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7,473회 작성일 2016-10-26 23:16

***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 누가복음 5:1-11

누가복음 5:1-11,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이르시되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 들어가는 말

욥기 5:7절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고생하는 것은 불꽃이 위로 오르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대로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평생을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지 어려움을 겪고 고생을 합니다. 다만 사람마다 고생하는 것이나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요즘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생명을 포기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사회적인 고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 즉 갈릴리 호숫가의 어느 마을에서 몰려드는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려고 호숫가의 한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 배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의 것이었는데 그들은 지난밤에 고기잡이를 나섰다가 한 마리도 못 잡고 빈 배로 돌아와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하시고 배 위에서 호숫가에 있는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씀 가르치기를 마치신 예수님은 그 배 주인인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즉시 대답하기를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는 배를 저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한 동네 친구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배를 불러서 함께 그물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잡은 물고기는 두 배를 가득 채웠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놀란 시몬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 장면을 머릿속으로 연상해 보십시오. 만일 내가 그곳에 있었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시몬 베드로가 말한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당신 말을 한 번 믿어 보겠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의 반응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잔뼈가 굵은 그들로서는 파격적인 것입니다. 아마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물을 내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날이 더워지는 시간에는 물고기가 깊은 곳에서 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에 일하도록 기껏 그물을 씻어 놓았는데 다시 그물을 내리는 헛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삶이 힘들고 지쳐있을 때 ‘혹시나’ 하는 요행 심으로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찾아봅시다.

※ 인생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잠언 16:9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시며, 19:21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10:23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인생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약한 인생일 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 자신의 인생이라 할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고집입니다. 즉 사람들은 더 나아갈 수 없을 때까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끝장을 볼 때까지 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을 의지한다는 것이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나 현실도피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은 무능하고 무기력합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문명과 과학과 기술을 보면서 스스로 능력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지만 지진, 태풍, 홍수, 해일 등. 자연 재난 앞에서는 그저 무기력할 뿐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이들 형제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다 동원했지만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지난밤 어두운 호수에서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아침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명했지만 그들은 순순히 따랐습니다. 즉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시몬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라고 표현합니다.

지금의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여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번만 지구를 흔드셔도 살아남을 인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39:7-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 피할 곳이 없으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7절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지만 여전히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할 때가 있으며, 최선을 다해서 시험 준비를 했지만 70점 밖에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했지만 여전히 진전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무기력함과 세상의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자신의 무기력함과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어느 방직공장에 갓 취직한 여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몇 주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드디어 방직기계 앞에서 정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장은 여공에게 기계작동을 가르쳐준 후에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네가 지금까지 배웠지만 일을 하다보면 기계가 고장 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모든 일을 멈추고 즉시 나에게 와야 한다.” 며칠 후, 그 여공이 방직 기계를 조작하는데 갑자기 옷감의 올이 풀렸습니다. 그 풀린 올 때문에 천이 잘못 짜이게 되었습니다. 여공은 기계를 끄고 풀린 올을 바로잡으려고 손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올을 바로 잡으려다가 이 실 저 실이 엉켜서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십 분을 진땀을 빼다가 할 수 없이 반장을 찾아갔습니다. 반장이 와서 두어 군데 손을 보니까 간단하게 고쳐졌습니다. 반장이 여공에게 “언제 고장 났느냐?”고 했습니다. 여공은 ‘몇 십분 전이라’고 했습니다. 반장이 “그러면 왜 이제야 왔느냐?”고 하니까 여공이 “제가 고치려고 최선을 다했거든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반장은 여공에게 다시 다짐을 시켰습니다. “기계가 고장 났을 때 너의 최선은 스스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즉시 나에게 오는 것이다.”

여공은 반장이 너무나 쉽게 고치는 것을 보고는 정말 황당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일이 얽히고 설 켜서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고, 삶의 무게가 무겁고 고통스럽게 짓누를 때에 나 스스로 그 일을 풀어보려 하다가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됩니다. 기계가 고장 나고, 일이 잘 못되고, 몸이 병들고, 앞길이 캄캄하여 인생의 밤이 드리울 때에는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만일 시몬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지를 잡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랐다면 그는 빈 배의 고통만 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며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또 다른 호수 이야기를 봅시다. 마가복음 4:36-39절입니다.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게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어부 출신만 네 명이 있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고기잡이의 베테랑이라고 해도 거친 풍랑에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재주로는 도저히 더 이상 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 없이 일어나시더니 거친 풍랑을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람도 물결도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자신들은 죽도록 고생하다가 결국 포기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쉽게 해결하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예수님께로 향하십시오.

예수님께로 향한다는 것은 자신을 전적으로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봅시다. 지금 내가 여행사의 상품을 구매해서 해외 휴양지로 여행을 떠난다고 합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챙겨서 안내자의 인도를 잘 따라가면 됩니다. 준비된 숙소, 준비된 식사, 준비된 행선지 모두 안내자를 잘 따라가면 됩니다. 요한복음 10: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이렇게 양이 목자를 따르듯이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께로 향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호박벌을 아십니까? 호박벌은 몸통이 동글동글하게 생긴 귀여운 몸을 가졌습니다. 몸길이가 평균 2.5cm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입니다. 사실 호박벌은 신체구조상 잘 날 수 없습니다. 몸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고 가벼워서 떠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런 호박벌이 꿀을 모으기 위해 하루에 약 200Km 이상 되는 먼 거리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닙니다. 체구와 비교하면 천문학적 거리를 날아다니는 셈입니다. 호박벌은 그 힘든 몸을 가지고 매일같이 꿀을 모으기 위해 비행을 합니다. 어떻게 그 작고 뚱뚱한 몸으로 기적 같은 비행을 하며 그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닐 수 있을까요?
제가 호박벌이 아니어서 그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호박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오로지 꿀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꽃을 찾아다닙니다. 자신이 잘 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생각할 줄도 모릅니다.

디모데후서 2:3-4절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느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왜 그리스도인을 병사로 표현했겠습니까? 병사의 특징 때문입니다. 일단 군인이 되면 사생활이 없습니다. 오직 명령에 의해 살고 명령에 의해 죽습니다. 오직 자신을 부른 국가에 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것이 병사입니다. 호박벌이 오직 꿀을 모으기 위하여 비행하고 꽃을 찾듯이 그리스도인은 오직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사라고 표현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예수님께 맡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상황이나 환경에 대하여 원망도 불평도 하지 않으며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환경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면 인생이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풀어 자유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누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헨리 포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장애물이란 목표지점에서 눈을 돌릴 때 나타나는 것이다. 목표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면 장애물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눈을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하면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도 능히 이겨내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이렇게 주님께 고정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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