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것과 누리는 것
*** 받는 것과 누리는 것 / 로마서 9:30-10:4
로마서 9:30-10:4,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어느 중년 부부가 20년이 넘게 죽도록 일하고, 번 돈은 거의 저축을 해서 드디어 자기 집을 장만했습니다. 30여 평의 아파트를 사던 날 부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는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그토록 원했던 자그마한 화단을 만들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갖추고는 베란다 카페라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상업을 하는 부부는 아침 일찍 함께 가게로 나가서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이들도 공부하느라 늦은 밤에야 겨우 얼굴을 볼 정도였습니다. 집안 청소와 빨래, 아이들의 식사까지 파출부로 해결했습니다. 집을 장만하고 부부가 오붓하게 저녁 시간 후에 차를 마실 상상을 하며 만들었던 작은 베란다 카페는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보지를 못했습니다.
어느 날, 출근했던 부부는 급하게 필요한 것이 있어서 아내가 집에 들렀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 향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내는 눈에 들어온 광경에 잠시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 광경은 자신이 애지중지 하는 베란다 카페에 파출부가 앉아서 창밖을 보면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자신도 한 번 앉아보지 못한 곳에 말입니다. 아내는 그 순간 자신이 이 집을 장만하느라 고생 했던 일들과 저 파출부처럼 그 자리에 앉아서 여유로운 인생을 누리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여유를 다른 사람이 누리고 있습니다. 아내는 그제야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하지?”라는 깨달음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주인과 객이 뒤바뀐 현상이 지금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 이야기는 인터넷에 어느 부인이 올린 실화입니다. 이야기 속의 부부는 죽도록 일하여 좋은 집과 좋은 환경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것을 누리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일하는 파출부는 비록 남의 집에서 일하지만 그들이 마련해 놓은 것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저의 형님 목사님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나라 안에 있을 때에는 몰랐는데 외국에 나가보니 우리 국민이 제일 불쌍하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힘들게 일하여 돈을 버는데 정작 쓸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벌 줄은 아는데 누릴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안타깝고 서글픈 현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하고 받을 줄만 알았지 마음껏 누리고 잘 쓸 수 있고 누리도록 구하지도 않고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전도서 5: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런데 6:2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소유와 누림은 전혀 다릅니다. 앞의 이야기가 생각나지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시간에는 받는 것과 누리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인 이스라엘 자손들과 이방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선민이며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약속을 받은 백성입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생명에 대한 약속도 소망도 없습니다. 에베소서를 통하여 이 사실을 잘 표현하십니다. 2:2-3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러한 상태가 바로 이방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보장 받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오히려 대적하여 하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이스라엘의 가지를 꺾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잘려나간 빈자리에 이방인들을 접붙이셨습니다. 11:17-21절입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의 일부가 잘려져 나간 이유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지 않고 자신의 뜻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차려 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선민의 자리를 이방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선민의 권리를 가지고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이방인인 우리들이 선민의 자리를 얻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누리고 있습니까?
※ 자신의 생애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중요도의 순서를 바꾸어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돈이 중요한 줄로 생각해서 죽도록 돈을 벌다가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의 적신호가 켜지고 좌절하기도 하며, 명예와 권세를 쫓다가 돈과 사람을 다 잃고 외톨이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율법사, 서기관들 등. 지도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요한복음 11:47-48절입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 때문에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12:42-43절에는 유대인 관리들의 어리석음도 나옵니다.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모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3-4절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인터넷에 올라온 사연입니다. 어느 음식점에서 영업을 시작하려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어려 보이는 한 여자아이와 앞을 보지 못하는 어른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음식점 주인은 그들의 행색만 보고 밥을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영업개시를 하지 않았으니 다음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 못 보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앙에 자리 잡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오늘이 우리 아빠 생신인데요. 빨리 먹고 갈게요. 죄송해요”
그제야 음식점 주인은 얻어먹으러 온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그래도 행색이며 뭐며 영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렇지만 할 수 없이 아이가 주문한 국밥 두 그릇을 갖다 주고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아이는 “아빠! 내가 국그릇에 소금을 넣어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과 함께 자기 국그릇에 있는 고기를 떠서 앞 못 보는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서 아이는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주인아저씨가 빨리 먹고 가야 한 데 어서 밥 드세요. 내가 김치 올려줄게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은 조금 전 했던 행동이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습니다.
앞의 말씀과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조금 답답하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세상도 교회도 이처럼 눈앞의 돈과 세상적인 부귀영화에 마음이 팔려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너무도 쉽고 가볍게 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 신분의 가치는 이 세상 전부를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 시간에 그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이 모자랍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권세가 있는 신분입니다. 로마서 8: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바로 앞의 17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 이 세상의 것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본문 전후의 말씀처럼 이 중요한 모든 것을 약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전혀 사용하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와 여러분처럼 이방인인 우리들이 그 신분과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받았고 소유했지만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미 약속으로 받았으며, 영원한 생명과 삶까지도 약속 받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생활에 찌들어서 기쁨도 없고, 평안도 없고, 고통스럽게 삽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 33절입니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 28:16절을 인용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믿음을 따르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자연히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경험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대로 살면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똑 같이 버림받습니다. 앞서 보았던 로마서 11:20-21절입니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그 중요한 것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알면서도 아직 세상의 것들, 자신의 생각과 뜻을 고집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 지금 받은 것, 소유한 것을 누리십시오.
여러분에게 지금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질, 건강, 가족, 좋은 환경, 재능, 시간 등 무엇이든지 지금 주어진 것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그것을 사용하고 누리십시오. 어떻게 누립니까? 신명기 2:25절을 봅시다.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그리고 28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보았던 전도서 6:2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좋은 것을 받아 소유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25절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이제는 받고 소유하고 가지는 것에만 마음 두지 말고 주어진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사용하십시오. 그것이 곧 누리는 길입니다. 돈도 시간도 재능도 건강도 아껴두지 말고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하여 사용하십시오. 요즘은 자원봉사, 재능기부도 많답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만큼 영원한 것으로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19-21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잘 사용하여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자자손손 누릴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상급으로 준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