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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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0-03 14:41
***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 시편 126:1-6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들어가는 말
요즈음 사람들은 ‘웃을 일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는 말처럼 지금 우리가 처한 형편이 안팎으로 걱정과 근심거리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해하며 고개를 흔들며 잊어버리려 합니다. 하박국 3:16-18절을 봅시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선지자 하박국은 당시의 상황이 전쟁의 바람이 불어 두려움이 엄습하고 먹을거리들이 마르는 최악의 고통이라고 탄식합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히려 기뻐하리라.’고 고백합니다.
유대인들은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고, 고된 노동과 먹지 못함으로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비록 태양 빛이 우리에게 비취지는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 된 사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그들은 지금 깜깜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이 신뢰가 그 핍박과 고난의 밤을 이기도록 한 힘이었습니다. 이것이 세상 환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처법입니다. 빛은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빛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더욱 신앙이 밝게 빛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영혼의 평안과 기쁨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6:22절에서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의 삶의 기쁨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 시편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70년 동안의 바벨론의 노예생활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했지만 얼마 후에는 바벨론을 점령한 바사에 속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예로 사는 동안 수금을 버드나무 꼭대기에 걸어두고 사용하지를 않았습니다. 기뻐할 일도 노래할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고레스 왕의 선포를 듣게 됩니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의 긍휼하심을 기다려 왔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꿈꾸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서 선뜻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너무나 기뻐서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라고 기쁨을 나타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이웃나라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며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이 사실이 우리의 위로이며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여전히 고통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1:3절입니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향의 황폐함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바벨론 땅에 남아 있는 형제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본문 4절에서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보내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 간구 속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백성들에게는 쉼을, 바벨론에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는 우리처럼 자유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어주신 것을 확신하면서 ‘기쁨으로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다가 지체하여 씨 뿌릴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둡고, 일이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른 길로 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눈물로 뿌려야 할 씨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하여 무엇을 뿌려야 합니까?
※ 우리의 죄를 아파하는 회개의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성경 66권의 말씀들의 공통된 주제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회복’에 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영적 죽음을 선고받은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의 회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이 있습니다. 에스겔 9:4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6절입니다.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그리고 이사야 57:15절을 봅시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이 두 말씀에서의 강조점은 ‘죄를 슬퍼하는 것’ 즉 ‘회개(悔改)’입니다. 회개가 영과 육신의 모든 삶을 회복하는 중요한 첫 관문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마치 더러운 옷을 입은 채로 새 옷을 덧입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오물이 들어 있는 그릇을 비우지 않고 새 음식을 담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는 옛 성품에서 완전히 돌이켜서 새로운 성품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갈라디아서 5: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고 에베소서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회개한 사람의 삶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에베소서 4:32-5:2절을 봅시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회개한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이 용서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회개한 영혼은 예수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서 기쁨의 열매를 거두기를 원한다면 죄를 슬퍼하여 회개하는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삶을 바꾸고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고통이 따릅니다. 내 맘대로 살던 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킨다는 것은 더 많은 인내와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본문5-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라고 했습니다. 이는 씨를 뿌리는 자가 겪을 눈물 흘릴만한 고생과 어려움을 말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직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4절), 이제부터는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는 간절함을 고백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추수 때라할지라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정하신 절대명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눈물 흘리면서라도 뿌려야 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순종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는 무너지지 않도록 회복하는 길은 말씀을 순종하여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7:24-27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신의 삶에서 실행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권사님이 자신의 남편인 집사님에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성경말씀 대로 살아야지, 당신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이 세상에 성경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말씀이 그렇다는 것이지 어떻게 그대로 살아.”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태복음 5:18-19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리고 로마서 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회복과 기쁨으로 거두기를 원한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행하는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키는 회개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비록 눈물을 흘려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 열매는 넘치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는 말씀이 이사야 61:3절에 있습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66:10절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미국의 ‘위마 의과대학’에서 실시한 실험의 결과가 있습니다.대학 병원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강아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누구나 이 강아지를 귀여워했고 가까이 오면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먹을 것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의사가 이 강아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병원 내의 모든 사람에게 부탁하여 일주일동안 이 강아지에게 쏟던 사랑의 표현을 중단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사람들은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반가이 다가와도 모른척했습니다. 이상히 여긴 강아지가 더 반가이 따라다니면 귀찮다는 듯이 발길로 툭 차버리기도 하는 등 애정을 끊어버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의사는 이 강아지의 혈액을 검사했고, 놀라운 결과를 밝혀냈습니다. 강아지의 혈액이 탁하고 아드레날린이 증가하여 질병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후, 의사는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 사랑해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였고, 일주일 후, 강아지의 혈액을 다시 검사한 결과 아드레날린의 양이 현저하게 줄고 질병도 떠나고 건강한 상태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잠언 17:22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행복감은 그리스도인의 영과 육신을 강건하게 합니다. 특히 영의 기쁨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모든 육신의 삶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회개와 순종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강건하게 하는 삶의 수확의 단을 기쁨으로 거두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들어가는 말
요즈음 사람들은 ‘웃을 일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는 말처럼 지금 우리가 처한 형편이 안팎으로 걱정과 근심거리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해하며 고개를 흔들며 잊어버리려 합니다. 하박국 3:16-18절을 봅시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선지자 하박국은 당시의 상황이 전쟁의 바람이 불어 두려움이 엄습하고 먹을거리들이 마르는 최악의 고통이라고 탄식합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히려 기뻐하리라.’고 고백합니다.
유대인들은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고, 고된 노동과 먹지 못함으로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비록 태양 빛이 우리에게 비취지는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 된 사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그들은 지금 깜깜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이 신뢰가 그 핍박과 고난의 밤을 이기도록 한 힘이었습니다. 이것이 세상 환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처법입니다. 빛은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빛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더욱 신앙이 밝게 빛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영혼의 평안과 기쁨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6:22절에서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의 삶의 기쁨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 시편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70년 동안의 바벨론의 노예생활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했지만 얼마 후에는 바벨론을 점령한 바사에 속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예로 사는 동안 수금을 버드나무 꼭대기에 걸어두고 사용하지를 않았습니다. 기뻐할 일도 노래할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고레스 왕의 선포를 듣게 됩니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의 긍휼하심을 기다려 왔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꿈꾸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서 선뜻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너무나 기뻐서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라고 기쁨을 나타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이웃나라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며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이 사실이 우리의 위로이며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여전히 고통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1:3절입니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향의 황폐함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바벨론 땅에 남아 있는 형제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본문 4절에서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보내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 간구 속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백성들에게는 쉼을, 바벨론에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는 우리처럼 자유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어주신 것을 확신하면서 ‘기쁨으로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다가 지체하여 씨 뿌릴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둡고, 일이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른 길로 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눈물로 뿌려야 할 씨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하여 무엇을 뿌려야 합니까?
※ 우리의 죄를 아파하는 회개의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성경 66권의 말씀들의 공통된 주제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회복’에 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영적 죽음을 선고받은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의 회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이 있습니다. 에스겔 9:4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6절입니다.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그리고 이사야 57:15절을 봅시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이 두 말씀에서의 강조점은 ‘죄를 슬퍼하는 것’ 즉 ‘회개(悔改)’입니다. 회개가 영과 육신의 모든 삶을 회복하는 중요한 첫 관문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마치 더러운 옷을 입은 채로 새 옷을 덧입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오물이 들어 있는 그릇을 비우지 않고 새 음식을 담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는 옛 성품에서 완전히 돌이켜서 새로운 성품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갈라디아서 5: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고 에베소서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회개한 사람의 삶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에베소서 4:32-5:2절을 봅시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회개한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이 용서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회개한 영혼은 예수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서 기쁨의 열매를 거두기를 원한다면 죄를 슬퍼하여 회개하는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삶을 바꾸고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고통이 따릅니다. 내 맘대로 살던 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킨다는 것은 더 많은 인내와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본문5-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라고 했습니다. 이는 씨를 뿌리는 자가 겪을 눈물 흘릴만한 고생과 어려움을 말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직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4절), 이제부터는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는 간절함을 고백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추수 때라할지라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정하신 절대명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눈물 흘리면서라도 뿌려야 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순종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는 무너지지 않도록 회복하는 길은 말씀을 순종하여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7:24-27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신의 삶에서 실행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권사님이 자신의 남편인 집사님에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성경말씀 대로 살아야지, 당신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이 세상에 성경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말씀이 그렇다는 것이지 어떻게 그대로 살아.”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태복음 5:18-19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리고 로마서 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회복과 기쁨으로 거두기를 원한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행하는 눈물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키는 회개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비록 눈물을 흘려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 열매는 넘치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는 말씀이 이사야 61:3절에 있습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66:10절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미국의 ‘위마 의과대학’에서 실시한 실험의 결과가 있습니다.대학 병원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강아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누구나 이 강아지를 귀여워했고 가까이 오면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먹을 것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의사가 이 강아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병원 내의 모든 사람에게 부탁하여 일주일동안 이 강아지에게 쏟던 사랑의 표현을 중단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사람들은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반가이 다가와도 모른척했습니다. 이상히 여긴 강아지가 더 반가이 따라다니면 귀찮다는 듯이 발길로 툭 차버리기도 하는 등 애정을 끊어버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의사는 이 강아지의 혈액을 검사했고, 놀라운 결과를 밝혀냈습니다. 강아지의 혈액이 탁하고 아드레날린이 증가하여 질병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후, 의사는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 사랑해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였고, 일주일 후, 강아지의 혈액을 다시 검사한 결과 아드레날린의 양이 현저하게 줄고 질병도 떠나고 건강한 상태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잠언 17:22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행복감은 그리스도인의 영과 육신을 강건하게 합니다. 특히 영의 기쁨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모든 육신의 삶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회개와 순종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강건하게 하는 삶의 수확의 단을 기쁨으로 거두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