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 이루기를 원한다면
*** 소망이 이루기를 원한다면 / 신명기 31:1-8
신명기 31:1-8, “1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2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4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5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꼭 한 가지의 소망을 말하라고 하시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는 개인적인 기도를 할 때면 빼지 않고 간구하는 꼭 하나의 소망이 있습니다. ‘나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 안에서 행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실현 가능한 소망도 있지만 실현 불가능한 것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세상적인 것을 바라는 가하면, 영원한 것을 바라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소망하겠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세상의 것이 아닌 영원한 가치를 가진 것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8:24-25절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육신적인 소망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적이 소망이든지 영적인 소망이든지 모든 소망이 이루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신명기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설교와 마지막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40년을 지나 이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이 저 멀리 보이는 모압 평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방황했던 이유는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처음 계획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 시내산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율법으로 계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서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계약을 맺은 후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을 나온 지 3개월 만에 시내 산에 도착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육을 마친 이스라엘은 둘째 해 둘째 달 20일에 가나안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신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38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불신앙의 사람들이 다 죽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2:14-15절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이제 애굽을 나온 지 40년이 지났고 불신앙의 사람들도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불신앙 때문에 화를 냈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여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웠고 그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면서 담대하라고 합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이렇게 불신앙적인 모든 요소가 제거되기까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소망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제 불신앙의 요소들이 제거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강하게 하셔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하십니다.
※ 소망이 이루기를 원하면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새벽편지에 올라온 감동 사연이 있었습니다.
케냐에 사는 에스라는 두 다리와 한 팔이 없이 태어났습니다. 에스라가 8살 되던 해에 비슷한 모습을 가진 닉 부이치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늘 상상 속에서 날아다니는 꿈을 꾸던 에스라는 두 다리와 두 팔이 없이도 하고픈 일을 해내는 닉 부이치치를 보며 ‘마음속에 담아둔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팔과 다리 네 개가 없지만 나는 두 다리와 한 팔, 세 개만 없으니… 내가 가진 작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이 하나의 손이 내가 꿈꾸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줄 거야.”
그날 이후 에스라는 꿈 많은 고등학생으로 성장하여 케냐 최고의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케냐 대통령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에스라에게서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소년 에스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부정적인 생각’ ‘불가능한 현실’ ‘자신의 나약한 의지’등을 극복하고 제거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는 능력을 행하실 수 없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6:1-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불신앙적인 요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소망을 이루시는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 오셨을 때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고 그 아버지가 호소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저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불신앙적인 요소를 품고 있을 때는 소망을 이루기는커녕 하나님의 은혜조차 입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불신앙적인 요소는 많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예를 본다면 불평과 원망과 두려움이 불신앙적인 요소입니다. 모세는 더 이상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여호수아에게 신신당부합니다. 지금까지 40년 동안 수없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불신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이 없다. 고기 먹고 싶다. 길이 험하다. 채소를 달라. 틈만 나면 주변의 민족들에게 섞여서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민수기 14:22-23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에서 “열 번이나”라는 표현은 꼭 열 번이 아니라 ‘수없이 많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불신앙적인 요소를 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결단코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단단히 당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불신앙적인 요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 소망이 이루기를 원하면 하나님께 의뢰해야 합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값비싼 바이올린 이름입니다. 현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13억-100억까지 간다고 합니다. 이 바이올린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라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스트라디바리는 자신의 시(詩)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손을 늦춘다면 나는 하나님에게서 훔치는 것입니다. 당신께선 안토니오 없이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을 만드실 수 없으십니다.”
스트라디바리는 평생에 1,100여 개의 악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악기들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깎아 만드는 하나하나의 손길에 하나님을 향하는 정성을 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세계 최고의 명품이 된 것입니다.
스트라디바리의 확신하는 신앙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확신뿐만 아니라 자신은 하나님을 온 정성을 다하여 믿고 의뢰하였음을 나타냅니다. 본문 5절을 봅시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싸워서 얻어야 하는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가시며 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방법과 다른 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분이 높을수록 뒤쪽의 안전한 곳에 머물면서 명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앞서 가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자들도 백성들 앞에서 본을 보이며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0:4절의 ‘양의 우리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그리고 요한복음 13:14-15절에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3:7-9절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리고 이어지는 12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라고 경고하시며, 14절에서는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매일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시며 마땅히 나아갈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소망이 이루기를 원한다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순종을 위하여 40년을 광야에서 훈련받아야 했습니다. 곧 광야의 고난을 통하여 불순종과 거역이라는 찌꺼기를 걸러내셨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십니까? 영적인 소망이든 육신적인 소망이든지 이루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내면에서 불순종의 요소들을 제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뜻에 온전한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리하여 이 시대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시며 우리가 소망하는 바를 넉넉히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