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에서 벗어나십시오.
*** 고집에서 벗어나십시오. / 로마서 2:1-8
로마서 2:1-8,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 들어가는 말
옛날에 고집 센 사람과 나름 똑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둘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는데ᆢ 고집 센 사람은 4X7은 27이라 주장하였고, 똑똑한 사람은 4X7이 28이라 주장했습니다. 한참을 다투던 둘은 답답한 나머지 마을 원님께 찾아가 시비를 가려줄 것을 요청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원님이 한심스런 표정으로 둘 을 쳐다본 뒤 고집 센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4x7이 27이라 말하였느냐?"
"네,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했는데, 글쎄 이놈이 28 이라고 우기지 뭡니까?"
그러자 고을 원님은 다음과 같이 선고 하였답니다.
"27이라 답한 놈은 풀어주고 28이라 답한 놈은 곤장을 열대 쳐라!"
고집 센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놀리면서 그 자리를 떠났고 똑똑한 사람은 억울하게 곤장을 맞았습니다. 곤장을 맞은 똑똑한 사람이 원님께 억울함을 하소연하자 원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4x7이 27이라고 말하는 아둔한 놈이랑 싸운 네 놈이 더 어리석은 놈 이니라! 내 너를 매로 쳐서 지혜를 깨치게 하려 한다."
잠언 9:7-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고집 세고 교만한 사람을 책망하면 도리어 흠이 잡힌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이런 재미있는 글이 있었습니다. “개랑 싸워서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 개랑 싸워서 지면 개보다 못한 놈, 개랑 싸워서 비기면 개 같은 놈.” 고집스럽고 교만한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고 교만한 사람을 정말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미련하고 교만함이 어떠함을 잠언 27:22절에서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표현 했습니다. 그래서 올 2018년에 벗어버려야 할 심성인 ‘고집’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고집(固執)이라는 말은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자신의 생각을 바득바득 우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성질을 아집(我執, 자신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우는 것)이라고도 하며, 이것들은 교만한 마음의 성질들입니다. 교만의 특징은 자신 스스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악한 성품은 그리스도인에게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5절에서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시며, 예레미야 50:31절에서는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날 곧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고 하십니다. 말라기 4:1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베드로전서 5:5절에서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성경에서 교만을 좋게 말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이 교만의 구체적인 표현 중의 하나가 바로 고집입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하십니다.
※ 고집이 무엇이며, 고집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활동하는 무대입니다. 이 말은 사탄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도록 허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활동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사탄이 자신에게 허용된 권세를 사용하여 할 수 만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라도 유혹하려고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까지도 유혹했는데,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누가복음 4:5-7절을 봅시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이처럼 사탄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면서 그것으로 사람들의 온 마음과 관심을 빼앗습니다. 이 사실을 에베소서 2:2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람들은 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세상의 부귀영화에 빠져듭니다. 마치 나방이 불로 뛰어들듯이 말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즐거움과 부귀영화와 권세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입니다.
그러면 왜 사탄의 세력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유혹하려고 합니까? 데살로니가후서 2:3-4절을 봅시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이것이 사탄의 세력들이 나타내는 교만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고는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합니다. 이는 사탄이 하나님으로부터 천사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입니다. 사탄이 하나님보다 높아지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자신이 그러했듯이 사람들을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미혹할 때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고 한 것과 같습니다.
사탄이 왜 이런 짓을 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아래의 11-12절에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영적이 고집이자 아집이며 교만입니다. 즉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여 그 불의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말로 쉽게 표현하면 ‘복음과 진리, 정의와 공의로운 일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생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교인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본문 1-3절이 잘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이 말은 여러분이 잘 아는 말, ‘내가 하면 법이고, 남이 하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미혹을 받게 하셔서 결국 심판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고집과 교만의 시작점은 하나님의 자리를 탐했던 사탄의 교만입니다.
※ 그러면 어떻게 고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겨울철에 영국을 여행하던 여행자가 해안지방을 지나는 중에 바닷가에서 무엇인가를 모아서 수레에 싣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사람은 죽은 갈매기들을 모아서 손수레에 싣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여행자가 그 인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갈매기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습니까?” 그러자 인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보고 먹이를 던져주게 됩니다. 갈매기들은 과자. 사탕 등 사람들이 주는 여러 가지를 받아먹게 되지요. 실은 그런 음식은 갈매기들에게는 좋은 음식이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음식들이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갈매기들이 그렇게 과자나 음식을 받아먹다 보니 입맛이 바뀌어 물고기나 자연의 먹이를 찾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좋은 먹이가 바다 속에 그렇게 많지만. 인간의 먹이만 기다리다가 결국 이처럼 굶어 죽는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갈매기들의 잘못된 아집이었습니다. 사람에게 길들여져서 자신이 갈매기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정체성을 잃은 갈매기는 사람이 주는 음식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 결국 그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도 사탄이 미혹하는 대로 세상의 것들에 맛을 들이고 집착하면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것에 빠져버립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정체성을 잃고 사탄의 미혹에 빠지는 이유는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했던 것처럼 사람의 의식주, 명예와 권세, 부귀영화로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처음에는 천사처럼 다가옵니다. 고린도후서 11:13-15절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것이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수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사탄의 아집과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을 봅시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나를 살려주시고 자녀로 삼으신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즉 나의 그 많은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는데,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23-35절에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일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이라는 적은 금액을 빚진 친구를 만나 빚을 갚지 않는다고 감옥에 넣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잊지 말고 용서와 화평으로 사랑의 삶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회개(悔改)’입니다. 본문 5절에서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큰 환난을 당할 그 때에도 회개하지 않는 것 때문에 고통과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9:20-21절입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종말의 그 큰 재앙을 당하고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우상을 따르는 자신의 고집대로 행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믿음이 좋은 사람도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과 교만한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좋은 예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과 두 번째 왕인 다윗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자신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을 따랐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렀다고 책망하자 사울은 세 번씩이나 변명하는 교만함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차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의 죄를 책망했습니다.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책망을 전해들은 다윗은 즉시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셨습니다. 이 일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잘못을 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합니다.
본문 7-8절을 봅시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하나님께 징벌 당하지 않도록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영광과 존귀와 영원한 삶을 추구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럼 없는 삶을 이루는 2018년으로 이루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