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우리의 확실한 소망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613회 작성일 2016-08-09 15:41


*** 우리의 확실한 소망 / 고린도전서 15:42-49

고린도전서 15:42-49,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들어가는 말

근래에 제가 전한 말씀들의 80-90%는 그 주제가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말씀이었든지 그 결론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성령님의 강권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전하는 말씀도 그러합니다. 지난 7월 27일 새벽기도회에서 이 말씀의 일부만 전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오늘 주일에 이 말씀을 다시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알려드릴 사항은 오늘 말씀 중에는 하워드 피트만 목사님의 간증 중에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내용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많은 간증들 중에서 특히 천국과 지옥, 심판,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던 말씀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수많은 간증들이 있지만 그 간증이 성경말씀과 일치가 되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하고 나에게 주셨던 말씀들과 일치가 될 때에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중심으로 지금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 가장 확실한 소망’에 대하여 전하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을 포함하는 고린도전서 15장은 잘 아시는 대로 부활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부활장’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리스도인의 부활, 육체의 부활, 부활의 상태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합니다. 이처럼 부활을 자세하게 다루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최종적인 열매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절에서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하십니다. 최근에는 가톨릭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재림까지도 부정하는 교리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탄이 세력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사람들을 눈을 가리는 이유는 그 때가 자신들의 최후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려는 계략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최후의 소망이며 가장 확실한 영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부활의 소망입니다.

먼저, 부활은 영의 부활과 몸의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불어넣으신 사람의 영은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이것을 ‘영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을 살려주시려고 율법을 주셨지만 사람이 그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바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사람의 영을 회복시키기 위한 속죄 제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로 믿어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영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영의 부활은 지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한 저와 여러분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몸의 부활은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역사의 종말 때에 썩지 않을 새로운 영의 몸을 입게 됩니다. 본문 44절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이 소망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하여 보여주신 부활 때의 우리의 모습을 미리 살펴보겠습니다.

※ 구속함을 받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길

이사야 35:8-10절을 봅시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무서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이 대로는 하워드 피트만 목사님의 간증에서는 둘째 하늘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 하늘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했습니다. 이 대로는 터널처럼 생긴 큰 통로의 가운데에 있고 대로의 양쪽에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꽃밭으로 이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비범하게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사가 피트만 목사에게 거룩한 대로를 가는 사람들의 특징 네 가지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제가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발견한 특징은 ‘나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젊고 아름다웠습니다. 요한계시록 22:5절입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천국에는 시간이 없는 영원한 곳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나이도 없습니다.
두 번째로 발견한 특징은 ‘성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로를 가는 사람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습니다. 꼭 천사들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22:30절을 봅시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나라에는 죽음이 없기 때문에 자손을 생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신부가 되고 예수님이 신랑이 되어 천국 혼인잔치가 열리게 됩니다. 계시록 네 번째 복인 요한계시록 19:9절에서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로 발견한 특징은 ‘인종의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인종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갈라디아서 3:28절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네 번째는 피트만 목사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저 터널 속에 걸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 보라.’ 그 길에는 50명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설명했습니다. ‘저 숫자는 지난 15분 동안 지구에서 추수된 사람들이다.’여기서 피트만 목사님에 대하여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이 15분은 1979년 8월3일 4시 45분부터 5시까지 앰뷸런스에서 긴급구조원이 ‘피트만 목사가 죽었다.’고 판단한 시간부터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입니다. 이 15분 동안 50 명의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적으로 죽었고 육신은 세상에 있지만 그들의 영은 집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신이 죽고 나면 그 후의 일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무덤에 묻히는지, 화장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에게 이 15분간의 모습을 보게 해 준 이유는 이것이 지구의 영적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천사는 그 15분 동안 죽은 50명의 성도들과 함께 1950명의 다른 사람들도 같이 죽었지만 그들은 장막 뒤쪽의 다른 문으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지구에서 15분 동안에 2000명이 죽었지만 50명만 천국에 간 것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2.5%만 천국에 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13-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바로 네 번째 특징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 천국으로 향하는 대로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본문 49절을 봅시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가 가진 소망을 확실하게 하려면 지금 이 흙에 속한 육신이 있는 동안에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어떻게 준비합니까?

5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즉 하나님께로 향하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하워드 피트만 목사가 하나님과 대화 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우레가 우는 것 같은 엄청난 두려운 소리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믿음은 죽었다. 너의 행위는 헛되다. 나에게 기독교인의 사역으로서 바쳤던 기독교인으로서 살았던 너의 삶은 내가 바리새인들 가운데 거절 했던 가증함이다. 무엇이 라오디게아 교회 형태의 기독교인으로부터의 그런 제물을 내가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사실상 지구상에 네가 사는 것과 똑같은 삶을 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나의 영원한 진노의 위험에 처해있다.” 피트만 목사가 항변했습니다. “하나님, 그건 제가 아니에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자는 설교자이고 선생이고 제 이름은 하워드 피트만이에요. 그건 제가 아니에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피트만 목사는 다시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지난 30년 동안 나는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설교했고, 감옥에 가서 죄수들에게도 설교했고, 병원에 가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했고, 내 집을 개방하여 다른 이들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행인들에게 설교할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감옥에서 설교할 때고 있었고, 병원에서 무릎 꿇고 기도할 때도 거기 있었고, 네 집을 개방했을 때도 거기 있었다. 나는 네가 한 모든 일을 다 보았다. 다 좋은 일이었다. 그것들은 나의 일이었고 내가 내 교회에게 하라고 명령한 일이고 나의 사람들이 매일 나에게 드리는 일이다. 그러나 네 경우에는 그것이 헛되다. 너는 나를 위하여 그것을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출애굽기 20:25절(네가 네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에서 말한 거짓 신을 위해 네가 한 일이고,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는 내 앞에 어떤 다른 신도 허용하지 않는다.’ 피트만 목사가 다급하게 말합니다. “하나님, 잠깐만 잠깐만요. 저는 거짓 신들을 위해 그걸 한 게 아니에요. 당신을 위해 한 거에요. 네가 매일 당신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그래. 너는 나를 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너는 결코 나를 주님으로 만든 적은 없다.” 그때 증인이 말했습니다. “모든 무릎이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고백하리라.” 피트만 목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약속과 모든 말이 바로 하나님 앞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피트만 목사에게 하신 책망 중에는 ‘너는 약속을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는 것도 있었고, 가장 중요한 책망은 피트만 목사가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이 되도록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피트만 목사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거짓 신을 자신의 주님이 되게 했는데 그 거짓 신은 바로 self(자기, 자아)였습니다. 피트만 목사는 자기 자신을 사랑했고, 자아가 자신의 삶을 다스렸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무실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피트만 목사에게 책망하신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오디게아 교인 같은 사람은 주일에 교회에 와서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하지만, 돌아가서는 세상의 다른 신들을 따르며 삽니다. 그리고 다시 주일에 와서는 “내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며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결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지도 않고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께 묻지도 않습니다. 그저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이 라오디게아 교인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경영 즉 마음의 생각을 살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어떤 행위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2:36-37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나 자신에 대한 증인은 바로 자신의 혀, 즉 자신이 했던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탄생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형상을 준비하는 길은 자신의 일상의 모든 삶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길 뿐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지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과 기도는 우리가 음식을 먹고 숨을 쉬는 것처럼 그렇게 유지해야 합니다. 피트만 목사는 간증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Are you ready?”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하나님 외에 아무도 모르지만 그 날이 바로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로 향합시다.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고 철저하게 주님의 뜻에 복종하여 시온의 대로, 하나님 나라의 대로를 걷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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