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이 내게서 나타나려면
***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서 나타나려면 / 요한복음 12:24-26
요한복음 12:24-26,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하신다면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도 확신합니까? 오늘은 왜 시작부터 심각한 질문을 하는지 궁금하지요?
중세시대에는 경건주의자들에 의한 수도원운동이 활발했습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하나님을 깊이 알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수련을 하던 많은 수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수도원을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한 수련자가 수도원을 떠나가는 자기 동료들을 말리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원장님, 수련자들이 떠나가는 것을 왜 말리지 않으십니까?”
원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냥꾼이 수많은 사냥개를 풀어 토끼를 잡으러 갔다네. 한 사냥개가 토끼를 발견하고는 마구 짖어대며 토끼를 좇아갔다네. 토끼를 쫓는 사냥개의 짖는 소리를 들은 다른 사냥개들도 함께 짖어대며 그 사냥개를 따라간다네. 그런데 한참을 달리던 사냥개들이 하나둘씩 포기하고 주인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네. 되돌아온 사냥개들은 토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던 개들이었는데 이들은 힘이 들거나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쉽게 포기하고 되돌아온다네. 하지만 토끼를 직접 본 개는 자기 목표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토끼만 보며 쫓아간다네.” 원장의 이야기를 들은 수련생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올수록 세상은 혼잡하여지고 신앙을 지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마태복음 24:9-13절을 봅시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두려운 말씀이지요? 이런 날이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확실하지 않다면 신앙을 끝까지 지켜가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어야 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0-11,13절입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력하게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시대가 악하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원동력입니다. 백 마디 설명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베드로전서 4:11절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힘이나 능력, 자신의 지혜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지혜와 힘과 능력으로 해야만 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공급될 때에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열매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열매란 하나님의 능력이 공급될 때에만 나타나게 됩니다. 본문 24절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리고 요한복음 15:4절에서도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즉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온전히 덮을 때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숱하게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계명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아포드네스코’라는 단어입니다. 즉 ‘죽다’라는 말입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죽는다.’는 말은 내 육신이 죽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과 내 생각과 내 사상과 내 주장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는 ‘십자가 아래 내려놓는다.’ ‘버린다.’ ‘하나님께 맡긴다.’ 등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4:33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같은 의미의 마태복음 16:24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정말 너무 많이 들었던 이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는 일의 핵심 열쇠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야 합니다.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 앞에 수식어 붙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회장, 사장, 부장, 박사, 재력가, 능력자, 귀부인 등등. 그래서 명함에도 빼꼭하게 자신의 이력 올리는 것을 좋아하며, 젊은이들조차 스펙(spec)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품은 생각들, 이상과 꿈, 내적인 욕망과 욕구 심지어는 자신의 성격들까지도 현대인들의 자아(自我)라는 소유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세상적으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찾아 왔던 ‘부자청년 관원’처럼 버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영생을 꿈꾸던 부자 청년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이 대답합니다. 마태복음 19:20-22절입니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다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처럼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상의 것을 많이 쌓아두고 있으면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죽는 일이 더 많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으로부터 자신을 죽여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십시오. 날마다 내 사상이 죽고, 내 욕망이 죽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세워질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게 됩니다. 즉 세상의 소유에 마음을 두지 말고, 세상의 것들로 집을 채우지 말고, 주님의 마음으로 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주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도 날마다 자신의 욕망과 의지를 꺾고 주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으면 어떤 열매가 열립니까?
우리 옛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도 했는데, 이 말은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리고 마태복음 7:16-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이처럼 사람의 모든 마음의 경영이 삶의 행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은 사람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자신이 죽고 자신의 모든 사상과 욕망까지 내려놓으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열매가 마음의 변화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비워지고 주님으로 채워지면 주님의 평안이 나를 다스리게 됩니다. 당연히 세상의 환경과는 상관없는 평안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불안함이 없고 주님이 함께하시는 흔들림 없는 평안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10-11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은 기쁨을 수반합니다. 이 기쁨도 역시 세상의 것들로 말미암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시는 근원적인 기쁨입니다. 바로 이런 은혜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능력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그 중에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 하나는 사탄과 마귀의 권세를 제압하는 능력입니다. 사탄과 마귀의 능력과 권세는 당연히 인간을 능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이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0: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세상에서 활동하는 모든 악의 세력들은 사탄의 하수인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불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거짓과 불의한 일들은 사탄과 마귀, 그 하수인들이 저지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더러운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탄의 세력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은 사람에게는 가까이 하지도 못합니다. 요한일서 5:18절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셨으며, 로마서 8:38-39절에서도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만일 세상이 두렵고, 실패가 두렵고, 고난이 두렵고, 죽음이 두렵다면 자신을 버리고 주님으로 채우도록 힘쓰십시오. 그리고 본문 25-26절의 주님의 약속을 생각하십시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세상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는 길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서 나타나려면 날마다 내 사상이 죽고, 내 욕망이 죽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을 세워가야 합니다. 자신이 죽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이 혼탁한 세상을 이기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을 때에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로 자신을 비워내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덧입어 이 시대에 꼭 필요하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