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화평과 즐거움
*** 그리스도인의 화평과 즐거움 / 로마서 5:1-11
로마서 5:1-1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은 2016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사실 오늘에 있어서 구약의 절기는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오히려 구약의 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감사함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약화된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 년 내내 절기를 지키는 정성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떻든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라고 하신 삼대 절기 중 하나이며, 연초에 보리를 거두어들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신명기 16:10-1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여기서의 칠칠절은 초실절과 함께 맥추절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에 있어서는 일 년의 전반기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로마서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려야 할 화평과 즐거움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우리가 오늘처럼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상에서는 가장 끔찍한 죽음의 형틀인 십자가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나를 살리시려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이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최고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우리의 전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전부라면 슬픔과 절망뿐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우리에게 십자가와 같은 환난과 고통만 있다면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것이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며 성도를 위한 영광의 보증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하심은 우리의 보증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며 예배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믿는다면 이것보다 더 헛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영원한 생명의 삶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세상에서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삶을 인내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면 그에 맞추어 우리의 생각도 생활도 바뀌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사사건건 반대하는 성도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이 ‘안 되겠다. 내가 기도로 저 사람을 고치든지, 아니면 내보내야겠다.’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 날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 성도를 변하게 해주십시오. 아니면 스스로 나가게 해주세요.”
이렇게 몇 날 며칠을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얘야, 그 아무개가 사람 될 것 같으냐? 그 사람 절대로 사람 안 된다. 그 사람 바꾸려다가는 네가 죽는다. 나도 그 사람 못 바꾼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런데 그 사람 내 나라에는 올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천국에는 갈 수 있겠지요. 예수님을 믿었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래, 네 말이 맞다. 사람은 못 되었지만 내가 내 피로 씻어서 은혜로 엎고 천국에 데려가겠다. 내가 데리고 갈 사람인데 네가 그냥 두고 좀 봐 주면 안 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참, 나는 아직 너도 못 바꾸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은 자기 자신의 거듭남과 자신의 삶의 변화입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탓이나 불평이 아니라 ‘그들을 보면서 내 삶을 새롭게 하는 깨어 있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혼란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 바꾸어야 할 생각 첫째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화평이라는 말은 헬라어 ‘eirene’입니다. 이 말은 ‘평화’ ‘번영’ ‘하나 됨’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을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shalom’입니다. 이처럼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서로가 친근하여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의 뜻이 맞아야 하듯이, 하나님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내 삶을 맞추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3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내 삶을 맞추면 하나님이 내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는 사람에게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평안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은 하나님과 친근한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를 이룰 때 저절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여 이루어진 평안은 세상의 어떤 일을 만나도 결코 마음의 평안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참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6절입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이처럼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소망과 평안은 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화평을 계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더러운 습관과 죄악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빼앗지 못하도록 기도하며 영적인 싸움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가 차지하게 됩니다(마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그러므로 끊임없는 기도와 영적인 싸움을 통하여 하나님의 화평을 지켜야 합니다.
※ 바꾸어야 할 생각 둘째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했고, 3절에서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고 했으며, 11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서 나타는 특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기쁨’입니다. 기쁨은 마음의 평안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삶의 기쁨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두 번째가 ‘희락’ 즉 ‘기쁨’이며, 세 번째가 ‘화평’입니다. 이 화평과 기쁨은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며,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고, 15:11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 안에 머물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평안과 기쁨으로 말미암는 생활의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세상적인 것이 충족되기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은 세상의 환경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루어지는 생의 즐거움은 하나님과의 친근한 관계가 근본이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환난’때입니다. 삶이 평온한 평상시에는 모두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알곡 성도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생활에 어려움이 닥치고, 고난과 질병이 닥치면 진실한 신앙과 일시적인 신앙이 구별됩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던 성도는 비록 고통과 환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평안과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11절에서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깊은 신앙의 성장과 확실한 소망을 위하여 환난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과 육신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고 염려되고 두려워지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기 때문에 오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만족한다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잠언 16:7절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그리고 전도서 2:26절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느헤미야 8:10절에서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삽니까? 그리고 무엇이 여러분의 즐거움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이 세상의 것이라면 결코 영원하지 못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추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세상 것인지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를 아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에도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하고, 화가 나고, 불평과 원망이 쌓인다면 그것은 세상적인 것입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의 즐거움과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 친근히 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모든 일을 맡기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확신한다면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해야 합니다. 때로는 아픔과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온다 할지라도 나를 위하여 생명을 주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이 점점 흉흉한 소문들이 많아지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소망을 잊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화평과 즐거움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