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불평에서 벗어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380회 작성일 2018-02-06 23:14

*** 불평에서 벗어나십시오. / 시편 37:1-11

 

  시편 37:1-11,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고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 들어가는 말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합니다. 힘이 들어 지칠 때에는 잠깐 만이라도 앉아서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앉게 되면 누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누우면 자고 싶어집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잠언 27:20절에서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했으며, 전도서 5:10절에서는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편안한 삶을 추구합니다. 이렇게 열 가지 좋은 일이 있다가 한 가지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에 매여 불평하거나 전전긍긍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큰 이적과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헤아릴 수도 없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길이 험하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물이 없다고 늘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엉뚱한 일을 벌여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렇지 않습니까?

 

2018년에 벗어나야 할 것 네 번째는 ‘불평과 원망’입니다. 이 불평과 원망은 너무 쉽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오기 때문에 신앙에 있어서는 요주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불평을 막론하고 모든 불평은 하나님께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일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10-11절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말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 불평과 원망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불평’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라’라고 하는데 ‘빨갛게 되다’, ‘화가 타오르다.’ ‘심히 뜨거워지다(불붙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불평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원망’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원망’은 헬라어로 ‘공귀조’라는 단어인데 ‘불평하다.’ ‘투정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화를 내면 가슴이 불붙는 것처럼 뜨거워지듯이 불평과 원망도 화를 내는 가슴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가슴이 화로 뜨거워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느 건설공사 현장에서 도랑을 파는 세 명의 일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일하다 말고 삽에 기대어서 “언젠가는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되고 말거야.”라며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하루 일당이 이게 뭐야?”라며 일당이 턱없이 적다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도랑을 팠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계속,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될 거야!” 하며 삽에 기대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당이 적다고 불평하던 사람도 계속 “하루 일당이 아직까지 이게 뭐야!” 하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땅을 파던 사람은 지게차를 하나 사서 그 지게차로 열심히 물건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언젠가 나는 이 회사의 사장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던 사람은 머리가 희어져도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몰라준다고 한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당이 적다고 불평하던 사람은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것은 ‘일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앞의 두 사람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며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함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응하는 자신만의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주로 자신이 지향하는 목적이나 자신의 가치관이 기반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언젠가는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되고 말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장이라는 사회적인 지위’를 지향하고 있으며, ‘하루 일당이 이게 뭐야.’라고 불평한 사람은 ‘지향하는 목적이 돈’이었습니다. 성실하게 묵묵히 일한 사람은 ‘일에 대한 성실한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신앙이 어릴 때에는 ‘높은 자리’를 원하는 ‘명예와 권세’가 지향하는 목적이었으며, 세상적인 가치관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가 지향하는 목적은 돈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지향하는 목적이나 가치관이 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목적이나 자신의 가치관에 못 미치게 될 때에 불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자신이 지향하는 목적이나 가치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는 그리스도인이 지향하는 목적이 동시에 두 방향 즉 세상과 하나님이라는 두 방향을 향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불평과 원망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곳이 출애굽 때의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출애굽기 16:2-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광야를 통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에 처했을 때에 이들은 ‘먹을 것이 없다.’며 원망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들이 불평하고 원망했던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상적인 목적과 가치관의 만족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본문말씀에서 세상적인 목적과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본문 1절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본문 7-8절입니다.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세상적인 목적과 가치관을 가지면 그들과 똑같이 악한 자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야고보서 1:27절 말씀처럼 자신의 삶이 세상적인 목적과 가치관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어떻게 불평에서 벗어 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이 그 길을 보여줍니다. 본문 3-6절을 봅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고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이 말씀을 바꾸어보면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적과 가치관을 하나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불평과 원망의 원인을 쉽게 표현하면 ‘내가 그것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삶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불평과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세상적인 목적과 가치관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고 악한 일도 서슴지 않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악한 길을 부러워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14-15절(현대어성경)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마음이 비뚤어지고 완고한 사람들이 가득하여 어두운 세상에서 여러분은 흠 없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들 사이에 생명의 말씀을 높이 들고 등불처럼 빛을 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과 가치관이 변하는 것이지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바뀌게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때에 음식과 물, 험한 길 때문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때 이렇게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6:7-8절입니다. “아침에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론과 모세에게 원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원망을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들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환경을 만드신 분이 아론이나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자신의 환경과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서 원망스럽고 불평이 나옵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가만히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이 환경에서 내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여쭤보십시오. 본문 7-11절을 봅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주시고 우리의 수고로움도 갚아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이며 공의입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이렇게 불평과 원망이 나올 환경을 만나더라도 입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는 저주하고 악담하기 쉽습니다. 특히 애매하게 당하는 어려움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입술로 범죄 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즉 불평과 원망과 저주와 비난으로 인한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13:3절입니다.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화가 나면 자제력을 잃어버려서, 대적 자들을 대항하여 악한 말을 터뜨린다든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이러한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입술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2:36절에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141:3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라고 간구합니다.

 

올해에는 불평과 원망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과 은혜를 쏟아버리는 일이 없도록 불평에서 벗어납시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가치관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시다. 혹 불평이 일어나더라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립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옳다고 인정받는 신실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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