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루신 새 하늘과 새 땅
*** 예수님이 이루신 새 하늘과 새 땅 / 요한계시록 21:1-8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들어가는 말
1700년대의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볼테르(Voltaire, 1694~1778)’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극인 ‘오이디푸스’를 쓰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볼테르는 ‘예수회’ 학교를 나왔으면서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인쇄소까지 마련하고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책을 찍어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호언장담했습니다.
“앞으로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 자들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계몽주의가 판을 칠 때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좋아했고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기고만장한 볼테르는 매일 파리의 큰길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볼테르도 늙고 병들었습니다. 어느 날 회진하러 온 의사를 붙들고 사정을 했습니다.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준다면 내 전 재산을 다 드리겠소.”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6개월이 아니라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
그리고 볼테르가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10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수는 오히려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비방하던 책을 찍던 그의 인쇄소는 성경을 찍어내는 인쇄소가 되었고, 그의 집은 성경을 보관하는 창고가 됐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성탄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탄절이 예수 그리스도가 나신 날이 아니라고 비난합니다. 사실 정확하게 따지면 예수님이 나신 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유명했던 볼테르가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한다고 하나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성탄절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죄로 죽은 인생을 살리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가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죽은 우리를 살려주신 것만 아니라 그 이후의 영원한 삶까지도 약속하고 보증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오늘 본문말씀은 이 약속이 시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할 것이며, 거처가 완전히 준비되면 다시 오셔서 당신의 사람들을 영접해 가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약속이 시행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 즉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새로운 거처에 살기 위하여 내가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새로운 거처를 위하여 준비해야 할 것은 새로운 삶입니다.
본문 2절을 봅시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리고 10절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신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입니다. 이 나라에 살기 위해서는 우리도 ‘새로운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본문 5절에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가 지금의 세상이 변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롭게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전혀 새로운 이 나라는 새로운 사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마태복음 9:16-17절을 봅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이 말씀에서 생베조각이나 새 포도주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사상을 의미하며,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부대는 지나간 옛 사상을 의미합니다. 즉 지나간 율법에 매어 살던 신앙으로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 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시며, 에베소서 4: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사람은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육신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옛 사고방식과 생활로는 새로운 거처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주 쉬운 듯 하면서도 힘들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인 ‘제럴드 캘러한’ 교수가 쓴 ‘오딧세이 강’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 그리고 나의 식생활은 마치 심장마비나 대장암은 중년남자의 죽음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먹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짧은 이 글은 변화를 갈망하는 작가의 심경고백입니다. 생활의 변화를 갈망하지만 여전히 옛 습관에 묻혀 살아가는 약한 인생에 대한 탄식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수많은 사람들이 합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옛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오죽하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했겠습니까? 신앙의 위인인 사도 바울도 로마서 7:18-1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대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삶이 새롭게 되는 것은 이렇게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활방식 전체를 변혁시키는 것이나 혹은 어떤 습관들을 버리는 것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열면 극적인 변화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부활’이라는 글을 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이 어떻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며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생각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거듭난 새로운 삶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 5-7절을 봅시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특히 7절에서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즉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듭난 새로운 삶으로 변화된 사람에게 예수님이 마련하신 새로운 거처가 주어집니다.
※ 새로운 거처를 위하여 준비해야 할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유다서 1:20-21절을 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이 말씀은 마치 ‘우리가 영적인 집을 짓고 그 집을 예수님이 오시는 날까지 빼앗기지 않도록 굳게 지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삶을 이루어 산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3:11절을 봅시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처럼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삶이 세상의 것에 흔들려서 세속화 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마가복음 4:16-19절입니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그리고 야고보서 1:27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고 하십니다. 세상의 관습과 즐거움과 유혹으로 흔들리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나타내는 신분표시입니다. 이 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그 일이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외국 근로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으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국민임을 증명하는 보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비록 지금은 육신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지만, 진정한 소속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잊지 않아야 하며,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본문 6-7절을 봅시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리고 계시록 일곱 교회에 보낸 예수님의 편지에도 똑 같이 반복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이라는 말입니다. 2:7, 11, 17, 26, 3:5, 12, 21 이렇게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기고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상급’을 언급하십니다. 대표적으로 2:26절을 봅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곧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이 이루신 새로운 거처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2:17절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잠시 지나가는 세상에 마음 두지 말고 영원한 새로운 거처에 마음을 둡시다. 세상에 마음을 두게 되면 세상의 변화에 울고 웃게 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도 옳지 않은 죄를 범하게 되어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버려 이루신 새 하늘과 새 땅, 믿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아름다운 새로운 거처에 우리 모두 들어가도록 새로운 삶을 힘쓰고 자신을 지켜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