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진짜 사랑합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224회 작성일 2017-09-20 16:21


*** 진짜 사랑합니까? / 요한일서 4:7-13

요한일서 4:7-13,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도 우리 하나님의 사랑 타령을 들려드리려 합니다. 아마도 오늘 여러분은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미쳤구먼!’ 이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미친 것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한 번 들려드렸던 예화 중에 일본의 전도자인 ‘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들려드리겠습니다.
가가와의 친한 친구가 가가와가 전도하는 빈민굴에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가가와가 전도하는 것을 보니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이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도박꾼, 싸움하다가 살인한 사람, 전과자, 창녀들을 전도하여 모아 놓고 예배를 드리는데, 모두들 찬송을 모르니까 가가와 혼자서 찬송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도박꾼이자 깡패인 한 사람은 술 취한 채로 예배당에 들어와서 토해놓기도 하고, 창녀들은 앉아서 히죽히죽 웃고 있습니다. 또 뒤에서는 남자들이 와서 예배하는 중인데도 창녀를 끌어내면 창녀는 일어나서 따라갑니다. 그런가 하면 깡패들이 찾아와서 돈을 내라고 가가와의 따귀를 때립니다. 그러면 돈을 주었습니다. 이 친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가가와에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가서 술 마시고 도박을 할 텐데 너는 위선이다. 네가 알고 주느냐?”
그때 가가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같이 한다. 우리가 어린이를 키울 때 넘어지면 일으켜 주듯이, 의사가 병자에게 주사를 놓고 또 놓듯이 저들이 넘어지면 일으켜 줘야 한다. 다 알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믿어 주고 참아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냐?”

정말 미친 사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마지막까지 참아 주고, 견디고, 속아 주는 것이 맞습니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3:4-7절의 사랑의 정의를 봅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랑입니다. 진짜 사랑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럴 수 있느냐?’라고 따지지 않습니다. ‘내가 이 돈 주면 가서 술 먹을 거지?’라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면서 ‘너 지난번에도 그랬지 않느냐? 지금 용서해 주면 다음에 또 그럴 거지?’라고 따지지 않으셨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요한일서뿐만 아니라 요한서신을 기록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입니다. 이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많이 사랑했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요한에게 누구인지 말하라고 하면서 요한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 13:23절입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이렇게 다른 제자들이 인정할 만큼 요한은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으며 많은 사랑을 받는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사랑의 가치와 효용성을 잘 알았기 때문에 요한복음이나 요한서신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깊이 있게 가르치며 권면합니다. 요한복음 13:34-35절을 봅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사랑에 대하여 요한복음 15장에서 더 자세하게 밝힙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한 요한은 초대교회가 이단과 황제숭배와 유대인들의 위협과 박해로 말미암아 고난당하는 것을 잘 이겨내도록 가르칩니다. 이렇게 이단을 경계하고 싸우며, 박해를 이겨내려 하다가 자칫 사람을 미워하게 되거나 정죄하는 죄에 빠지게 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이미 예수님께서 주의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10-12절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렇게 거짓과 불법이 판치는 세상이 되면 아무리 신앙심이 깊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경계하느라 의심하게 되고 사랑이 식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러한 환경에 직면하더라도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되며 더욱 깊은 사랑을 하도록 권면합니다.

※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이 왜 사랑해야 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ἔρως, 성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 중에서 최고의 은사이며,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 중의 첫 번째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서 말씀하는 말세에 성도들이 지켜야 할 삶의 자세 8가지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것도 역시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613가지의 율법을 요약하셔서 새 계명을 가르치신 두 가지는 하나님 사랑함과 사람 사랑함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사랑(ἀγάπη, 희생적사랑)’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본문 7-8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떻게 감히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름대로 신실한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으로 살기 위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음식을 나누며, 서로 고민을 나누며, 어려움을 함께 헤쳐가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갔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 이들은 모두 서로 탄식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흩어지기에 앞서 그 공동체의 대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생명을 내놓는 순교는 할 수 있겠는데 진짜 여러분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회원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초대교회도 처음에는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사도행전 4:32-35절을 봅시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이러한 초대교회 공동체도 오래 가지를 못했습니다. 분배에 대하여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나타났고, 극심한 박해로 말미암아 공동체를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더 극심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 서 보았던 마태복음 24:10-12절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처럼 사랑을 하기에도 힘들지만 사랑을 지켜가기에도 벅찬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5:12-14절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가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지금 우리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금의 내 사랑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예수님을 진짜 사랑하는가? 나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들을 진짜 사랑하는가?” 진짜 사랑하고 있다면 생활 속에서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확증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칭찬과 책망, 그리고 권면이 담긴 편지를 받았던 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있습니다. 맨 처음으로 편지를 받은 에베소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책망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4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여기서의 “처음 사랑”은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가려내고, 거짓 사도들을 구별하느라 교인 서로 간에 의심하고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비록 교리적으로는 칭찬할 만 했지만, 사랑을 잃어버리고 생명 없는 형식적인 신앙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5절에서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사랑은 ‘처음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를 돌아보십시오. 그저 막연히 교회를 다니다가 어느 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의 그 기쁨과 감격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찬양하면 눈물이 나고, 기도해도 눈물이 나고, 왠지 모르게 주님이 좋기만 하던 그런 사랑 말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신앙생활이 익숙하여 지면서 점점 요령이 생기고 꾀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는 것도 자꾸만 이유가 생기고 피하게 됩니다. 순수하던 사랑은 잃어가고 대신 인간의 잔꾀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꾀가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우리도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던 예수님의 음성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5절을 현대어성경으로 읽겠습니다. “네가 처음으로 나를 사랑하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라. 그래서 그렇게 달라진 이유를 찾아 깊이 뉘우치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 그전처럼 힘써 노력하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릴 것이다.” 우리가 처음 사랑과 열정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우리의 자리를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본문 10-11절을 봅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형식적이거나 거짓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당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거짓 없는 진실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연기자의 사랑이 아니며,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백화점이나 고객센터의 직원들이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하는 입술에 발린 사랑도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22절을 봅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에서 “뜨겁게 사랑”은 ‘열정적인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불이시며 피조물 인간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실 만큼 열정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며, 살맛나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랑’입니다. 인간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당신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면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고 하십니다. 힘들지만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부끄러움 없는 아름답고 신실한 삶을 이루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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