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의 선택과 룻의 선택
*** 나오미의 선택과 룻의 선택 / 룻기 1:1-14
룻기 1:1-14, “1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 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들어가는 말
누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을 어떤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신앙의 정도를 따라서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겠지요. 저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바꾼다면 마태복음 16:24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산다는 것이 쉽다고 한다면 아마도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살기 어렵다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겠습니까? 세상과의 타협은 곧 영원한 영광의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마르키스’(Marquis)라는 사람은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황제의 술 관원이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세상에서는 권세가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부터 가족들의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마르키스는 아버지가 물려주는 유산을 거절하고 아들로 불리는 것조차 거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권세의 타락된 생활과 쾌락으로 썩어져 가던 부귀를 누리는 것보다 차라리 그리스도를 따라 기꺼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그리스도를 택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내와 자식과 모든 재물을 잃고 숱한 능욕과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마르키스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매일의 삶에서 선택과 결단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선택은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과 영원한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생애의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중요한 선택을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룻기의 역사적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중심인물은 모압 사람인 ‘룻’이라는 여인입니다. 사사 시대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신정통치의 한 부분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했던 여호수아가 죽은 후 첫 번째 사사로 등장한 ‘옷니엘’로부터 왕정 시대를 연 초대 왕 사울이 등극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기간은 13명의 사사가 통치한 342년간이었습니다. 사사 시대에는 종교도, 도덕도, 정치도 모두 극도로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였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다른 민족에 의한 핍박과 억압, 여러 가지 자연 재난에 의한 고통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았습니다. 룻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가뭄을 통한 흉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때,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 땅의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정이 흉년을 피하여 이방 나라인 모압 땅으로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피해 볼 심산이었는지 모르지만 본문의 사건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룻은 모압 이라는 이방 나라의 여인이었으면서도 결단 있는 선택으로 메시아의 족보에 오른 복된 여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66권 가운데 한 권으로 자리를 차지한 비중 있게 다루어진 행복한 여인입니다. 모압 족속은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에서 끊어진 저주받은 민족입니다. 신명기 23:3절에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저주받은 모압 족의 여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 기준이 흔들린 선택은 장래의 보장이 없습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 말론과 기룐 두 아들, 이렇게 네 명 한 가족이 고향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사한 이유는 흉년이 들어 먹고 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겠다고 고향을 떠나 이방 지역까지 온 이 가정에 기둥이 흔들렸습니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엘리멜렉이 죽은 것입니다. 빈자리를 메우려고 했는지 두 아들이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 두 며느리를 맞아들여 새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주한 지 10여 년이 지났을 때 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사람은 나오미와 두 며느리뿐이었습니다. 옛말에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는데 이 가정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도 시련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시련은 죄로 인한 것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든,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오미의 가정은 10여 년 사이에 왜 이런 큰 시련이 다쳤을까요?
이 가정은 중대한 실책을 범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계산으로 거주지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사 시대에 내린 긴 흉년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에 주어진 징계였습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가정은 그 징계를 피하려고 이방지역으로 갔습니다. 예레미야 11:9-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남 유다가 멸망했을 때에 남은 사람들이 애굽으로 도망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끝까지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피해서는 결코 형통할 수 없고 살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현실은 믿음과 인내로 극복하고 이기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징계라고 할지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나오미 가정의 또 하나의 실책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방인과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기 7:2-4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나오미 가정은 저주받은 민족인 모압 족 여인을 며느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기준이 흔들린 인간적인 선택은 장래의 보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만 더할 뿐입니다. 이 영적인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적인 사정이나 환경 때문에 신앙의 기준이 흔들려 인간적인 선택을 하면 결단코 장래의 보장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1:7-8절에서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 기준이 확고한 선택은 저주까지도 복으로 바뀝니다.
이제 더 이상 모압 지역에 살 이유가 없어진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마침 들려온 소식에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너희는 각기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즉 오르바와 룻에게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서 좋은 사람 만나서 재혼하라는 시어머니의 허락과 축복의 말입니다. 룻과 오르바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두 여인 모두 시어머니를 따라서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유대인의 법인 ‘형사취수제도(11-13절)’까지 설명하면서 재차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큰 며느리인 오르바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민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작은 며느리 룻은 죽는 일 외에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테니 더 이상 돌아가라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본문 뒤의 16-17절입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신앙의 기준이며 지조입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순간순간이 선택과 결단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 사이에서,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 사이에서, 이익과 손실 사이에서 항상 선택과 결단이 요청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아두고 선언합니다. 여호수아 24:15절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엘리야 선지자 시대에도 아합에게 미혹되어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선언합니다. 열왕기상18:21절입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그리고 마태복음 6: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번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룻의 선택을 보십시오.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기준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인 기준을 세우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불과 10년 만에 말입니다. 룻은 10년의 결혼생활 중에 남편과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10년 만에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룻은 육신의 옛 기준을 버리고 영적인 새 기준을 따랐습니다. 에베소서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인은 고린도후서 5:17절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새 사람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영적인 새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나오미는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룻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룻이 베들레헴으로 온 이후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의 믿음의 기준을 따라 시어머니를 섬기던 룻에게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붙여 주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오벳을 낳았습니다. 이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이며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즉 저주받은 민족인 모압의 여인이 신앙의 기준을 바꾸고 흔들리지 않은 믿음으로 메시아의 계보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민족이 성군으로 손꼽는 다윗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 위에 세운 기준에서 흔들리지 않으면 저주까지도 복으로 바뀌는 놀라운 은총이 주어집니다. 이 원리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복은 쫓아다닌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오미 가족처럼 환경과 자신의 생각을 따르던 기준을 버리고 룻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영적 기준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어떤 유혹과 시련이 와도 그 기준에서 흔들리지 말고 따라가십시오. 갈라디아서 6: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하십니다. 이런 견고한 신앙으로 룻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