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 그리스도인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 신명기 27:1-10
신명기 27:1-10,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 들어가는 말
모든 생명체에는 본능(本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스스로 원하는 것입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각 생명체가 보존되고 번성하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생존본능이 있고, 종족을 번성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육체를 가진 생명체들은 이러한 본능을 가장 우선으로 처리합니다. 그런데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는 조금 다릅니다. 인간에게는 본능을 제어하여 우선권을 설정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살리려는 희생적 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권을 재설정하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8:12-14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영의 사람들입니다. 영의 사람은 그 삶의 우선권을 영의 생명에 두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서 영의 생명에 관계된 일에 우선권을 부여하도록 재설정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다시 상기시기며 재교육하는 설교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 40년을 지낸 후에 이제 가나안 땅이 보이는 모압 평지에 이르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을 모아놓고 곧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특히 본문말씀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명령합니다. 본문 2-3 상반절에서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5-7절에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일이 가장 우선된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의 삶에서 왜 영의 생명에 우선권을 두어야 합니까?
본문 9-10절을 봅시다.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이렇게 행야 할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말하기를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내가 그곳에 머물려면 그 나라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에 가서 우리나라 관습과 법을 우겨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성경 몇 곳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2:26절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그리고 누가복음 9:23절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14:26-27절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우선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께 우선권을 두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는 ‘세족례’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을 재현하는 의식입니다. 이는 교황이 예수의 대행자라는 의미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가난한 열두 노인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입니다. 이때 교황은 겉옷을 벗고 오직 속옷만 입고 각 사람이 내미는 오른발에 물을 몇 방울 뿌리고 수건으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면서 ‘이 빈껍데기에 불과한 세족례를 없애라.’고 항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족례가 순전히 형식적인 의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지금의 교회는 진정성이 결여된 채 의식화된 예배와 기도와 찬양 그리고 모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것들은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5-6절에서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인간의 관습이나 의도를 배격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배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사람의 의도대로 진행한다면 이것이 제단에 쇠 연장을 대는 인위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도 영의 생명 즉 영적인 관점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것이 예배에 있어서의 우선권입니다.
이사야 1: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그리고 마태복음 23:5-7절입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 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이처럼 예배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맞추어야 합니다. 사람의 경험이나 생각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예배에 있어서의 영의 생명에 우선권을 두는 일입니다.
※ 내 삶에 우선권을 두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말씀의 예대로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첫째 돌비를 세우고 율법을 기록하는 것이며, 두 번째로 돌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것이며, 세 번째로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백성이 함께 먹으며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언약인 율법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징인 하나님께 대한 예배,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교제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중요한 표징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13절을 봅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그리고 시편 50:5절입니다.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즉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과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 된 증표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명령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돌비를 세우고 말씀을 기록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그것이 삶의 기반이 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돌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예배’입니다. 세 번째의 화목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먹으며 기쁨을 나누는 성도의 교제’를 뜻합니다. 화목제라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며,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성도들이 함께 먹으며 즐겁게 교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우선된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복과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6:33절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삶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일상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8절에서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30:9-10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 한 마디로 ‘행복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5-6절의 번제에 대한 말씀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예배’를 의미합니다. 번제라는 제사는 제물 전부를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것으로써 온전한 희생 제사를 말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온전한 예배를 의미합니다. 온전한 예배는 마음과 몸과 물질이 함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예배를 저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예배가 몸과 물질은 드려졌지만 가장 중요한 마음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빠진 예배는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하는 진정한 예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23-24절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마지막 세 번째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성도들 사이의 관계 회복을 뜻합니다. 화목제라는 제사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사람들 사이의 화목을 위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화목제물은 피와 콩팥과 기름은 하나님께 화제로 드려야 하고, 고기는 거제로 드리되 가슴과 우편 뒷다리는 제사장에게 주게 됩니다. 그리고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이 함께 고기를 나누며 즐거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만 화목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화목을 이루는 peacemaker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사람들과 화목하게 되면 형통의 길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밑 빠진 독에는 아무리 물을 많이 부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물을 채우려면 우선 깨어진 부분을 잘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영의 생명을 위한 일에 우선권을 두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길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삶에서 우선권 설정을 잘 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좋은 것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