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계절, 위험한 세대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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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12 21:32
*** 평화의 계절, 위험한 세대 / 마태복음 11:25-30
마태복음 11:25-30,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는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가 없고, 평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전쟁준비를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군사력을 높이고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전쟁억지력을 높인다고 합니다. 이런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이율배반적인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잊고 있습니다. 이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시고 동시에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 정하신 법칙이 인과응보(因果應報)입니다. 이 법칙은 구약과 신약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이어지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에스겔 33:20절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신약을 대표하여 마태복음 16:27절의 예수님 선언을 봅시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선언입니다. 요한계시록 14:13절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인과응보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오늘 본문말씀에 있습니다. 본문말씀에는 흔히 말하는 대로 예수님의 위대한 초청이 들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평화를 원하지만 위험만 더 가중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할지 그 길을 찾아봅시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의 시기적인 위치는 예수님께서 막 사역을 시작하셨던 공생애 초기입니다. 아직 세례요한이 사역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본문이 포함된 11장의 앞부분에는 세례요한의 예수님께 대한 질문과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요한에 대한 해석이 들어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세대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함을 ‘장터 아이들의 비유’를 통하여 책망하시면서 큰 이적을 경험하고서도 회개하지 않은 고라신과 가버나움에 대한 정죄의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들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역하시고 보여주신 일까지도 믿지 못하는 그 세대의 불신앙을 경고하시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세례요한까지도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앞쪽 3절에서 요한의 불확실성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리이까?” 이런 불신앙과 무관심의 세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을 예수님의 길, 즉 생명의 길로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위대한 초대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로 돌이키도록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대도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으로 가득합니다. 세례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마저 성경말씀이나 이 세대에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처럼 먹고 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6-2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는 어떠하며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계절의 순환적인 의미로 본다면 지금은 자연이 성장을 멈추고 쉬는 겨울철이며 한 해의 끝부분입니다. 종교력으로 본다면 한 시즌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대림절, 즉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는 평화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된 시간표에 의하면 세상의 마지막 때에 해당하는 끝자락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계가 첨단 과학의 때를 알리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했으며, 자율주행 자동차에 로봇시대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소재와 신기술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몇 주 전의 교단 신문에는 신학포럼에서 ‘로봇설교시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다소 어이없는 주제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으며 이제는 인정하고 대처해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더욱 어이없는 일이 지난 4월에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존 성경을 취소하고 새로운 책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고 했습니다. 교황은 ‘성경이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발표했습니다. 부활도 없고, 예수님의 재림도 없다는 논리도 부족하여 이제는 성경을 취소하고 새롭게 써야 한다고 망발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최고의 적그리스도입니다. 앞으로 신앙을 지키기가 엄청나게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고와 동시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습니다. 이처럼 겉으로는 세계가 평화롭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엄청난 폭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본문 25-27절에서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어린아이가 되어야’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와 앞으로 다가올 혼란스러운 세대들에게 미리 경고하시면서 이 세대를 깨닫기 위하여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누가 어린아이이며, 누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라고 하십니까? 예수님 당시의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면서 자아로 가득 찬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굳어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드러내기는커녕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예수님을 정죄하고 판단하기에 바빴습니다. 반면에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들,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 세리와 창녀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모든 생각과 경험과 신분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린아이입니다. 누가복음 18:10-13절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문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하고 깨끗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하고 깨끗하고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답은 예수님의 위대한 초청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초대는 세상의 허망한 꿈을 찾아 무거운 인생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루신 생명의 길로 오라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무거운 짐이 없습니까?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 각자 자신의 삶에 매달려 이웃을 잊어가는 세대, 하나님을 잊어 가며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죄악의 세상. 이것이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자부하는 어른들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길을 찾기 위해서는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자리로 낮아져야 합니다. 이 길은 자기 버림의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올인하는 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완전하게 의지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지금의 자신에 충실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많이 소유한다는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마음이 이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고 평안을 누리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땀 흘리며 모아 쌓는 것은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이후에 인간에게 주어진 징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고 싶다면 세상의 욕망으로 가득 찬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 기골이 장대한 장남인 ‘엘리압’을 보고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실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 속사람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의 평안이 들어올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골3:1)고 하시면서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골 3:8-10) 이 위선된 세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부모를 의지하는 어린아이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의지하면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 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초대하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는 우리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력이 우리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수시로 변하고, 세상적인 조건으로 말미암는 평안은 한 순간도 유지하지 못하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아침에는 기분 좋고 평안하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는데, 전화 한 통을 받고 분노하고 마음이 급우울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노후를 위하여 인색하게 살면서 집을 짓고, 돈을 모으고, 온갖 준비를 다한다고 해도 주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어떤 것도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짓 한 번이면 우리의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어떤 환경에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삶에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이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며 내 삶을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고 순종할 때에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 평안이 여러분이 삶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목적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설령 아무런 목적 없이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는 결과물이 남게 됩니다. 모든 일의 결과물에는 원인이 있으며 이유가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무엇을 원한다면 그것을 이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위험한 세대를 사는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하게 속해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주님만 의지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최고로 여기셔서 이 가식적이고 위험한 세대에 진정한 평화를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