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내 경영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678회 작성일 2017-04-05 17:24


*** 내 경영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 예레미야 45:1-5

예레미야 45:1-5, “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그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2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3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4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5 네가 너를 위하여 큰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들어가는 말

사람에게는 ‘자존감(自存感)’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스스로를 높이는 표현인 자존심(自尊心)’과는 다르며, ‘자신이 스스로 살아 있다고 느끼는 감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자존감이 도가 지나쳐서 교만이 더해지면 자존심(自尊心)이 되고, 자만심(自慢心)이 됩니다. 자만이란, 자신이나 자신과 관계가 있는 것을 스스로 뽐내며 자랑하여 거만하게 구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자존심이나 자만심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에게도 자신을 나타내려는 자존감을 넘어서 자신의 것을 주장하며 스스로 경영하려는 자만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만심의 대표적인 표현은 ‘내가 하겠다.’고 하는 ‘자기경영’입니다. 그래서 이 자만심은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미워하시고 대적하시는 불신앙의 대표가 됩니다. 이 자만심의 대표적인 사건이 바벨탑입니다. 창세기 11:4절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음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하였더니” 이것이 인간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즉 스스로 자신의 것을 경영하려는 의지입니다. 자신의 것을 스스로 경영하려는 것이 잘 못된 것일까요? 이제 이 사실을 살펴봅시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의 역사적인 배경은 남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인 남 유다 18대 왕인 ‘여호야김’(B.C 609-598) 때입니다. ‘여호야김’은 애굽 왕 ‘바로느고’가 섭정하여 세운 왕입니다. 남 유다는 이미 이 때에 애굽의 간섭에 들어가 있었으며, 자치권을 잃었습니다. 이 당시에 사역하던 선지자는 예레미야였는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다가 거짓 선지자들의 참소에 의하여 갇혀 있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바룩’은 ‘예레미야’선지자의 오랜 친구이자 서기관으로서, 예레미야와 함께 살아 온 사람입니다. 바룩은 갇혀 있어서 성전 출입을 하지 못하는 예레미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성전에서 낭독했습니다. 백성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겠고,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극심하게 반발 했습니다. 예레미야 38:3-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36:26절에서는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고 하십니다.

바룩은 백성들의 위협적인 반응과 ‘여호야김’왕과 최후의 왕인 ‘시드기야’왕의 반응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룩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5 네가 너를 위하여 큰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바룩이 스스로 살길을 찾으려는 것이 어리석은 행위임을 지적하십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경영은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처럼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시대적인 형편과 상황이 어려워지면 신앙이 위축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당당하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생명을 위협받는 살벌한 상황이 되자 집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스스로 육신적인 일을 계획하고 행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위태로울 때가 오히려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친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때입니다. 시편 50:15절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91:14-16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 스스로 경영하려 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성공전략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방법과 세상의 방식이 다릅니다.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과 도시를 건설하던 고대인들은 조상들의 시대에 일어난 대홍수의 두려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재난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들의 힘으로 스스로의 도시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창세기 11:3-4절입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하였더니” 또 다시 홍수가 덮쳐도 물에 무너지지 않도록 벽돌과 역청을 사용하는 치밀한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 바룩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멸망당할 것을 알았습니다. 시대적인 어수선함과 자신을 죽이려는 주변의 위협적인 세력들은 바룩을 더욱 두렵게 했습니다. 성경에서 구체적인 바룩의 계획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바룩은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최선의 방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룩의 경영이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5 네가 너를 위하여 큰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바룩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는 것은 자신들의 생각으로 스스로 경영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은 죄악으로 여기셨습니다.

남 유다의 12대 왕인 아하스 시대에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남 유다를 치러 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아하스 왕과 남 유다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아하스 왕에게 보냈습니다. 이사야 7:4-7절입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사도 바울도 이런 경영을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계산으로는 예루살렘에서 아시아 방향으로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소아시아 쪽으로 향했습니다. 사도행전 16:6-10절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경영한 일이 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마저도 스스로의 경영으로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에 대하여 결정하신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스스로 경영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적용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능력 있고 모든 일을 잘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경영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지혜자 솔로몬은 잠언 16:9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계획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그 일을 하나님께 먼저 아뢰고 도움을 구했습니까? 아니면 그냥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습니까? 인생들이 스스로 경영하는 일들은 세상적으로는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원한 생명과 삶에 대하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경영한다면 결코 그 일은 이루지 못합니다.

※ 하나님의 주인 됨을 인정하십시오.

‘술피시우스와 세베루스의 대화’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집트의 한 수도원에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수도원에 입회하기를 간청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그에게 ‘수도원의 으뜸가는 규칙은 복종인데 지킬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어떠한 명령이라 할지라도 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수도원장은 즉시 그 사람에게 말라버린 버드나무 막대기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막대기를 땅에 심고 막대기에서 잎이 날 때까지 물을 주라.” 수도원장의 억지 같은 명령이었지만 새로 들어온 수사는 매일 거의 십리나 떨어진 나일 강까지 걸어가서 물을 지고 와 마른 막대기에 물을 주었습니다. 일 년이 지나서 그는 약간 지쳤지만 성실히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또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계속 그 일을 쉬지 않고 해냈습니다. 3년째 접어들었지만 그는 막대기에 물을 주기 위해 여전히 나일 강을 왕복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 갑자가 막대기에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순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곧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잠언 16:3절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19:21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다는 ‘여호와 주권사상’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잠언 3:5-8절에서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쳘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서 잘 되는 길입니다.

본문에서의 바룩은 자신을 두렵게 하는 환경과 상황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께서 나라와 민족의 일들을 결정하시고 시행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닥친 이 위기의 상황을 스스로의 경영으로 벗어나 보고자 계획했습니다. 서론에서의 질문을 다시 합니다. 자신의 것을 스스로 경영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일까요? 자기 경영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룩의 생각을 환기시키셨습니다.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선언입니다. 세상을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세상만사를 경영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때를 따라 배치하는 일도, 생명을 거두고 일을 그치도록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33:3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신뢰하고 자신의 모든 경영을 아뢰고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을 경영하시고 때를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사야 48:17-19절입니다.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이제 여러분 자신의 일이라 할지라도 모든 경영을 우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께 그 일들을 아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계획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염려하고 근심하며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우리 마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한다면 내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며 따르십시오. 그리하여 힘들고 어렵고 위태로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평강이 강같이 흐르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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