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을 아십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378회 작성일 2018-02-13 14:10

*** 하나님을 아십니까? / 렘 9:23-24, 막 10:42-45

 

  예레미야 9:23-24,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가복음 10:42-45,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들어가는 말

 

  ‘하나님을 아십니까?’ 오늘 제목이 참 도전적이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슨 그런 질문을!” 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황당스런 질문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본문인 예레미야 9:24절에서 말씀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고 호세아 6:6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 즉 ‘신지식(神知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1절에서 성경을 여는 첫 구절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온 우주의 조성자이시며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신앙의 첫걸음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구약본문인 예레미야 9장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남 유다의 죄악을 고발하면서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의 죄악상을 열거하면서 바벨론에 의하여 비참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당시의 남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온갖 우상들을 끌어들여 숭배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대한 제사는 외식과 거짓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힘들고 어려움을 당할 때나 이방의 침략을 당할 때에는 곧잘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원과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숱한 배반에도 불구하고 거듭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상황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거듭 배반한 결과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기는커녕 평안한 현실에 빠져 자기들의 지혜와 힘과 부를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없이도 평안하고 부를 누리는데 하나님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결국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이용한 것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본문 앞의 9:13-16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을 따랐음이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 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은 징벌을 선언하셨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제 남은 유다까지 멸망해버리면 이스라엘은 역사상에서 그 존재가 끊어질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다급해진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일을 눈물로 선포하면서 유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권면합니다. 이 짧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본문은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음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실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혈안이었습니다. 마침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달라고 청탁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이 화를 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내용이 본문말씀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세상의 삶의 원리와는 다른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의 원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본문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원리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짧은 두 본문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봅시다.

 

※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내가 숭배하고 섬기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 신앙은 허구입니다. 예를 들어, 인류가 오랜 숭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태양신을 봅시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태양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생각과 보편적인 지식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신을 자신들이 숭배하고 의존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이 세상의 신이라고 하는 모든 존재들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이 기가 막히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4:15-17절입니다.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숭배하고 섬기는 대상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숭배를 강요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14절입니다.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거나 하나님을 전한다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겠지요. 뿐만 아니라 자신은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겠지.’라고 안심하겠지만 실상은 영의 생명조차 없을 수 있으니 헛된 신앙도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이제 이야기 하는 이런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서울을 출발한 고속버스가 잠시 휴식을 위하여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졸고 있는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을 했습니다.

“잠시 후 이 차는 여러분의 목적지인 부산을 앞두고 휴게소에서 15분간 쉬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버스의 번호를 잘 기억하셔서 승차하시기 바랍니다.”

기사의 안내 방송을 들은 승객들이 모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부산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광주로 갈 차가 왜 부산으로 가요?” “여기가 어디 에요?” “나는 광주 가는 사람인데?”

승객들의 소동에 당황한 고속버스 기사가 휴게소에서 내려 차 앞에 붙은 행선지 표지를 보았습니다. 그 표지에는 ‘광주행’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당황한 기사가 말했습니다.

"이런 내가 차를 잘못 탔네!”

 

  황당하지요? 이 버스기사는 분명히 부산으로 가는 차량을 운전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주행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지요. 승객들은 모두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알고 그곳으로 가는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광주로 가고 있었지만 차를 운전 하는 사람은 부산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인도자가 잘못되니 따르는 사람은 비록 바른 목적지를 알고 있었지만 잘못된 목적지로 끌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5-27절을 봅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중요한 내용 두 곳이 있습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이 두 말씀은 모두 바른 방향과 바른 목적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신앙의 방향, 영적 삶의 방향을 바르게 알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어떤 면을 알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즉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세례문답을 하셨을 터인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문답형식으로 만들어서 가르치는 ‘대. 소 요리문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요리문답의 제 1번이기도 한 질문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숭배자들이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이 기뻐하는 것을 행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십니까? 앞에서 보았던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신구약 성경말씀 내용이 우리가 찾고자 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 많은 말씀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심 되는 하나님의 통치원리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본문 24절(“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과 마가복음 본문 45절(“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입니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안다는 것은 ‘모든 일에 복종’을 뜻합니다. 이 내용은 신구약성경의 중심입니다. 신구약성경 66권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청종(聽從)’입니다. 청종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르는 대로 잘 들어 좇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라.’는 것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 자신이 사랑이시며,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대속물로 세상에 보내신 사건입니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하나님이 이 모든 세상과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주권자이심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셔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은 내가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기억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개념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주워들은 신앙 조각을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18년에는 하나님을 알도록 많이 힘씁시다.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시다. 이런 투자는 세상에 돈을 투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효력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2:30절 하반절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고 아는 만큼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인생 성공의 비결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앎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성공적인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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