 곳에서 얼마의 제자를 얻었지만 박해로 감옥에 갇혔고, 찬송 중에 기적이 일어나서 감옥을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간수의 온 집안에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는 등 바울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전도 여행 때에도 들렀고, 다른 교회에서는 물질적 원조를 받지 않았지만 빌립보 교회로부터는 선물을 기꺼이 받았습니다(빌 4:15-18). 사도 바울은 이처럼 친밀한 교제를 하던 빌립보 교회에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의 내용 중에는 ‘기뻐하다.’는 단어가 무려 16회나 사용되었고,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내용이 21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내용은 바울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전부였으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바울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안고 있던 신앙의 문제에 대하여 조언하면서, 자신에게 보내준 사랑에 감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신앙의 문제는 율법주의자들의 위험과 교회 내의 불일치의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강조하면서 새 언약인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가르칩니다. 빌립보서 2:1-4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본문 7-9절을 봅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 지금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물음에 대하여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즉 지금 내가 사는 시대적인 환경과 상황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아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경과 상황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환경과 상황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지금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까? 지금 온 세계가 전염병으로 두려워하고 원인과 타결 방법을 찾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뜻이 이루기까지 모든 환경과 상황을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4:24-2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전염병을 처리할 백신이나 피할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있을 재난의 징조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6-7절입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주님께서 예고하신 이 재난은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 긴 기간 동안 점차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미 이 재난들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만 그 때를 염두에 두고 미리 마음과 믿음을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은 마지막 시험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3:15-17절을 봅시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이 내용 때문에 예로부터 666의 표가 바코드, 베리칩 등 여러 억척같은 주장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고, 우상을 만들고, 기적을 일으키며, 그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에게 경배하는 사람에게 어떤 표를 주게 되며 그 표를 가져야만 모든 사고파는 상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표를 받지 않게 되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이쯤에서 하나 물어봅시다.
지금 우리 앞에 이런 일이 닥쳤다고 가정했을 때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과감하게 표를 거부할 수 있습니까? 표를 거부함과 동시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산다고 해도 생필품을 비롯하여 그 어떤 물건도 사거나 팔 수 없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살 수도 없습니다. 자동차를 소유할 수도 없고, 땅을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아마도 살려고 한다면 원시시대 생활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믿음을 지키는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지금 우리의 환경을 보십시오. 이 전염병 때문에 교회는 예배하기 위하여 평소의 3분의 1도 안 되는 성도들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전염병이 두려워서 예배를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얼마나 믿음을 지키려고 하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두렵습니다. 만일 우상숭배를 거부하여 표를 받지 못하면 육신의 생명이나 삶이 위태로워지고,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으면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집니다. 요한계시록 14:11절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나 예로 들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이렇게 표 하나로 모든 것이 통제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가 경영하는 일에는 대부분이 현금을 사용하지 못하고 신용카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동차 주차도 카드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 국민재난기금을 분배할 때도 카드를 지급한다고 합니다. 만일 정부가 일반 모든 거래를 카드로만 하도록 명령한다면 이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상숭배를 강요하면서 이 카드를 대신하여 어떤 몸에 삽입할 수 있는 삽입 형을 사용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시행될 수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에 부착한 하이패스 기능처럼 그런 시대가 오겠지요. 이미 세계는 이런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다만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타나는 것만 남았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분별해야 할 환경과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내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말씀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영의 생명, 부활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즉 영의 생명이었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요? 우리의 믿음이 이러한 때를 대비하여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막상 그런 일이 닥칠 때에라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21:34-36절을 봅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혹시 ‘목사님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믿음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준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을 주님과 함께하는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의 생명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세 다 가져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돈이나 세상의 물질로는 영의 생명을 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물질을 가졌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육신의 생명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릴지라도 지키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4:12절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자들과 손을 잡고 상생을 말하는 배도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분별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도자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아직은 기회가 있을 때에 환경을 살피고 믿음을 잘 준비하여 가장 소중한 영의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주님이 준비하신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