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의 그리스도인
*** 위기 때의 그리스도인 / 마가복음 14:43-52
마가복음 14:43-52,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 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 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 하니라.”
**들어가는 말
사람은 가정과 혈육과 직장 등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즉 혼자서는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비록 우리가 사는 현실이 경쟁사회이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헤쳐가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진실한 신앙을 지켜가기가 쉽지 않아서 더욱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3절에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10:24-25절에서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십니다. 특히 삶의 위기가 닥쳐 올 때에는 더욱 주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2015년도에 OECD 36개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질문 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도와줄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가?”라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없다.’고 말한 사람이 가장 많은 국가가 대한민국(36위)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우리나라이며, 통계에 의하면 ‘아빠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중 6분’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 5-60년 만에 세계 꼴찌에서 세계 2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돈 버는 일에,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에 온 삶을 빼앗겼습니다. 이제는 살만해서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고독감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바빠서 가족과 일가친척, 친구들, 이웃을 돌아보는 것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여기에만 그치면 그래도 괜찮을 텐데, 우리 주님마저도 멀어져 버린 것입니다. 삶의 위기라는 것은 병들고, 가난하고, 사회와 환경적인 어려움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삶의 위기는 자신을 잃고 이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17-19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네가 시홀(나일)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됨이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즉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온 세계가 위기의 때로 접어들고 있으며, 우리나라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심각한 위기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대제사장들과 그 무리들에 의하여 잡히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눈엣 가시처럼 여기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수월하게 예수님을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군중들을 무서워하던 이들은 군중들이 전혀 없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무런 방해도 없이 예수님을 잡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나머지 열 한 명의 제자들은 순식간에 위기에 빠졌습니다. 마음이 혼란해진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얼마나 급했던지 마가는 사람들에게 잡히자 홑이불로 된 겉옷을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이렇게 장담한 사람들입니다. 본문 앞쪽의 29-31절입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들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삶이 안전하고 평안할 때는 얼마든지 신앙을 지키겠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에 위기가 닥치고 생명이 위태롭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신앙도 약속도 헌신짝 버리듯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평안할 때에 믿음을 든든하게 세워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인생의 위기나 예수님의 재림은 예고 없이 갑자기 닥치게 됩니다. 그럴 때면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버림받게 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동영상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마지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몇 편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환경과 사건과 지위의 사람들이 죽기 몇 초 전에서 몇 시간 전에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픈카를 타고 한껏 기분 내며 찍은 사진을 인터넷 페이스북에 올린 직후 그들은 사고로 죽었으며, 비행기 탑승 직전에 단체로 찍은 하키 선수들이 불과 몇 분 후에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는 등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나 본문의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나 모두 지금의 우리에게도 똑 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디모데후서 4:7절의 바울의 고백처럼 매 삶의 순간을 마지막인 것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위기관리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삼년 동안이나 동고동락하면서 가르치셨던 제자들이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는가 하면, 위기를 만나자 살겠다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는 ‘사도’였고, ‘마가’는 사도는 아니지만 복음서를 기록할 만큼 주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였습니다. 이 마가는 ‘요한’이라고도 하는데, 지중해에 있는 구브로 섬 출신으로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레위 족속입니다. 그는 전도자 바나바의 생질이기도하며, 초대 교회 당시 바울과 베드로와 함께 선교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마가는 비교적 물질적인 부요함도 누렸는데 그의 집 다락방은 120명의 성도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 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함께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순간적으로 모두 생명을 위하여 도망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눈이 멀어서 자기 스승인 예수님을 노예 값인 은 30에 팔았고, 뻔뻔스럽게 체포자들의 안내자 역할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이나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신 제자들은 스승이 위기에 처하자 한결같이 모두 도망쳤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 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 하니라.” 비참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떠합니까? 천국은 가고 싶어서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는데 어렵고 힘든 일이나, 손해 보는 일은 외면하고 피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내 삶에 힘들고 어려움의 위기가 닥칠 때 세상과 타협하거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떠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누가복음 14:25-35절에서 ‘망대를 세우는 비유’와 ‘전쟁하는 임금의 비유’를 통하여 미리 계산을 해보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26-27절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리고 33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위기관리 능력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위기관리 능력은 ‘자기 버림’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뜻, 자신의 경험, 자신의 계획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위기관리 능력이냐?’고 생각되십니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죽여라.’하면서 덤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살려고 생각한다든지, 잘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생각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마태복음 16:25절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리고 로마서 8:13절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겠습니다.’라는 결심으로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위기관리 능력입니다.
만일 가룟 유다처럼 자기만 살겠다고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잘 살겠다거나, 다른 제자들처럼 살겠다고 예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가면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 이 나라의 교회들은 살려고 신사에 참배를 하고, 교회의 예배 시간에 우미유가바(うみゆかば)라는 일본 가곡을 불렀습니다. 그 내용은 “바다에 나간다면 나의 시체는 바다에 띄우고, 산에 나간다면 초원에 버린다. 아무튼 천황 가까이에서 죽는다. 뒤는 돌아보지 않겠다.(海行かば水み漬づく屍かばね山行かば草むす屍大君の辺へにこそ死なめ顧みはせじ).” 한국교회는 위기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겠다.’가 아니라 ‘천황을 위해 죽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당시의 한국교회는 주일예배를 ‘애국예배’로 드렸습니다. 애국예배는 일본 국가(國歌)인‘기미가요’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예배 자들은 일동 기립하여 일본의 식민지배와 군국주의와 침략의 상징인 이 노래를 목소리 높여 합창했습니다. 궁성요배를 했습니다. 즉 '천황'이 살고 있는 도쿄 궁성 방향으로 허리를 숙여 절을 하는 것입니다. 허리를 90도로 구부려 일왕에 대한 절대 충성의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주보 글에 그 당시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확신을 세워놓지 않는다면 위기의 때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갈 때에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후, 베드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자들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때에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9-12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처럼 이렇게 평온한 때에도 믿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위기의 때에는 믿음도 버리고 예수님도 버리고 도망하게 됩니다.
군인이 그 어려운 훈련을 받는 것은 위기의 때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강도 높은 훈련이 없다면 그 무시무시한 전쟁터로 뚫고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도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무기보다 더 강력한 능력으로 무장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을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에베소서 6: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하셨고, 디모데전서 4:8절에서는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고 섬김의 삶을 통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신을 버리는 삶으로 위기관리 능력을 키워갑시다. 그리하여 어떤 환경과 상황이 닥치더라도 두려움 없이 주님과 동행하며 헤쳐 나가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인정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