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불가능 없는 하나님의 약속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7,001회 작성일 2016-09-29 22:23

*** 불가능 없는 하나님의 약속 / 창세기 15:1-7

창세기 15:1-7,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은 재미있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하나로 시작합니다.
한 병원에 환자가 찾아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병세를 늘어놓았습니다. “의사 선생님, 제 기억력이 완전히 나가버렸어요. 아내 이름도 잊어버렸고, 애들 이름도 잊어버렸고, 직장이 어딘지도 잊어버렸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의사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습니다. “자, 진정하세요. 얼마 동안이나 이런 증세가 있었지요?” 그러자 환자가 멀뚱한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무슨 증세 말입니까?”

이쯤 되면 대책이 없습니다. 엉뚱하게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이름 그대로 약속의 책입니다. 구약(舊約)과 신약(新約), 즉 옛 약속과 새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통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약속 즉 언약이라는 것은 ‘이룰 때까지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도중에 약속을 파기한다면 그 효력도 멈추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새 언약에 대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22:14-20절에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과 세우신 언약이 있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에 의지하여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이 언약의 출발점이 오늘 본문말씀인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세우신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선민의 조상으로 세우신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아내 사래가 더 이상 자손을 볼 수 없도록 늙었을 때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뭇별처럼 셀 수 없도록 많은 자손을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원리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브람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말씀을 바꾸어 표현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믿을 때에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보면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 끈질긴 기도에 대하여 비유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8:8절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대로 지금 우리 시대에는 진정한 믿음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없이 듣지만 서두의 예화처럼 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하면서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았는데,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 순간에 언제 들었느냐는 듯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삽니다. 예화 속의 건망증도 대책이 없지만, 이 시대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잊고 사는 것은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지켜가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땅과 온 우주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피조물 세계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믿습니까?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는다면 성경을 자세히 읽으십시오. 특히 욥기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원리를 소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에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는 과정 속에 하나님의 주권(主權)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7절입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이 언약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음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 2-3절을 봅시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자신과 자신의 아내가 모두 아니가 많아서 더 이상은 자손을 낳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7:17절에서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이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는 억지 같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마치 일상의 일들처럼 일어납니다. 성자 하나님을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 부활, 죄 사함의 원리, 사랑의 원리, 희생의 원리 등등. 새 언약 안에는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라고!’라고 할 만큼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수두룩합니다. 여러분은 단 한 번이라도 오른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왼 뺨도 때리라고 돌려 댄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였습니까? 전도를 할 때 만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내게 보여줘 봐. 그러면 당장 믿지.”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실은 한 갓 흙으로 지어진 인생이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입니다. 요한복음 16:30절에 제자들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이해를 구하거나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즉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아브람을 시험해 보시고 믿기 때문에 준비하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7절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아브람 가족이 갈대아인의 땅 우르에서 살 때에 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고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막 아브람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룰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선민을 위하여 거처할 땅도 미리 답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고, 아브라함과 확실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절)라고 확실한 증거를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해 질 저녁 무렵에 아브라함으로 잠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미래의 일을 알게 하시고, 제물 가운데로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다시 확실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18절)라고 장차 이스라엘 백성의 거주지까지 정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 사이로 지나신 일은 고대의 계약법이었습니다. 고대사회의 계약법은 짐승을 쪼개어 마주보게 한 후에 그 사이를 왕래함으로 그 계약이 완성됩니다. 이는 계약의 확실성을 보증하는 행위였습니다. 내면적으로는 너와 나 사이에 만일 계약을 위반했을 때는 이 짐승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행하신 것은 아브라함으로 확실한 신뢰를 갖도록 하시는 보장이었으며 또한 배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하신 언약은 아브람에게 하신 언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난 약속입니다. 그들이 받은 것은 이 땅에 있는 약속의 땅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받은 약속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신분입니다. 히브리서 11:16절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음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런데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것들에 마음이 팔려 이 영원한 약속을 소홀히 합니다. 당장 눈앞의 먹을 것, 입을 것, 사는 것을 염려하여 그런 것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신분을 주셨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이미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8:32절을 봅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믿으십시오. 믿고 순종하십시오. 그리하면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셨던 그 모든 약속들이 여러분을 통하여서도 이루십니다.

※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창세기 18:11-14절을 읽어봅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세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 성경 안에서만 가능하지 지금 세상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4:2절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더하지 않으면 세상의 다른 책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특출했던 모세마저도 어려운 난관 앞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모세를 원망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달 동안 냄새도 싫어하도록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말합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민 11:21-22)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 11:23) 또한 가브리엘 천사장이 마리아에게 잉태 소식을 전할 때에 마리아가 ‘자신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겠습니까?’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말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즉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반드시 이루게 하신다는 보증입니다. 마가복음 11:24절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말씀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후 500여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지역을 떠돌다가 애굽에서 430년을 지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대를 이어갔으며 끝내는 가나안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이 들고 좌절감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특히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고, 하는 일들이 형통하지 못하며, 고통과 어려움이 올 때에 그러합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길인가?’,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인가?’,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라는 신앙의 갈등으로 기도마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환경까지도 다스리시고 주관하십니다. 즉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불가능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경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삶에 회의가 몰려올 때는 세상에서 방황하지 말고 내게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약속을 잊지 않으시려고 무지개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충만한 은혜를 누리면서 재림을 기다리는 부활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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