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
*** 인생의 가을 / 요한계시록 14:14-16
요한계시록 14:14-16,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 들어가는 말
유난히도 무덥던 지난여름이었는데 벌써 서리가 내리고, 잎들이 말라 떨어지며, 추수가 끝난 논에는 황량한 바람만 차갑게 느껴집니다. 남쪽 지역에는 태풍으로 농작물 피해가 컸지만 전반적으로 이번 가을은 풍요로운 결실로 가득합니다. 예로부터 가을의 소출이 풍성하면 사람들의 마음도 넉넉해졌습니다. 그런데 마음 적으로는 가을이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의 결실을 보면서 우리 인생의 결실도 더불어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씨 뿌리는 비유, 가라지 비유 등과 같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열매 즉 결실로 비유하는 곳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7:16-18절을 봅시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베드로후서 1:8절에도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깊어가는 가을에 ‘인생의 가을’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짧은 본문말씀은 그 배경이 세상의 역사적인 종말의 때입니다. 마치 벼나 보리를 수확하는 듯한 추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추수하는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께서 땅의 익은 곡식을 향하여 낫을 휘두르시니 곡식이 거두어지는 추수의 장면입니다. 이는 자연의 추수 모습을 비유한 영적인 추수를 표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24-30절에 나오는 가라지 비유 중에서 29-30절을 봅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 비유의 말씀이 실제의 역사 속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예수님께서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30-31절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장면이 영적인 가을인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마지막 추수 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는 두 가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 가을에는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가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열매’이며 ‘결실’입니다. 농부가 한 해 동안 온갖 환경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한 결실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이러한 농부의 수고와 결실에 비유한 말씀이 여럿 있습니다. 이사야 5:1-2절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 이스라엘을 이렇게 농부의 수고를 헛되게 하는 결실로 표현하십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3:6-9절에서도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6-7절입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성경의 이런 비유들은 우리 인생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도 가을에는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2016년 한 해를 지나오면서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인생의 열매는 어떤 것입니까?
누가복음 10:25-37절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에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율법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사람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네가 살리라.”고하셨습니다. 율법교사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하신 후에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율법교사가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이러한 열매들이 있었습니까? 이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조금 더 쉽게 이해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지은 단편 중에 ‘세 가지 질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용은 어떤 왕이 인생에서 풀지 못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두 번째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 번째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왕은 이 세 가지 질문 때문에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늘 자신이 없었습니다. 많은 학자와 신하들이 갖가지 해답을 제시하였으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답은 없었습니다. 급기야 왕은 지혜롭다고 널리 알려진 한 성자를 찾아갔습니다. 왕은 마침 밭을 일구고 있는 그 성자에게 다가가서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물었지만 성자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숲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청년이 성자의 집으로 도망 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왕은 심각하게 상처가 난 그를 외면할 수 없어서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왕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다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가족들이 왕에게 죽임을 당해 복수하기 위해 궁으로 몰래 들어갔다가 병사들에게 들켜 싸우다가 상처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 자초지종을 들은 왕은 그 청년에게 용서를 구했고 또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도 용서했습니다. 왕은 다시 성자에게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성자는 ‘답은 이미 왕이 가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떤 자리에서 내 인생의 가을을 맞이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자신의 영원한 생명과 나라를 위하여 열매를 준비해야 합니다.
※ 가을에는 혹한의 계절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을은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넉넉하게 하는 풍요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가을의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가을의 뒤에는 ‘혹한(酷寒)의 계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계절은 순환하는 것이어서 혹한의 겨울이 지나면 새봄이 오지만, 인생의 가을이 지나고 찾아오는 겨울은 인생의 밤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때입니다. 더욱이 자연의 계절은 정한 때가 있어서 시기를 알지만 인생의 가을과 겨울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말로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표현 그대로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리고 로마서 14:10-12절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리고 본문 14절은 이 인생의 혹한기를 준비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죄로 죽은 인생을 살려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다시 오시는 날, 즉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되는 날에는 구원주가 아니라 심판주로 오십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의 겨울입니다. 세상에서도 겨울이 다가오면 겨우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고 난방을 준비하고 겨울 용품들을 준비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풍요를 누리는 가을이라고 할지라도 인생의 겨울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한 번 지나간 인생은 다시 오지도 않고 뒤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2절에서는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몇 번 사용했던 예화인데 다시 한 번 봅시다.
미국의 인디언 중에는 독특한 인생 교육을 하는 부족이 있습니다. 자신의 딸이 성숙하여 결혼 적령기가 되면 옥수수 밭으로 데리고 갑니다. 딸에게 넓은 옥수수 밭 중에 한 고랑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한 고랑을 선택하면 그 밭고랑 끝까지 가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제일 좋은 옥수수를 한 개 따면 됩니다. 규칙은 지나간 길은 절대로 물서 설 수 없고, 일단 지나간 옥수수는 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앞에 있는 것만 선택해서 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옥수수를 딸 기회는 한 번 뿐입니다. 더 좋은 옥수수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 시험에서 거의 대부분의 아가씨들이 빈손으로 끝까지 오거나 망설이다가 마지막에 와서 딴 것이 볼품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좋은 옥수수가 눈에 띄어도 다음에 더 좋은 옥수수가 나타날 것 같은 기대감에 지나치다 결국은 그 많은 기회를 다 놓치고 빈손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중에서라도 좋을 것을 딴 것이 볼품없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인디언들은 자신의 딸에게 남편감을 잘 고르도록 가르쳤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자 할 때에 이거다 싶으면 저 앞에 더 좋은 게 눈에 보이고, 저거다 싶으면 그 앞에 있는 것이 더 좋아 보이기 마련입니다. 결국, 시간과 기회에 쫓겨 선택의 폭이 좁아지게 되면 후회를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혹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거나 더 좋은 기회를 기리다가 별 소득도 없이 또 가을을 맞이한 것은 아닌지요? 누가복음 12:47-48절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맡기신 것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나 자신의 신앙이 지난해나 올해나 변한 것도 없고 성장한 것도 없다면 주님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어야 하고 인생의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시간은 무한정 주어지지도 않고 우리를 기다려 주지도 않습니다. 본문 16절에서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고 하신 것은 때가 되면 지체 없이 심판이 시행됨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지금 주어진 시간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일 즉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음 기회’, 혹은 ‘내일’은 내게 주어질지 주어지지 않을지를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13절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혹시 우리 중에 아직 예수님의 재림이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확신되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그래서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지도 않으면서 안일하게 세상일에 빠져 살지는 않습니까? 히브리서 9:27절을 한 번 더 읽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제 이 심판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인생의 밤이나 혹한의 겨울이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합시다. 그리하여 언제라도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