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 기회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 누가복음 19:1-10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들어가는 말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인력시장의 애환을 방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력시장이란 품팔이 노동자들과 일손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흥정이 오가는 곳입니다. 별다른 특기가 없이 하루하루 품을 팔아 먹고사는 사람들이 새벽시간부터 인력시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공사장이나 어느 일터에서 일손이 필요한 사람들이 인력시장에 와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태워서 갑니다. 인력시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품팔이든지 일손을 구하는 사람이든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기회를 기다리고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기회를 기다립니다. 기회를 잘 잡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큰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회를 기다립니다. 성경에서도 에베소서 5:16절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십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사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사는 악한 세대에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사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의 길에도 기회는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딱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경우를 보여줍니다. 야곱의 형인 에서가 사냥을 다녀와서 지치고 허기졌을 때 동생이 끓인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수 있는 엄청난 복입니다. 에서는 별 생각 없이 그 소중한 복을 헐값에 팔아버렸습니다. 히브리서 12:16-17절입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또한 요한계시록 2:2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뿐만 아니라 시편 32:6절에서는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있어서 기회는 생사(生死)와 화복(禍福)의 갈림길이 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겠습니까?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의 내용은 잘 알려진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 말기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중에 비옥하고 풍성한 오래된 옛 도시 여리고에 들리셨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1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로마의 세관이 있었고 삭개오는 그 세관의 세리장이었습니다. 때마침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순례 객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에 대하여는 익히 들었던 터라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키가 작아서 사람들에 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 저만큼 앞으로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가 있는 나무 앞에 이른 예수님께서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삭개오를 불렀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리를 죄인으로 여기던 유대인들은 상종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유대인 랍비인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서 하루를 묵고자 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즉시 영접했고 예수님의 관심에 감격하여 중요한 약속을 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하시며, 삭개오의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삭개오는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잡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 중에서 육신의 병을 고친 사람, 육신의 병과 영의 생명까지 얻은 사람들,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똑 같이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를 얻었지만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 기회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인터넷 뉴스에 “한국 대학생이 만든 특별한 쓰레기통”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목이 별나서 궁금하여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경남 창원의 시골 출신 소년들이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왔습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신기한 그들은 어느 날, 밤늦게 취기가 오른 채 집으로 향하던 중 길 가에 있는 쓰레기통을 보았습니다. 쓰레기통에는 쓰레기가 넘쳐 보기가 흉했습니다. 이들은 집에 있는 쓰레기통처럼 꾹 눌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술김에 손을 넣어 눌렀더니 생각보다 빈 공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저절로 눌러주는 쓰레기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비용은 올라갔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공모전이라는 공모전은 모조리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무슨 쓰레기로 돈을 버냐?”는 핀잔뿐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년 만에 쓰레기통은 완성되었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그들이 만든 쓰레기통은 여느 쓰레기통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쓰레기통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일반 쓰레기통보다 최고 8배나 더 들어가는 압축형 쓰레기통입니다. 이 쓰레기통은 태양빛의 힘을 얻어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또 특별한 센서를 달아 쓰레기가 쌓이면 단계별로 꾹 눌러줍니다. 친환경적이고 똑똑한 이 쓰레기통은 서울시를 비롯하여 유럽 국가들과 두바이, 싱가포르, 영국, 콜롬비아 들 25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2015년 상반기 매출이 60억원이 넘었습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생각지도 못한 성공의 기회를 잡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기회는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에는 우리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약도 사실 우리 주변에 흔한 풀 한 포기에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그 흔한 약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독한 화공약품에 의존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입니다. 이처럼 기회를 찾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관심의 부재’입니다. 즉 엉뚱한 곳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바로 곁에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49:20절에서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주어진 기회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죽음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처럼, 또는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여리고의 맹인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쳐서 주어진 기회를 적극적으로 샀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체통도 무시하고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본문에 기록한 대로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기 위해 나무에 오른 것입니다. 아마 삭개오도 예수님의 활동에 대하여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제자 중에는 전직 ‘세무원’이나 ‘어부’도 있고, 신분과 형편을 따지지 않으시는 것과 소외된 자를 특별히 대하신다는 사실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나 보아야 되겠다.’는 호기심이 발동했을 것이며, 멀리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사는 마을에 오신 예수님을 보고 싶은 충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삭개오의 행동을 보면 그는 대단히 적극적인 행동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태복음 11:12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으로 그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삭개오는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했습니다. 전도서 11:1-2절을 봅시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그리고 6절입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기회는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에게 발견되어지고 주어집니다.
※ 기회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가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기회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2-3절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이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인생의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기회를 원하면 모든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5-6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그리고 한 절 더 봅시다. 히브리서 11:1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비록 보이지 않을 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은 억지 같지만 세상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피그말리온 효과’란 심리학 용어입니다. 이는 ‘지성이면 돌을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교육학에서도 피그말리온 효과는 아주 크다는 것이 실험으로 입증 되었습니다. ‘로젠탈’과 ‘제이콥스' 라는 사람이 선생님과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이들은 실험에 앞서 대상 선생님들에게 “여러분들은 뛰어난 교수 능력 때문에 선발되었고, 또한 재능 있는 학생들이 여러분의 반에 배치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을 관찰했습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의 성적은 향상되었습니다. 실험이 끝난 후 선생님들은 “이런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는 것은 기쁨 그 자체이고 , 항상 그처럼 재능 있는 학생들과 수업하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자신들의 느낌을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사자들은
“선생님들이 가르친 학생들은 여러 학교에서 무작위로 뽑았고, 선생님들 역시 무작위로 뽑았기 때문에 모두 유능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라.”
고 실상을 털어놓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괄목할 만한 실험 결과를 ‘교실에서의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민수기 14:27-28절을 봅시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리고 빌립보서 4: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말하고 표현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루게 하십니다. 하지만 불신의 마음으로 가득하면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내 삶의 모든 기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을 정리합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회개의 마지막은 돈 지갑에서 나온다.” 삭개오는 자신이 잡은 기회를 굳히기 위하여 예수님께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내 놓겠고, 강탈한 것이 있다면 사 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즉 자신의 돈지갑을 열었습니다. 이는 세상의 것에 마음 두었던 것을 이제는 예수님께 마음을 두겠다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생명의 기회를 위하여 일하십시오. 진정한 생명의 기회를 위하여 여러분 전부를 투자하십시오. 기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필요한 기회는 하나님께 구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하여 삭개오처럼 또는 예수님을 만나 육신도 영의 생명도 구원받았던 이들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사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