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길을 준비하라
*** 여호와의 길을 준비하라 / 이사야 40:1-11
이사야 40:1-11, “1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 들어가는 말
인터넷 사랑밭 새벽편지에 올라온 공인애 작가의 편지 한통입니다. ‘부모님 선물’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엄마는 빨간 가방, 아빠는 연두색 티셔츠, 큰맘 먹고 산 선물이니 좋아하시겠지? 그러나 너무 솔직한 우리 엄마 아빠, 받자마자 교환방법을 물어보신다. 그 말에 섭섭해진 나, ‘내가 얼마나 고민한 선물인데…’ 속상한 마음에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절친 슬기에게 물어보니 ‘금일봉을 드리는 것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하더라.
부모님들은 공감 가시지요? 딸은 자신의 생각으로 부모님 선물을 정성껏 골랐는데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읽으면서 ‘아,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오해하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이라고 장식도 하고 캐럴도 부르고 성탄축하 행사도 하고 성탄감사예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것을 좋아하실까요? 구약의 황금률이라고 부르는 미가 6:6-9절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여러 가지 궁리를 했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삶이 정의롭고 어질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먼저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임무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3:3절입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본문 3절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즉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여호와의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여호와의 길은 ‘심판의 길’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도 역시 심판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준비도 없이 단순히 성탄절을 기뻐하고 축하한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부터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와 남 유다의 멸망 전에 사역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경고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또한 자신들의 멸망을 예고하는 말씀들을 듣고 실의에 빠진 택한 백성들을 위로하며, 메시아를 통한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권면입니다. 그래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십니다. 결국 이 ‘외치는 자의 소리’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임을 마태복음에서 증언하십니다.
이 본문말씀 속에서 지금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말씀은 본문 9-11절의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메시아가 행하실 일들에 대한 내용을 예고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0:11절에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3절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그리고 본문 10절을 봅시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 22:12절에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래서 본문말씀은 오늘의 우리에게는 다시 오실 심판 주 예수님을 준비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 여호와의 길을 어떻게 준비합니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피곤한 인생을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함으로서 백성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백성들이 고집스럽게 잘못된 길을 갈 때에는 권면과 징계와 심판에 대한 경고로 인도했으며,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절망할 때에는 회복에 대한 소망을 주시면서 위로와 격려로 인도했습니다. 본문말씀은 후자에 속한 예가 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시면서,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고 외치라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로 받은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났음을 알리라.’는 말씀입니다. 노예생활 중인 이스라엘에게는 분명히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곧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고, 율법에 메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빅 카드를 내 놓으셨습니다. 본문 3-5절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1장에서 ‘세례요한’의 출생예고로 인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42장에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등장하고, 53장에서는 인류의 죄를 위하여 고난당하시는 메시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인류의 완전한 위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한 서곡으로 본문말씀이 주어졌습니다. 본문6-8절을 봅시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외치는 자에게 ‘생명과 능력의 한계를 가진 피조물인 허무한 인간과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수없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듯 하기도 했지만 전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 1:2-4절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또한 호세아 4: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라고 탄식하시면서 6절에서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생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죄에 매어있는 상태로는 하나님의 위로를 알 수조차 없으며 결단코 하나님의 길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길을 준비하고자 한다면 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봅시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외치는 소리는 “너희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주의하여 보아야 할 내용은 본문 10-11절입니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이 말씀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일들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많은 일들 중에서 목자로서의 예수님과 심판 주로서의 예수님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요한복음 10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은 당연히 목자를 따라야 합니다. 양은 목자가 가는 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목자를 따라가려면 목자가 가는 방향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양의 길을 제자도(fellowship)라고 합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보고 따라가듯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주바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 가지,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마가복음 13:28-29절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셨던 시대적인 현상을 면밀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세상의 염려와 물질적인 걱정으로 마음이 둔하여져서 영이 잠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영이 깨어 있어 주님께서 말씀하신 시대적인 변화를 잘 살피고 적절하게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 도도새를 아십니까?
이 새는 인도양 모리셔스((Mauritius)라는 섬에만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멸종되었습니다. 크기는 칠면조보다 커서 25kg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도도’라는 이름은 포르투갈어로 ‘어리석다’라는 뜻입니다. 이 섬에는 천적도 없고 먹을 것이 풍부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늘을 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날개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제 기능을 잃어버린 채 퇴화해버립니다. 하지만 그 섬에는 도도새를 위협하는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에 평화로운 천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505년 포르투갈 인들이 최초로 섬에 발을 들여 놓았고, 향료 무역을 위한 어선들의 중간 경유지가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도도새는 너무도 잡기 쉬운 풍부한 먹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데려온 가축들과 쥐들에 의하여 날개가 있지만 날 수 없었던 도도새는 약 100년 후 지구상에서 멸종되었습니다.
안일한 삶에 빠져서 자신이 날개를 단 새라는 존재감마저 잃어버린 도도새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됩니다. 우리는 영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성도들은 마치 영의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도도새처럼 오로지 육신의 삶에만 마음이 팔려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삶의 길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이 본향인 것처럼 육신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3절을 통하여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매일 날씨를 살피듯이 매일 시대적인 변화를 살피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이렇게 내 영이 깨어 있어서 시대를 살피고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면 심판의 날이 될 여호와의 길,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넉넉히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 준비된 마음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