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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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에서 벗어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513회 작성일 2018-01-30 23:25

*** 염려에서 벗어나십시오. / 빌립보서 4:4-7

 

빌립보서 4:4-7,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들어가는 말

 

영국의 비평가이며 역사가인 ‘칼라일(Thomas Carlyle)’의 일화입니다. 그는 항상 생각하고 글을 쓰며 조용한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집에서 닭을 몇 마리 기르는데 새벽마다 ‘꼬끼오’ 하며 우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결심을 하고 옆집의 주인을 만나서 사정을 말했습니다. 칼라일의 사정을 들은 그 주인은 “하룻밤에 기껏 서너 번 밖에 울지 않는데 뭘 그러시오.”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습니다. 칼라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닭 울음소리를 기다리느라고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소.”

 

여러분은 비슷한 경험이 없습니까? 하룻밤에 서너 번 우는 소리이지만 칼라일은 ‘닭이 곧 울 텐데.’라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강박증’이라고 합니다. 즉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을 쓸데없이 염려하는 현상’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의 마음을 태우고 뼈를 마르게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근심’으로 번역되는 헬라어가 여럿인데, ‘자극하다.’ ‘선동하다.’ ‘한숨 쉬다.’등의 의미이며 ‘염려’라는 말은 ‘근심하다’ ‘생각에 잠기다.’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들은 ‘스스로를 자극하고 선동하여 숨을 틀어막는 것’을 뜻합니다. 마음에서 한 가지 염려가 슬그머니 일어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갖 것들이 다 일어나게 됩니다. 나중에는 근심에 짓눌려 힘이 빠지고 육신적, 영적인 무기력 증에 빠지게 됩니다. 현대인의 수많은 질병 중에서 60-70%가 염려와 근심과 같은 심리적인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언 15:13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으며, 17:22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올 2018년에 벗어나야 할 것 세 번째로 ‘염려와 근심’을 살펴보려합니다. 이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염려와 근심이 우리의 육신과 마음을 병들게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하나님을 불신하는 표현’이라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10절에서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육신이나 영의 생명과 삶에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이므로 반드시 벗어나야 합니다.

 

※ 염려와 근심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이치를 간파한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싸우는 대적의 정체를 알고 나 자신의 신앙의 자리를 알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의 말씀이 잘 설명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이는 자신의 신앙의 자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신앙의 자리를 분명하게 알고, 내가 싸우는 대적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대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6: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5:8-9절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대적이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라는 것입니다. 이 사탄의 권세가 사람을 조종하는 수단 중의 하나가 염려와 근심입니다. ㅋ우리 마음에서 염려와 걱정, 근심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세운 목표’가 원인 제공자입니다. 즉 내 생각이나 내 계획에 따르면 이 일은 이렇게 되어야 하고, 여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와 목적이 염려를 일으키는 원인자입니다. 예컨대, 자신의 필요에 의하여 ‘오늘 장사하여 십만 원의 이익을 올려야 한다.’는 목표를 세워두면 그 결과가 목표에 이르지 못할 때에 염려, 근심이 일어납니다. 만일 그런 목표가 없다면 얼마가 팔리든 마음 쓸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따른 목표와 목적을 설정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계획이나 목표가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따른 목표와 목적을 설정한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각이나 계획, 목표나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 밖에 있을 때의 상황을 에베소서 2: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리고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깨달은 후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3:7-9절상반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던 옛 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는 예전에는 모든 일에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따른 목표와 목적을 설정했었지만,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뜻과 계획이 내 목표와 목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권세는 우리가 이렇게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러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도록 부추깁니다. 이렇게 하는 수단과 방법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염려와 근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염려와 근심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3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그리고 앞서 보았던 고린도후서 7:10절에서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의 숨겨진 뒷면에는 사탄의 권세가 웅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어떻게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염려가 안 되겠습니까? ‘근심하지 말아야지.’한다고 근심에서 벗어나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재난을 당하여 큰 근심에 빠졌습니다. 이 사람은 깊은 고민으로 인해 얼굴마저 수척해졌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은 마을의 현자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제가 큰 재난을 당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현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방이 어두워졌을 때 빗자루를 가지고 어둠을 쓸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촛불을 밝히지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촛불입니다.”

 

이 현자의 표현이 그대로 본문말씀에 있습니다.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은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거리를 없애려고 해보세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깊이 파고들게 됩니다. 어둠을 벗어나는 길은 불을 밝히는 것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기대는 것뿐입니다. 본문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기댈 수 있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염려와 근심거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기쁨과 관용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한데 기뻐집니까? 내 걱정거리도 한 짐인데 다른 사람을 표용하고 관용하게 됩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뢸 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왜 ‘감사’라는 조건을 붙였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즉 지금 내게 닥친 염려와 걱정, 근심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주관하심 안에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내게 닥친 염려와 근심거리들로 말미암아 잠시라도 두려워했었다면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이 일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내 생각, 내 계획대로 하려 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주인 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내용이 ‘감사’라는 말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난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편 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날 때에라도 이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긍휼을 구하십시오. 이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12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이 믿음은 우리가 육신이 마지막 호흡하는 순간까지 지켜야 합니다. 사탄의 권세는 이 믿음을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22절에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그리고 베드로전서 5:8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십니다. 이 심각한 경고는 지금 우리 시대에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두울 때에 불을 밝히듯이, 우리의 삶에 염려와 근심의 어두운 그늘이 덮을 때에는 기도의 불을 밝히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인 되심을 믿고 여러분의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본문 7절의 약속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온 젊은 방문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젊은이는 스승에게 자기의 고민거리를 한참 이야기하고는 다시 자신의 장래 계획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젊은이의 찻잔에 차만 계속하여 따르고 있었습니다. 차는 찻잔에 흘러넘쳐 앉은 자리까지 흥건히 적시고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이야기에 도취되어 떠들어대던 젊은이는 놀라서 스승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잔이 넘쳐흐르는데 어찌 자꾸만 따르시는지요?”

그제야 스승은 입을 열었습니다.

“이 찻잔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은 너무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네. 그 마음의 잔을 비우지 않으면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가 없다네. 가르쳐 준다 해도 들어갈 곳이 없어 모두 넘쳐버릴 것이오.”

 

  우리는 이 젊은이처럼 너무 많은 것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염려와 근심거리들이 더 많아집니다. 세상의 것으로 너무 많이 채우면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고 근심거리들만 많아집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염려와 걱정, 근심거리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기쁨과 감사로 기도의 불을 밝히며 주님을 따라갑시다.

 

본문말씀을 다시 한 번 읽고 마치겠습니다.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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