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성령님을 따르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608회 작성일 2017-02-14 22:20


*** 성령님을 따르십시오. / 갈라디아서 5:13-24

갈라디아서 5:13-24,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들어가는 말

교회가 걸어온 역사를 말하는 교회사(敎會史)를 보면 각 시대마다 이슈(issue)가 되었던 교리가 있었습니다. 성부 하나님에 대하여, 성자 예수님에 대하여 또는 교회나 삼위일체 등에 대한 교리들이 부각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성령 하나님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관심이 일어난 것은 교회사에서 현대(現代)라고 불리는 19세기 때부터였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성령님의 역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령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 즉 ‘성령님의 역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성령 충만’ ‘성령님의 내주하심’ 등을 많이 듣고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설명하라고 하면 막막해합니다. 이런 것을 ‘추상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생각 속에 머무는 신앙’입니다. 즉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표현하거나 나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해 보셨습니까?’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들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알 수도 없고 순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2: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지금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하심 없이는 영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 14: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처럼 우리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알아야 하며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알며 성령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성령 하나님은 보혜사(保惠師) 즉 ‘돕는 분’이십니다. 누구를 돕습니까?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4:16-17절을 봅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 말씀에서 “너희와 함께(파르 휘민 / with you)”라는 말씀은 ‘beside you’‘근처에’ ‘가까이에’ ‘나란히’ 등의 의미로써 ‘그리스도인의 곁에서 동행하심’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희 속에(엔 휘민 / in you)”라는 말씀은 ‘in within you’ ‘너의 안에’라는 의미로써 ‘그리스도인의 안에 계심’을 뜻합니다.

이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고 친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앞서 보았던 요한복음 14:25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 말씀처럼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특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음을 단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임재하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고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교회시대에 최초로 일어난 성령님의 임재 사건은 오순절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임재에 대하여 알려주시면서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5절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2-3절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렇게 처음 성령이 임재하신 이후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은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렇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에게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사람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시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인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즉 자신의 변화된 신분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님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이후로 성령께서는 그 사람의 속사람 즉 영의 사람이 자라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며, 깨닫게 하며, 순종하고 실천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주십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게 되면 말씀을 사모할 뿐만 아니라 기도의 능력도 나타납니다. 로마서 8: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는 성령께서 나를 대신하여 기도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순종하여 따라가면 우리 안에는 성령님의 역사로 충만하게 됩니다. 이 상태를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령을 따를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을 이야기 했지만 사실 어떤 것이 성령의 충만함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나타내는 어떤 규정이나 증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한 가지 뚜렷한 증상이 있습니다. 곧 자유 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17절에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 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서 얻게 되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임재하셔서 성령의 사람이 되면 우리는 자유롭게 됩니다. 즉 우리의 마음이 세상적인 것들 - 돈, 권력, 지위, 명예, 자녀, 욕망 등 - 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자유를 죄를 짓는데 사용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본문 앞의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의 멍에”란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얻은 고귀한 자유를 지켜 가려면 성령을 따라 사는 성령 충만한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가려면 먼저 적극적인 결단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따른다.’(disciple ship)는 말은 적극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쟁취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12절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직장에서 가만히 있는데 과장으로 부장으로 승진시켜줍니까? 금메달을 노리는 사람이 놀고먹으면 결코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본문 16-17절에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결단해야 할 내용을 18-23절까지 자세하게 서술합니다. 이 내용을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합니다. 읽어만 보셔도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또 하나 성령을 따라가려면 철저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께서 의도하시는 것을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더 열심히 할수록 성령 충만한 사람이며, 더 영적인 사람이 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교회 일에 바쁘게 쫓아다니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미루거나 줄이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바쁘게 만들어서 성령님과 교통하는 일, 성령을 따르는 일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성령을 따르는 것은 성령께서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27절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게 되고 순종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자들은 양떼를 풀밭으로 인도해서 풀을 뜯어먹도록 합니다. 양들이 풀을 먹고 있는 동안에 목자는 바위 위에 앉아 있습니다. 얼마 후 목자가 일어나서 양들을 향하여 몇 마디 말을 하고는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양들은 그 목자를 따라갑니다. 강제로 몰아붙이거나 줄로 매어 끌지 않아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께서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사탄도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유혹할 수는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든지 아니면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든지 그것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일이며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7-8절에서 경고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사회에 덕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욕을 먹는 이유는 머리로만 믿는 교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 ‘불가능은 없다.’ 등의 책으로 성공목회의 표본처럼 여겨져 왔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 Church) 목회자인 로버트 슐러(Robert Harold Schuller, September 16, 1926 – April 2, 2015)) 목사가 있습니다. 수만 명의 성도와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성도가 TV를 통하여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한 해에 그 교회를 보려고 몰려든 관광객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어느 주일에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그는 설교 전에 교인들을 향하여 “오늘 이곳에 구경꾼으로 온 사람들은 일어서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90%의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명 설교를 했지만 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모두가 머리로만 믿는 구경꾼들로 가득했습니다. 이 교회는 결국 2012년에 가톨릭 오렌지카운티 교구에 팔려 사라졌습니다. 에베소교회처럼 말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처럼 이 세상의 것에서부터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명을 위하여 성령님을 따르십시오. 마라나타!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부터 도망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을 따라가십시오. 이것이 영원한 후회를 남기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 The Heaven of the Meet!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성령 충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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