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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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4-24 16:24
***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 요한복음 6:43-51
요한복음 6:43-51,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예배, 사랑, 영생 등. 많은 생각과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가슴이 따듯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을 욕하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나의 언행의 실수나 잘못된 것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욕되게 되지 않도록’간구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큰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11-12절입니다.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그리고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고 영화롭기 때문에 그의 백성 된 그리스도인도 거룩하고 영화로운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영광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하신 큰 두 날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혼의 죽음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 내 영혼이 거듭난 부활의 날이며, 다른 또 한 날은 우리 육신이 이 땅에서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영화로운 날입니다. 이 영광이 가능하게 된 것은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15:20,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오늘은 우리에게 이 큰 영광과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 주님이 주신 이 큰 은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마지막 호흡하는 그 순간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의 이 영광의 소망이 내 안에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이 들어있는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를 끼고 있는 벳세다 들녘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오병이어 이적’으로 불리는 사건은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이적입니다. 특히 요한은 이 이적의 사건을 생명의 떡과 연결시켰습니다. 즉 세상의 떡이 사람의 육신을 살리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이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더욱 자세하게 풀이하여 ‘예수님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본문 48-5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이미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창조하시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이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이후에 사람을 ‘육신(바사르, flesh)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6: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즉 사람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신 영적인 죽음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그 때의 상황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마을 이름이 ‘베들레헴’이었는데 그 이름의 의미는 ‘떡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장소가 소나 나귀의 거처인 ‘마구간’이었고, 출생 직후에 강보에 싸여 누여지신 자리가 짐승들의 먹이 통인 ‘구유’였습니다.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이 죽은 사람을 살려주시려고 생명의 떡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마구간은 영이 죽은 인생들이 사는 세상을 의미하고, 짐승들은 영이 죽은 사람들의 의미합니다. 이 죽은 영혼을 살려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통에 누우셔서 말씀하십니다. 본문 뒤쪽의 54-57절을 봅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즉 ‘나를 먹으라.’고 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면 영생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죄로 죽은 영혼을 다시 살게 하셔서 영생을 주신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사람입니다.
본문 44-45절을 봅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사람들이 ‘내가 예수님을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고, 이 예수님이 나의 구주되심을 믿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셔야 가능합니다. 즉 저나 여러분처럼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고 아버지라 부르고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로마서 8:9절에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도 없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주님이라고 부르지도 못합니다.
요한복음 10: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예수님께서 양의 목자가 되시는데 이 목자는 자신의 양의 이름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양을 단체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씩 불러서 인도하십니다. 즉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 각자의 상황과 환경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의 생명과 삶의 풍성함으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0: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려는 것이라.” 이렇게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겠다고 약속하십니다(본문 44절). 본문 앞쪽의 39-40절을 봅시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부활을 이미 보장 받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을 봅시다.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사야 54:13-14절 말씀을 인용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인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순종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순종한다는 것은 그의 삶에서 행위의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이라는 말 자체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을 뜻합니다. 이렇게 그리스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말미암는 삶의 열매가 있게 됩니다. 삶의 열매는 에베소서 5:9절에서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표현했고,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덕목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열리는 열매들입니다. 이처럼 이런 성령으로 말미암는 덕목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타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즉 삶의 열매가 있을 때에 기도의 응답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삶의 열매에 대한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1920년대의 일본에 병을 달고 살았던 신실한 그리스도인 여인이 있었습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작은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녀는 가게를 하면서 찾아주는 모든 고객에게 매우 정직하고 친절하여 멀리까지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고객이 많았습니다. 작은 구멍가게였지만 트럭으로 물품을 구내해 올 정도로 호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게 때문에 주변의 다른 가게들은 물품이 팔리지 않아서 가게 문을 닫을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그녀에게 근처 가게의 폐업을 염려하자 심성이 고운 그녀는 물건의 양과 종류를 줄이고 그런 물건을 찾는 손님이 오면 ‘우리 집에는 없으니 건너편 가게로 가보라.’고 다른 가게로 자신의 고객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점점 고객이 줄어들고 수입도 줄어들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평소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그녀는 여유로운 시간에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소설을 탈고하여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그 소설이 ‘빙점’ 이라는 소설입니다.
이렇게 이웃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나누었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여인은 바로 빙점의 저자인 ‘미우라 아야꼬’입니다. 이렇게 자신보다는 이웃을 생각하고 자신의 욕심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을 실천했던 아야꼬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보상을 하셨습니다. 빙점이 신문사 최우수 작품으로 당선되고 많은 상금을 받았으며, 이후에 노벨 문학상까지 받아 엄청난 상금을 받게 됩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배려한 미우라 아야꼬에게 하나님께서는 부와 명예를 함께 주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 삶에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를 원하는 은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성실하게 순종하여 삶의 열매를 나타내십시오. 삶의 열매가 없는 기도는 공허한 기도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내놓으셔서 영생의 영광과 소망을 주신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한 이 이름에 걸맞은 삶의 열매를 나타냅시다. 예레미야 7:22-23절입니다.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리고 요한복음 15: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영광과 소망을 품은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의 삶으로 나타내어 영광의 그날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