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내 영이 지치고 피곤할 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7,595회 작성일 2016-11-23 16:47


*** 내 영이 피곤하고 지칠 때 / 열왕기상 19:1-8

열왕기상 19:1-8,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상당히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동물들 중에서도 약한 편에 속합니다. 다만 도구와 무기를 사용하고 다양한 언어와 표현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강할 뿐입니다. 만일 한 사람씩 따로 떼어놓으면 정말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피곤하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같은 육신이 있기 때문에 육신적으로는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약하냐?’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는 우리와 똑같이 약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 수가성에 도착하셔서 쉬셨습니다. 6절입니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이 뿐만 아니라 배도 고프셨고 슬픔으로 눈물도 흘리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육신으로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피곤하고 지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결코 신앙이 약해서 피곤하고 지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와서 잠깐 쉬어라.”(막 6:31)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간의 본문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은 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야의 일대기 중 한 부분입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역사는 북 이스라엘의 7대 왕인 아합의 시대입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그의 아내 이세벨이 세운 바알 사당에서 바알신을 섬겨 숭배하고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의 노를 일으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어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형벌로 수년 동안 우로(雨露)가 없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 후 엘리야는 왕의 박해를 피하여 그릿 시냇가에 몸을 숨겼으며, 시내가 마르자 여호와께서 시돈 땅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3년 후 엘리야는 여호와의 명에 따라 아합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과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갈멜 산에 모이게 했습니다. 거기서 여호와가 참 하나님임을 증명하고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큰 비를 내리셨습니다. 이 일 후에 일어난 일이 본문말씀입니다.

아합이 이 모든 사실을 왕후 이세벨에게 말했고 이세벨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의 손길을 피해 기진맥진한 몸으로 유다 땅인 브엘세바로 도망했고, 다시 광야로 하룻길을 걸어가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엘리야가 심히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로뎀 나무 아래에서 잘 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해서 일어나 보니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 번을 먹은 엘리야는 힘을 얻어 40주 40야를 걸어서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습니다.

엘리야는 3년 동안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일했습니다. 엘리야의 능력과 위대성은 성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이적을 행하였고, 이방 우상을 쫓아내는 영적 각성운동을 일으켰으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육신의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불 병거를 타고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선지자도 죽기를 구할 정도로 그의 영과 육신이 피곤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이 사실을 살펴봅시다.

※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탄식으로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에 제자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40-41절입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이렇게 예수님이 세 번을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한 번도 깨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제사장들에게 잡혀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형으로 죽을 위기에 있었지만 제자들은 잠 하나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나무라거나 책망하시기 보다는 제자들을 이해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능력으로 일해 왔던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많이 지쳤습니다. 육신적으로 피곤하였고, 감정적으로 고갈되었으며, 생명은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움, 분노, 죄책감, 고독, 염려 등 정신적인 온갖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영적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도 침체되어 있어서 차라리 죽기를 바랐습니다. 능력의 사람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생이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이 사실을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통한 말씀인 야고보서 5:17-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성정이 같다’는 말은 헬라어로 ‘homoiopathes(subject to like passions)’라고 하는데 ‘유사하게 영향 받은’ ‘같은 열심을 가진’ 등의 의미입니다. 즉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통하여 음식을 주시며 힘을 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기 전에 롯을 건지신 일을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베드로후서 2:6-8절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도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파송하시면서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마태복음 10: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악하다는 사실을 아시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세상에서 살면서 마음이 상하고 피곤하고 지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렇다면 내 영혼이, 내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지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영혼이 지치고 피곤할 때에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우리의 환경과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아뢰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과 간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이 약해지고 고통의 현실에 매달려 좌절이 깊어지면 영과 육신의 모든 삶이 위태로워집니다. 그리고 현실에 집착하면서 자신 속으로 빠져들게 되면 점점 더 깊은 절망감 속으로 떨어집니다. 다윗 왕이나 히스기야 왕이 절망에 빠졌을 때에 자신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왜 이들이 얼굴을 벽으로 향했을까요? 이는 절망 가득한 현실에 등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속성은 위기에 처하게 되면 그 현실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그 현실에서 벗어나보려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 집착할수록 더 깊이 빠진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프고 영이 지치고 피곤할 때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히브리서 12:2-3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사자성어 중에 ‘염일방일’(拈一放一)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를 쥐고, 또 하나를 쥐려 한다면 그 두개를 모두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 중국 송나라 때에 ‘사마광’ 이라는 사람의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한 아이가 놀다가 그만 장독대에 있는 커다란 물을 담은 장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소리칩니다.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 가져와라.’ 요란 법석을 떠는 동안 물독에 빠진 아이는 숨이 넘어갈 지경 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꼬마 사마광이 옆에 있던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워들고 그 커다란 장독을 깨트려 버렸습니다. 어른들이 단지 값, 물 값, 책임소재 따지며 시간 낭비 하는 것을 보다 못한 꼬마가 이거저것 따지지 않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장독을 깬 것입니다.

더 귀한 것을 얻으려면 덜 귀한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현실이 비록 피곤하고 지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을 때 생각한 것은 자신에게 일을 맡기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비록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의 생각을 했지만 엘리야는 자신을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아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힘을 주셨고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명도 주셨습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15-16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그런데 잊지 않아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지친 이유입니다. 10절입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지금 우리의 표현으로 하면 ‘내가 하나님 뜻을 따라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네요.’라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봅시다. 11-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말씀을 통하여 엘리야를 돌아보면 ‘엘리야는 세밀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 힘들고 피곤하고 지치고 생명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만 엘리야가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는 것 같고, 아무리 힘쓰고 애 쓰도 안 되는 것 같을 때라도 주님은 여전히 내 곁에 계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시며 우리 사정을 아시고 변함없이 인도하십니다. 환경 때문에 지치지 말고 함께 하시는 주님 의지하면서 교통하셔서 주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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