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지할 하나님
*** 내가 의지할 하나님 / 시편 46:1-11
시편 146:1-11,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 들어가는 말
찬송가 585장은 종교개혁가 M. Luther가 작사한 찬송입니다. 루터가 교황청의 위협을 받으면서 종교회의장으로 가면서 부른 찬송입니다. 루터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교황청을 대상으로 싸움을 벌였습니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종교 재판의 자리로 나아가면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이 찬송의 가사는 오늘 본문인 시편 46편의 내용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본 시편은 위기의 때에 의지할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노래합니다. 지금 이 시대처럼 끊임없이 요동하는 세상이며 항상 위험이 있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견고하게 설 수 있으며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중심으로 위기를 만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해야 할지를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의 배경과 내용을 봅시다.
본문인 시의 내용은 전쟁으로 인한 극도의 위험한 상황에서 구원받은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본문 9-10절을 봅시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이 시편이 기록된 시기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내용으로 보아 남 유다의 13대 왕인 히스기야 시대쯤으로 예상됩니다. 히스기야 왕의 때에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 유다 모두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4년에 앗수르의 살만에셀이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성을 함락시켜 결국 북 이스라엘이 멸망당했습니다. 히스기야 14년에는 앗수르의 산헤립이 남 유다로 쳐들어와서 성읍들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에워쌌습니다(왕하 18:9-19:37).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은 온 유다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앗수르 군대가 이미 10여 년 전에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은 바뀌었지만 앗수르 왕 산헤립은 18만 5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항복을 종용하며 위협했습니다. 국가가 급작스런 위협에 처하게 되니까 먼저 인간적인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열왕기하 18:14-16절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히스기야 왕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왕이었습니다(왕하18:3-7). 그러나 다급한 마음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빌고, 공물을 바쳤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고만장한 앗수르는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열왕기하 18:35절입니다. “민족의 모든 신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산헤립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듣자 히스기야는 비로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신하들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기도하도록 했으며,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앗수르 왕의 편지를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천사들을 보내셔서 하룻밤 사이에 십팔만 오천 명의 앗수르 군대가 시체가 되었고 산헤립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신하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던 교만한 왕과 군대의 최후였습니다(왕하19:20, 35-37) 이는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본 시편은 이러한 사실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내용을 통하여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좌우되는 삶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내가 의지할 하나님은 인생의 피난처이십니다.
잠언 18:10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지혜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성도를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피난처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당하는 시련은 결코 쉽거나 약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세상의 임금인 사탄의 권세로 무장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0절입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아무리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사탄의 도전적인 공격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고 떨 수밖에 없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으며, 갑작스런 재난으로 열 명의 자녀들이 모두 죽었으며, 사랑하는 부인마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고 하며 비난하고 멸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도록 병이 들었고, 자신을 위로하러 왔던 절친한 친구들의 비난까지 받았습니다. 이러한 공격 앞에서 어떻게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다윗 왕도, 히스기야 왕도, 엘리야 선지자도,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사탄의 가공할 유혹과 도전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신앙의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피하여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맹렬하며 포기하지 않고 약점을 공략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시험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능력을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이나, 재물이나, 지혜를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신앙의 위인도 위급할 때는 인간의 생각이 먼저 나타났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급박한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할 수 있도록 경건의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리스도인의 피난처이며 의지할 분이십니다.
※ 내가 의지할 하나님은 인생의 구원이며 도움이십니다.
시편 121:1-2절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특히 본문 5절의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라는 내용은 특별한 하나님의 도움을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자주 아침에 하나님의 도움이 임한다고 표현합니다. 큰 구원의 사건들이 아침에 많이 일어났습니다. 출애굽기 14:24, 27절 내용에서 ‘애굽 군대의 멸망’을, 여호수아 6:15-16절에서는 ‘여리고 성의 함락’을, 열왕기하 19:35절에서는 ‘앗수르로부터의 구원’을 아침에 이루셨음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혹은 “아침에”라고 표현되는 말씀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을 의미합니다.
교회사에서 가장 핍박과 환난이 극심했던 초대 교회 당시의 성도들은 그 위기의 때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가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에스겔 47:1절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에스겔에게 보이셨던 것과 같은 생명수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오한계시록 22:1절입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인의 도움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국 국교회 감독인 ‘버틀러’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중병이 들어서 곧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자기의 가까운 친구 목사가 그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버틀러 감독은 자기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일생토록 죄를 멀리하고 어떻게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온갖 노력을 다해 왔다네. 그런데 나는 본래 약한 인간이니까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생각하니 내 마음이 두렵다네.” 그 말을 들은 친구 목사가 말했습니다. “감독님,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속량해주신 구주가 아닙니까?” “그렇지 예수님께서 참 구주가 되시지. 그러나 꼭 내구주가 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 감독은 구원의 확신이 서지 않는 듯 의심스럽게 반문했습니다. “감독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감독의 얼굴이 환하여지면서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과연 그렇다. 내가 성경을 수 천 번 보았지만 그 구절의 의미를 이제야 분명히 알았구나.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간다.”
여러분도 때로는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지요?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나의 구원이시며 도움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만일 의심하게 되면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10절 앞부분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공동번역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여기서 “가만히 있어”라는 말은 ‘그만 두다’, ‘멈추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너의 노력을 멈추어라’는 뜻을 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헛된 노력을 멈추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말씀은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는’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일들은 두고 보십니다. 사람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도우시는 것은 성도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를 나타내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 때는 도우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레위기 26:45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낸 그들의 조상과의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창조의 질서를 잊고 사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깨우치기 위한 지극한 배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한 지금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때입니다. 사람에게 일을 주시고 이적과 기사로 구원하시고 도우시는 것은 사람의 사람됨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미래를 위하신 아름다운 배려이기도 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근본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함으로서, 주님 안에서 만족함과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