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살기를 원한다면
*** 만일 살기를 원한다면 / 예레미야 5:1-9
예레미야 5:1-9,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를 지르는도다.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 들어가는 말
네덜란드 출신의 선교사인 브라더 앤드류(Brother Andrew / Anne Van der Bijl)는 박해 받는 교회와 성도를 돕는 국제적인 사역단체인 Open Door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된 열정적인 선교사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 ‘하나님의 밀수꾼’, ‘복음은 철의 장막을 뚫고’등의 유명한 저서가 있습니다. 앤드류 선교사가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말씀을 전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앤드류 선교사가 말씀을 전한 후 “내게 질문이 있으면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강단 뒤쪽에서 청년 두 명이 마이크 앞으로 나왔습니다. 수염을 기른 이 청년들은 과격분자 같은 거만한 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종주의자이며 제국주의자’라고 소개하고는 ‘그리스도인을 비난하며 모택동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격찬’했습니다. 앤드류 선교사는 그들의 말을 중단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발언이나 질문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백 명의 그리스도인 학생 중에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사백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단 두 명의 이교도에게 농락을 당할 판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흑인학생과 백인학생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흑인 학생이 먼저 말했습니다.
“저는 나이지리아에서 왔습니다. 이 기회에 저는 아프리카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준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이 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 대학에 오지 못했을 것이고, 아직도 미개인이요 이교도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영원히 죄악 속에 버려질 뻔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회개하게 하려고 찾아온 선교사들에게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동유럽에서 온 백인 학생이 말했습니다.
“저는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을 참을 수 없어서 조국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나는 조국에서 할 수 없던 모든 것을 이 기독교 국가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미주시민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도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에 사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앤드류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십시오. 혹 우리가 실수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사용하셔서 좀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왜 사백 명이나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워하고 침묵했겠습니까? 이유는 그들이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요 침묵하는 다수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적은 세상의 이념이나 핍박이 아니라 바로 무관심입니다. 기꺼이 싸우려는 사람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사탄의 세력들과 담대하게 싸워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념적인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들이 이념을 앞세워 사람들을 선동하고 이 나라의 교회를 말살시키려 합니다. 이 세력은 적폐청산, 차별금지, 함께 잘 사는 사회주의적 이념들을 앞세워 헌법까지 개정해서라도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위의 젊은 대학생 크리스천들처럼 이 위기에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9:24절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만 살려고 이 위기의 때에 침묵한다면 자신의 위기 때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기원전 615년경의 남 유다가 배경입니다. 10지파로 구성된 북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징계를 받아 이미 100여 전인 기원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형제인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지켜본 남 유다마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죄악으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동원하셔서 마지막까지 남 유다 백성들에게 “돌아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을 섬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겨야 마땅한 제사장들마저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선자지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관리들, 선지자들, 제사장들,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다 부패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의 하나님께서 본문 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용서하겠다고 하십니다. 즉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을 당할 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소돔’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당했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는 ‘의인 한 명’이 없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안에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 한 사람 만이라도 빨리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남 유다의 죄악을 용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남 유다는 철저하게 부패하고 죄악에 빠져 있었습니다.
옛말에 ‘성공과 실패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했는데,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는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에 있습니다. 이사야 1:19-20절에서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이든지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살려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하나님의 역사는 많은 사람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처럼, 욥처럼, 다니엘처럼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이루시는 것입니다. 죄악 된 인류가 멸망을 당할 때 노아와 그의 가족만 남았습니다. 12명의 형제들 중에서 11번째인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일으키셨고,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과 선지자들, 사도들과 바울과 목숨을 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주님의 교회는 오늘까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서 11:36-38절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분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느니라.”
‘조지 스미스’라는 모라비안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는 늘 아프리카 대륙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환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준비를 마친 스미스 선교사는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그의 평생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에 상륙한지 몇 달을 넘기지 못하여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추방될 때까지 늙은 여인 한 사람을 회개시킨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추방당한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아프리카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스미스 선교사가 죽은 후 100년이 지난 때에 그가 복음을 전했던 아프리카에는 13,000명이라는 그리스도인이 생겼습니다. 스미스 선교사가 회개시킨 단 한 사람의 늙은 여인을 통하여 13,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는 일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사람은 힘 있고, 능력 있고, 재물 많은 사람이 많은 일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능력도 없고, 드릴 물질도 많지 않아서 주님의 일을 못하겠노라.’고 사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생명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는 사람, 하나님만을 절대 의지하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사람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충성했을 때 그 손의 막대기로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쏟게 하는 기적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삼손으로 하여금 나귀 턱뼈 하나로 건장한 블레셋 병사 1000명을 죽일 수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갈멜 산에서는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 850명과 그 든든한 후견인인 아합 왕과 이세벨 왕후를 상대로, 단 한 사람의 여호와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대결을 벌였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세력이라고 해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합니다. 시편 91:9-12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만 경외하며 하나님만 소망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의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회개를 거부한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길도 하나님의 법도 알지 못했습니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지도자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본문 7-9절입니다.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를 지르는도다.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예루살렘은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은 2700여 년이 지난 오늘이라 할지라도 동일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 나라의 교회가 예루살렘이 받았던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만일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가, 이 나라의 교회가 살려면 하나님께 무관심했던 우리의 마음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때에 ‘스코틀랜드’에서는 ‘존 낙스’가 종교 개혁의 선구자로 나섰습니다. 당시의 ‘메리’ 여왕은 열심 있는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모든 개신교 신자들을 다 죽이라.’는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왕이 명령을 내린 날 밤, 존 낙스는 자기 서재에 들어가서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스코틀랜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메리 여왕이 중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메리 여왕은 죽기 전에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인 존 낙스의 기도가 백만의 대군보다도 무섭다.”
요한계시록 2:22-23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이 말씀에서 “간음”이라 함은 세속적인 삶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짝하여 사는 것이 영적인 간음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삽니다. 우리가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이 나라의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회개하고 기도하고 하나님만 소망하고 바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이 일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고, 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이 차려져 있어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고, 갈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물을 찾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고 더 깊이 갈증을 느낄수록 음식이나 물을 찾는 간절함이 더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2-13절에서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찾읍시다. 세상만 바라보던 마음을 돌려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그리하여 이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