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에 들어갈 때까지
*** 그 땅에 들어갈 때까지 / 신명기 31:1-8, 마가복음 11:7-10
신명기 31:1-8, “1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2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4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5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마가복음 11:7-10,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 들어가는 말
오늘은 부활주일을 한 주간 앞 둔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목적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던 그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바로 그 날,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한 것은 예수님이 로마를 물리치고 나라를 세우는 구원자, 즉 독립국의 왕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한 죽음을 위한 입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따르던 제자들마저 실망과 좌절로 뿔뿔이 흩어지고 물러갔습니다. 갈릴리 호수로 물고기 잡으러 가버린 일곱 제자들, 엠마오 고향으로 낙향하는 두 제자, 두려움으로 숨어버린 제자들 등. 그들은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며 절망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참된 소망이십니까? 이 시간에는 구약과 신약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가 소망하는 바로 ‘그 땅’ 즉 약속의 땅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신명기 본문말씀은 모세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이 멀리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내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인도한 영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 유다백성들과 율법으로 언약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이스라엘’나라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여 38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이제 애굽을 나온 지 40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유목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가슴 두근거리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를 앞두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는 백성들과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시대의 지도자로서 불순종했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그 생애를 마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영적인 담대함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는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셨고 허락하신 땅이지만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신앙의 원리입니다.
마가복음 본문말씀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말씀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신 것도 그러합니다. 이 사실은 이미 스가랴 선지자에 의하여 예고되었습니다. 9:9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며 “호산나”를 높이 외쳤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왕을 맞이하는 듯 한 환영이었습니다. ㅁㅁ이 두 본문은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면에서는 의미가 잘 통하고 있습니다. 즉 광야의 삶을 지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유월절의 어린양으로써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는 영적인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갈 때까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는 지혜를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지금 자신의 자리를 깨닫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메마른 광야를 이리저리 떠돌아야 했습니까? 직접적인 원인은 ‘불순종’이었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입니다. 신명기 8:2-3절을 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훈련을 사십년이나 해야만 했던 원인은 그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들 이스라엘 자손들은 조금만 힘들면 원망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자신들을 그토록 아끼시며 돌보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방금 읽은 다음 구절인 4절을 봅시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매일 하늘에서 음식이 내렸으며, 옷이 낡아지지도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도 않는 희한한 기적을 매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극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공을 뛰어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그 날로 가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자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대로 ‘메시아의 행적’을 충실하게 따르고 계십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슥 9:9)한 대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메시아가 아닌, 시대를 혼란스럽게 하며 민심을 미혹하는 악한 존재로 매도했습니다. 성경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선지자들의 글을 익히 알고 있었던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워 예수님을 배척했고,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그 숭고하신 사랑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15:10-11절입니다.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유대인들의 요구를 따라 예수님을 심문하던 총독 빌라도도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의 음흉한 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선민이라고 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죽을 짓을 하면서도 무슨 짓을 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가나안을 앞에 둔 이스라엘 자손들이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앞에 둔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그 사랑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오히려 자신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그 땅을 차지하도록 믿음의 재정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민수기 14:22-24절을 봅시다.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온전히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에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사람이 60만 명 정도였는데 이들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랐던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모두는 원망하거나 불평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에 온전하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겠습니까? 마가복음 10:14-15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신약시대인 지금 우리들의 시대의 영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땅인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처럼 순전하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토록 길었던 40년을 지나서 이제 다시 가나안 땅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또 다시 불순종하여 지난 40년간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신신당부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니 순종하고 따르라고 합니다. 4절이하 8절까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라.’고 강조합니다. 본문 5-6절을 봅시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할 여호수아에게도 당부합니다. 본문 7-8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이렇게 모세가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이제는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도록 확실하게 믿음을 재정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약속의 땅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땅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3절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거처입니다. 이 곳에 들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신약본문 9-10절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이 찬송을 부르던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한다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은 불과 며칠 후에 이렇게 기뻐하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고 소리쳤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찬송하고 기뻐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전한 믿음으로 준비되지 못하거나 순종하는 삶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갈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순종하는 삶을 계속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깨에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탄과 그의 세력들은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택하심에서 끊어지게 하려고 안일한 마음으로 잠들게 하려 합니다.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갈 때까지 마음을 놓지 말고 깨어 있어 주님과 동행합시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주님과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을 따르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