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옛 것과 새 것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803회 작성일 2018-01-01 14:17

 

*** 옛 것과 새 것 / 누가복음 5:36-39  

 
누가복음 5:36-39,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 들어가는 말    

올해는 특별하게 첫날이 주일로 시작해서 마지막 날도 주일로 마감하게 되어서 53주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해답게 역사에 길이 잊히지 아니할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 온 인류를 위하여 아주 특별한 일을 시작한 해인 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주일에 지나 온 옛 것과 맞이할 새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려합니다. 본문 마지막 구절인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팻 로버슨’ 목사의 간증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팻 목사는 예일대 법학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며 은행통화위원장이었습니다. 이 분이 목사가 되기 전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날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시간에 ‘한잔 하러 가자.’는 친구의 요청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문을 열고는 “여보, 나 구원받았소.”하고 외쳤습니다. 느닷없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당신 미쳤군요.”라고 했습니다. 로버슨은 “난 미치지 않았소. 내가 오늘 구원을 받았단 말이오.”   그리고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무 말도 없이 찬장 문을 열고 거기 있던 위스키 병들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씩 마개를 열고 하수도에 쏟아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당신 왜 이래요?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하면서 달려와 마지막 술병을 잡아채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까지 빼앗아 다 쏟아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팻 로버슨 목사님이 자신의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서던 날의 경험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길,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길은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옛 것으로 가득 찬 자리에는 새 것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옛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인가 가득찬 그릇에는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담으려면 들어있던 옛 것을 비워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새 삶을 시작할 때 무엇을 버렸습니까? 아니면 자꾸만 무엇인가를 달라고 요구하십니까?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공관복음에 모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금식논쟁에서 비롯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은 이유는 유대인들이 지키는 금식일이 있는데 그 금식일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금식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대답 대신에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혼인집 손님에 대한 비유인데 본문 앞쪽 19-20절에 있습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아리송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본문말씀인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을 따르던 구시대에 젖어서 형식적인 금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새로운 은혜의 시대를 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신 새로운 시대에는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복음으로 채운 새 삶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 기계식 자동차 정비 기술을 가진 사람이 컴퓨터로 제어되는 디지털식 자동차를 정비하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이해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이처럼 옛 율법시대와 새 복음의 시대는 이렇게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새로운 복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성령충만한 새로운 믿음과 사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른 두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의미심장한 한 구절이 본문에는 있습니다. 39절의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옛 삶에 적응된 사람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루신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결단과 새로운 삶을 요구하지만 선뜻 예수님의 뜻에 부응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엄청난 변화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역사적인 종말의 사건들이 이미 COUNT-DOWN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나간 옛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새로운 것들에 마음을 두도록 영적인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 새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지나온 삶은 내려놓읍시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세상에 낙을 두고 사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활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을 살지만 ‘미래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6절에서는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나그네로 사는 사람은 잠시 나그네로 사는 그 도시에 땅을 사고 집을 짓지는 않습니다. 즉 미래를 보는 사람은 지금 현재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현재의 삶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6-37절을 봅시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이 말씀에서 새 옷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를 말하는 이유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9-10절을 봅시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 율법시대의 삶은 개혁 때까지 맡겨둔 임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지나온 삶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2017년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묻혀버립니다. 이렇게 지나간 어제의 삶으로는 하나님 앞에 서지도 못하며 합당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2-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지나간 삶에 대하여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항상 지금 현재의 것만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8:21-22절을 봅시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4절도 봅시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래서 히브리서 3:13절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지나간 일에 대하여 연연하지 말고 깨끗하게 씻어내십시오. 회개해야 할 일은 반드시 회개하여 죄의 흔적을 지우십시오.  

  꼭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회개도 깨끗하게 해야 하지만, 용서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뒤 끝이 남아 있도록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골로새서 3:13절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날이 가기 전에 회개하고 이해하고 용납하고 용서하십시오. 전화로라도 화해하십시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이제는 하루하루를 온전한 모습으로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 새로운 은혜의 법으로 삶을 가다듬으십시오.  

 본문 38-39절을 봅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새로운 은혜의 법이란 물론 복음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믿음으로 복종하는 삶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주제의 말씀에서는 ‘매일 우리에게 새롭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우리에게 새롭게 부어집니다. 이 은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매일 주어졌던 만나처럼 그 날에 필요한 일용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마음에 품고 사람들을 대하고 일을 대하십시오. 

 이해하기 쉽도록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빌레몬서 1:8-14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말년에 복음으로 인하여 로마에서 감금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감옥에서 ‘오네시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노예였습니다. 오네시모는 골로새에 있는 주인집에서 도망하여 멀리 로마까지 갔습니다. 불안한 도망자의 생활을 하던 중에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오네시모는 변화되어 신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금 생활을 하는 바울에게 큰 유익이 되었으며, 바울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빌레몬 역시 바울의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빌레몬은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했고, 성도를 사랑했으며, 그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한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하심에 감사하며,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하여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편지에서 ‘오네시모는 종에서 뛰어나 사랑받는 형제로 둘 사람이니, 나를 영접하듯 오네시모를 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정말 어려운 부탁입니다. 종이었던 사람을 형제로 대접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에 그 사람이 지나온 길을 평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형편없는 말썽꾸러기였기 때문에 경계하고, 파렴치하고 사기꾼이었고 악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누가 오네시모 같은 사람을 노예 도망자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의 역사에는 이보다 더 악한 사람들이 신실한 성도가 되고, 목회자까지 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고 하던 김익두 같은 사람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그 중에 한 사람이며, 우리들도 어떤 면에서는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나온 길이나 지금의 삶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개구쟁이 이고, 망나니이고, 쓸모없이 여겨지는 아이들이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생각으로 사람이나 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새롭게 부어지는 은혜를 마음에 품고 사람들을 대하고 일을 대하는 길입니다.  

  2018년에는 일을 대하든지 사람을 대하든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합시다. 다만 39절 말씀처럼 옛 것에 매어 있지 마십시오. 옛 것을 버리고 바꾼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런 염려스러운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오늘 남은 시간들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새로운 은혜로 충만하여 2018년을 시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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