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삶
***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삶 / 고린도후서 1:15-22
고린도후서 1:15-22,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 들어가는 말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그 많은 길이 모두 내가 가려는 목적지로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목적지와는 상관 없는 길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려는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잘 찾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교회마다 ‘작정헌금’이라는 명목이 있었습니다. 특히 부흥회 때에 많이 하게 되는 헌금인데 ‘지금 현재로는 돈이 없어서 헌금하지 못하지만 이후에 이만큼 헌금하겠다는 약속헌금’입니다. 그런데 작정헌금의 폐해가 많았습니다. 어떤 분은 부흥회 때에 은혜가 넘쳐서 작정헌금을 했는데 그 후에 그 작정이 부담이 되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신앙적 가책으로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에 감격으로 일어났던 하나님의 은혜가 돈이나 물질 때문에 시험거리로 바뀌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정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원하지만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 원인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책망하는 성도들에게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15-17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마음이 진실했음을 단언합니다. 15절에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고린도교회에 갈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이러한 경영이 결코 경솔하지 않았음을 예, 예라고 하고서는 아니, 아니라고 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없었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즉 자신의 계획을 변경한 것은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긍정적인 생활자세’를 말씀합니다. 본문 20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으로 응답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라고 하는 단어는 원어로는 ναι(nai, yes)라고 했으며, 이 단어는 강한 확인을 나타내는 말인데 ‘꼭 그대로’, ‘분명히’, ‘참으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꼭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기 위해서는 “아멘”으로 응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은 그렇게 이루어짐으로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아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멘이란 본래적인 의미로는 ‘굳건히’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확실히’, ‘그렇게 되옵소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성령을 성도들에게 주신 이유입니다. 본문 22절에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신 이유를 ‘보증’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도장을 찍으셔서 성도로 삼으셨다.’는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보증’이라는 말로 αρραβον(arrabon, pledg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보증금’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잔여분의 보증을 위한 ‘공탁금’, 혹은 ‘재물’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대로 우리 마음에 성령이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을 수 있는 자격자임을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토록 불변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증까지 소유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인간적인 생각을 제거해야 합니다.
앞에 도입부분에서 보았던 작정헌금의 경우를 봅시다. 여러분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했다가 오히려 시험에 빠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찾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마음의 벅찬 감격으로 헌금을 작정했습니다. 하지만 생활의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인간적인 생각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습니다. ‘괜히 작정을 했나?’ ‘너무 무리하게 했나 보다.’ ‘조금만 적게 하면 안 될까?’ 등등. 세상적인 계산과 함께 인간적인 생각이 불신앙을 부채질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불신앙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좋은 예가 사도행전 5:1-11절에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성도가 한 마음이 되어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기쁨으로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마음에 감동이 되어 베드로에게 ‘자신들의 땅을 팔아서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땅을 팔아서 돈을 손에 쥐고 보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땅 값 중의 얼마를 떼어서 감추어두고 나머지를 베드로에게 내 놓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에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세상적인 계산, 인간적인 생각이 문제입니다. 아마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정직하게 땅 값 중의 일부는 자신들이 필요하여 따로 떼어 두었다고 했더라면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물질을 드린다거나 봉사나 섬김이나 어떤 약속을 스스로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생활과 환경을 보게 되면 감사의 마음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감격이 될 때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생활과 환경이 보이면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금액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그 돈이면 이런 것을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감격이 될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로 돌아오면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모습이 더 크게 부각됩니다.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자신의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게 됩니다. 본문 19절에서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 했는데, 인간적인 생각이 들게 되면 ‘예’라고 했다가도 돌아서서는 ‘아니라’고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은 결단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합니다(발람의 경우). 그러므로 성령님의 감동으로 일어난 생각은 즉시 실행해야 하며, 곱씹어서 올라오는 인간적인 생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아멘의 마음이 변치 않아야 합니다.
본문 20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사람’ 즉 ‘한 번 마음먹은 것을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이사야 26:2-3절입니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이렇게 신의를 지키는 나라, 마음이 견고한 사람을 구원하시고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믿음의 선조들이 남긴 말 중에 ‘첫 번째 주는 생각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며 두 번째 주는 생각은 사탄이 주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19절을 다시 봅시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예’만 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실 때에는 ‘예’라고 대답하고 즉시 ‘아멘’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은 다시 생각하면 반드시 인간적인 생각이 파고듭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려면 성령께서 주신 생각에서 다시 한 번 곱씹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18-20절을 봅시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천사의 방문을 받고 아내인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의인이라(6절)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에 흠이 없는 사람도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가니까 불신앙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누가복음 1:34-38절을 봅시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베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아서 잉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마리아는 처녀로서 스스로 잉태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아닌 대요.’라고 대답하여 불신앙을 보였지만 마리아는 천사가 전하는 말에 단번에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 12:14절입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지.’라고 하지 마시고, ‘아멘’으로 시인하고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약속을 마음으로 믿고,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실천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입이 무거운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표현이 분명해야 합니다. 로마서 10:10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곧 본문말씀처럼 ‘아멘’으로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표현하는 입술의 말대로 시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14:28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하여 실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생명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실현하는 사람을 성령께서 보증하십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예’라고 대답하고 ‘아멘’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실천하는 삶입니다. 이런 심지가 견고한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생활 속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