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신 주님
*** 나를 부르신 주님 / 마가복음 1:14-20
마가복음 1:14-20,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 들어가는 말
9월 첫 주일이 대복교회가 이 마을에 세워진지 만 23년이 되는 기념일입니다. 오늘 기념주일로 하나님께 감사예배 하면서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제자들을 부르시던 때의 말씀을 살펴보려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시고 세우신 교회와 일꾼으로 부프셨던 제자들의 목적이 이 말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복음 전파입니다.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선포가 최초의 복음입니다. 복음(福音, Gospel, εὐαγγὲλιον))이란 말 그대로 ‘Good news’ ‘복된 소식’입니다. 인류에게 가장 복된 소식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결별하여 영의 생명이 죽어버린 인류에게 생명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사람으로 보내셨고 인류의 생명 회복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삶을 위하여 다시 살아 나셔서 참 소망이 되셨습니다. 이 복음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이 있으며, 복음으로 말미암는 새 생명을 누리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위하여 교회가 없는 대복마을에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23년 전의 대복마을은 125 가구가 사는 자그마하고 고집스러운 시골마을이었습니다. 교회가 처음 들어서는 것이어서 핍박과 냉대도 만만찮았고, 교회를 나타내는 십자가와 현판을 세우는데 10개월이 걸렸습니다. 첫 예배는 1994년 9월 4일 오전11시 주일 낮 예배였습니다. 우사를 개조하여 사택으로 사용하던 단칸짜리 방에서 8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대복마을에 첫 교회의 감격스러운 예배였습니다. 그 후 겨우 4-5평정도 되는 작은 창고를 개조해서 교회당을 만들었으며, 99년 2월까지 5년여를 사용했습니다. 지금 이 교회당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2개월간의 수리를 거쳐 99년 2월 28일 주일에 입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못자리 교회로서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거쳐 갔습니다. 아직은 미미하고 작은 교회이지만 이 시대에 생명의 등불을 밝히는 깨어 있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23세의 혈기 방장한 청년교회로서 나를 이 시대에 부르신 주님의 뜻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제자인 마가가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글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무렵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랜 영적암흑기를 지내면서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을 ‘메시아 대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닫혔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며, 회개를 전파하며, 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3:3절입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세례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 만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고 악한 연고로 선지자들마저 거두시고 아무런 징조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긴 세월을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했습니다. 바로 이 때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마른 땅에 단비를 만난 듯이 광야로 모여들었으며, 회개하고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무렵에 30여 년 동안 세상의 평범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공생애라 일컫는 3년간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함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이끌리어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당시의 유대 지도자였던 분봉 왕 헤롯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한다는 이유로 세례 요한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한의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요한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위하여 세우신 전무후무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인 복음을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선포는 세상을 뒤엎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술렁거렸으며 예수님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한 첫 제자들을 부르기 위하여 밤새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를 거니시다가 그곳에서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제자가 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요청을 받은 어부 형제는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역시 호숫가의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만나셨고, 그들도 부르셨습니다. 그 형제도 즉시로 아버지와 일꾼들과 삶의 현장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의해서 보아야 할 단어가 “곧”이라는 단어입니다. ‘유데오스’(straightway) 이 단어는 ‘∼하자마자’ ‘즉시’ 이런 의미입니다. 즉 이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망설임 없이 즉시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마땅한 반응은 순종입니다.
요즘은 사람을 돕는 개들이 많습니다. 맹도견, 청도견, 간병견 이들을 장애인 보조견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군견, 마약탐지견, 사냥개 등. 이들이 이렇게 사람에게 유익한 존재로 사용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하는 훈련이 ‘복종훈련’입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개라고 하더라도 주인의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며 오히려 위험한 존재가 됩니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군인, 경찰 등도 가장 기초교육이 복종훈련입니다. 영적인 군사인 그리스도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 40년 동안 받은 훈련이 바로 ‘복종훈련’이었습니다. 신명기 8:2-3절을 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는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본문말씀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처음으로 제자로 지목되어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는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중이었습니다. 일하던 중에 부르심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이들 뿐만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 형제도 역시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중에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주님을 따랐습니다. 본문 20절입니다.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여러분은 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자신의 장래에 대한 내용들을 알고 따랐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즉시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한 순간에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사람들은 팔이 안으로 굽듯이 모든 일을 자신의 방식대로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I can do it.'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외칩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세상의 지식과 힘과 권력과 부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자랑합니다. ‘내가 해냈다.’ ‘내가 이루었다.’ ‘I maid it,' 마치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던 고대 인류들과 같습니다. 그들도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는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많은 지식이 있는 사람보다, 많은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순종이란, 그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는 말씀에는 이러한 순종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르다.’는 말은 ‘…을 따라서’라는 의미도 있지만, ‘…을 향하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의 방향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24절에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이 요구하는 것도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아서 믿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성경의 그 많은 말씀들을 다 알지도 못하거니와 하라고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할 엄두가 안 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말씀들은 물론 ‘지키라.’고 하는 것도 많지만 많은 부분이 삶의 여러 상황과 환경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들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청종(聽從)’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지지 말고 믿고 순종하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신앙생활에 대하여 조건을 내세워 타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내가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조금하고, 기도생활도 하고, 나름대로 어느 정도 헌신을 하니, 내가 한 것에 대하여 은혜와 복으로 보상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내 마음대로 또는 내 생각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실망이 되고 신앙마저 떨어져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욥기 41:11절입니다.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또 하나 로마서 9:20-21절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주권선언입니다. 이 말은 ‘피조물은 창조주에 대하여 복종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당연히 순종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유명한 곡예사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높은 수평봉에 매달려 재주를 부리는 곡예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곡예사는 이 곡예를 부리는데 필요한 모든 부분을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에게 ‘한 사람씩 배운 대로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소년이 까마득히 높이 걸려 있는 봉을 쳐다보고는 겁에 질렸습니다. 자신이 그 높은 봉에서 떨어지는 무서운 광경을 상상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소년은 곡예사에게, “못하겠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 때 곡예사는 포근하게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단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너에게 가르쳐 주마.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이 곡예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마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던지면 내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19-21절을 봅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목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 몸도 따라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귀한 보물이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면 우리 몸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내 마음을 두고 순종하고 따르면 모든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이처럼 진정한 복은 순종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이것이 복입니다. 요한복음 15:10-11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환경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나 자신의 생각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마음을 던지는 것이 제자로서 순종의 길을 가는 첫걸음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르면 이런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2:28-30절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우리 대복교회가 이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여 이 큰 영광의 약속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