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온전하게 세워가는 인생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101회 작성일 2017-07-25 23:04

*** 온전하게 세워가는 인생 / 로마서 13:8-14

로마서 13:8-14,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들어가는 말

물고기도 기억력이 있을까요? 짧지만 있습니다.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낚시에 걸려 잡혔을 때 다시 놓아주면 금방 다시 잡힌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이 끝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어리석게 그 길을 따라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하면서도 그 줄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끌려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죽음을 대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 청주지역에 호우로 인하여 큰 재난이 일어났습니다. 방송에서는 이 일을 ‘인재(人災)’라고 합니다. 이는 ‘그렇게 될 줄 알고도 대비하지 못해서 재난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절입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예고 없이 닥치는 영적 재난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성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이 타락했던 젊은 시절, 그에게 회심의 전기를 만들어 주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문 11절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때가 벌써 2000여 년 전입니다. 종말은 예수님께서 오신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계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잃어가고 있는 자연의 움직임을 보면 분명히 마지막 세대 중에서도 거의 끝부분임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까지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은 종말이라고 떠들어대지 않았느냐?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불로 심판을 받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으며, 또한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8:22절에서,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지 누가복음 17:26-29절을 봅시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느끼고 준비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때는 번개가 동에서 서에까지 번뜩이듯이 그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한 길은 자신을 온전하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 온전한 삶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특이한 점이 꿈, 즉 이상(理想)이 있다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짐승들에게는 이상이란 없습니다. 다만 현실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에게서 꿈을 빼앗아 버린다면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을 것입니다. 즉 理想이 있는 人生이 바로 살아있는 人生입니다. 각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이상이 다르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이상은 하나입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만 위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헛될 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그 이상이 실현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하며, 현실의 여러 장애물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말씀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본문 8절과 14절을 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하나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두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실질적인 삶에서 이루어야 할 영적인 지표입니다.

먼저,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살펴봅시다. 이 말씀은 ‘세상에 미련을 남길 일이나 사탄에게 꼬리를 잡힐 것을 남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남긴 대표적인 인물이 롯의 아내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실 때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정을 생각하셨습니다. 천사는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을 소돔 성에서 내 보내면서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습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라는 것은 ‘멸망하는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9:17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그런데 26절을 봅시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터전이었으며 모든 것이 그대로 있는 소돔 성에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롯이나 두 딸들도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왜 미련이 남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랑의 빚은 허용하셨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할 최고의 덕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6:14절에서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했으며, 13장에서는 ‘사랑이 빠진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으며, 동시에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3:10절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이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는 사랑이 가미되어야만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것은 ‘세상에 미련을 남기지 말고 모든 일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 본문 11-14절에서 말씀하는 ‘주 예수로 옷 입으라.’는 말씀을 봅시다. 앞에서 말씀드린 사랑이 중요한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으면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이 말씀 안에서 강조한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때에는 세상이 방탕한 것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말 중에서도 말세인 지금 세대에는 온 세계가 방탕과 혼란이 점차 가중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1:34-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예수님 재림 전에 온 세상에 임할 대 환난은 예외가 없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을 환난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똑 같이 주어집니다. 다만 이 환난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혹독하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깨어 있는 것만이 그나마 환난을 피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36절에서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본문 12절에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탄과 그의 추종 세력들의 한 복판에서 싸우는 군인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방탄복과 같은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은 사탄의 시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갑옷입니다. 이것을 빛의 갑옷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입어야 할 것은 본문 14절의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13절에서 언급된 여러 가지 천박한 정욕들에 대립하는 것입니다. 방탕과 술 취함을 마땅히 벗어버려야 하며, 음란과 호색, 다툼과 시기 등과 같은 육신적인 욕망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새 사람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렇게 새 사람이 입어야 할 옷은 진리를 따르고 신실하게 행동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삶을 말합니다. 특히 성경에서 옷으로 비유하는 것은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 19:8절에서 그 옷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그러므로 말세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욕망을 따르는 옛 삶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진리와 거룩함과 신실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위하여 예수님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본문 14절의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몸을 소중히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몸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영의 생명을 준비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으로는 첫째, 지나친 염려로 고민하는 것과 먹고 사는 일을 꼽습니다. 즉 마음을 졸이며 번민하는 염려를 금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둘째는 몸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마땅히 고려되어야 하지만, 부정한 욕망에 빠져 육신적인 만족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자연스런 욕구는 충족되어야 하지만 부정한 욕망들은 억제되고 거절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교회는 이 시대에 세워진 망대이며, 성도는 보내심을 받은 파수꾼들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불안하고 긴장된 사회, 죄악의 밤이 깊은 복잡한 때일수록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어떻게 깨어 있습니까? 말씀에 깨어 있고, 기도에 깨어 있고, 감사에 깨어 있고, 찬양에 깨어 있고, 내 영적인 감각이 깨어 있어 주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이렇게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우리 구원이 전보다 더 가까워졌으며, 우리의 대적인 마귀는 우리가 자고 쉬는 동안에도 자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사람으로 큰 죄를 범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타락시키는 수법을 쓰지도 않습니다. 마취제를 뿌려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적으로 졸게 만듭니다. 예수를 믿되 기분 좋게, 그리고 쉽게 믿으라고 마취제를 슬슬 뿌려서 서서히 잠을 자게 만듭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가장 고귀한 보배인 믿음을 도적질하고 영혼을 도둑질해 갑니다. 그러므로 영의 생명을 빼앗기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일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어떤 일에서나 최선을 다하라.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게 하는 사랑을 가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진리와 거룩함과 신실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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