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철저히 의지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9,883회
작성일
2018-11-28 16:43
***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십시오. / 사도행전 1:1-8
사도행전 1:1-8,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잘 아는 복음송 하나를 볼까요?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1139)“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었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니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되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되. 하날세 하날세” 평화와 자유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요? 세계의 명언 중에 “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을 잘 아시지요?
미국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1775년 3월 23일,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의 세인트존 교회에서 명연설을 했습니다. 그 날 버지니아 식민지 협의회는 이곳에서 노예제도 철폐를 위한 민병대를 조직하기 위하여 중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견이 분분할 때에 한 신사가 나섰습니다.
“…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쇠사슬을 차고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목숨이 그리도 소중하고, 평화가 그리도 달콤하단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길을 인도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무장하자”는 외침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삶의 거센 바람에 부딪치다보면 삶의 의욕이 꺾이고 결국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세상적인 삶일 때에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5: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어지는 18-19절을 봅시다.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 이 하나님이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며 믿고 의지하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죽는 것, 전쟁과 평화를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걱정과 근심에 싸여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불평 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표현입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에 이런 것들이 지배하고 있다면 담대한 믿음을 달라고 아버지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면 이러한 것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요한일서 4:18절을 봅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철저히 신뢰하여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때에 진정한 기쁨과 평화가 이루어지며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세례를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 성령세례는 곧 내 안에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두 길 뿐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드리는 길은 인생길입니다. 이 두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과 세상을 의지하는 길입니다. 세상을 의지하는 길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에베소서 2:2-3절을 봅시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이 설명하는 존재는 사탄의 권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일정한 기간 동안만 사탄이 지배하도록 허락하신 곳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가 주장하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4:5-6절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이 권한이 빼앗기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7-9절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독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이 마귀의 권세를 따르는 길이 바로 세상을 의지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촌은 2018년 11월 24일 현재 약 76억 5천만 명입니다. 이 가운데 기독교 인구는 24억 명 정도인데, 전체 인구의 거의 3분의 1수준입니다. 세계인구의 3분의 2는 의심할 여지없이 세상을 의지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4억의 기독교인 중에서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을 가는 사람이 어느 정도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 외에 아무도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10% 정도가 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나머지 90%는 외식적인 신앙이거나 영적인 침체에 빠져 있어 형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숫자를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영적인 침체가 가져오는 위험성을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이런 영적인 침체는 유대교 시대를 비롯하여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로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생활을 할 때에도 세상을 의지하는 무리들이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민수기 11: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이 말씀처럼 이스라엘의 무리 중에서 악한 말로 원망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4절을 봅시다. “그들 중에 섞어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 이스라엘 무리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이란 애굽을 나올 때에 함께 탈출한 다른 종족의 노예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세상을 의지하는 길을 가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끝 부분에 모여서 딴 짓을 하며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을 앞에 둔 모압 평지에서 ‘정탐꾼을 먼저 보내어 살펴보도록 하자.’고 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멈추게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1:21-22절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백성들의 뜻대로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내어 40일 간의 정탐을 마치고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믿음의 현실이 드러납니다.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했지만, 나머지 10명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 13:31)고 하며 부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민 14:1)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 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세상의 길을 따라간 사람들은 아론과 모세, 여호수아,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 장정 60만 명 전원이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마귀의 세력들은 부정적인 생각, 불평과 원망을 앞세워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들은 공동체 뒷부분에 무리를 지어서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몰아갑니다. 마귀의 세력들은 영적으로 약한 자들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합니다. 신명기 25:17-18절입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마귀의 권세는 지금도 성도나 교회가 영적으로 잠든 사이에 뒤에 처진 성도들을 사로잡아 멸망의 길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예로 들어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합니다. 고린도전서 10:1-5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바울 사도는 11절에서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잘 못 간 그 길을 답습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답은 본문 4-5절에 있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즉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지 않고는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게 된 결과를 본문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권능은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하심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세상에 빠져 사는 비천한 자리로부터 건지셔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의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이런 실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미국의 한 대기업 CEO가 지하도를 건너다가 길거리에서 연필을 파는 걸인을 보았습니다. 다른 행인처럼 그 CEO도 1달러만 주고 연필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돌아서서 그 걸인에게로 갔습니다.
"방금 제가 1달러를 드렸는데 연필을 못 받았군요. 연필을 주셔야지요."
걸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1달러를 주기만 했지 연필을 가지고가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 연필들 좀 봅시다. 이 연필 한 자루가 좋겠군요. 사장님."
그 말을 들은 걸인은 또 다시 이상한 표정으로 CEO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거지가 아닙니다. 당신도 저와 같은 사업가입니다."
지금까지 매일 연필을 팔며 돈을 구걸했지만 한 번도 ‘사장님’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란 말을 들은 걸인은 갑자기 자신의 자아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업가? 그래… 나는 연필을 팔았으니까 사업가야… 당당하게 연필을 팔고 돈을 받는 사업가지… 걸인이 아니야."
그때부터 걸인은 자신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자기 스스로에게 “난 거지가 아니야. 난 거지가 아니야. 난 사업가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제는 어엿한 사업가가 된 예전의 그 걸인은 오래 전에 자신에게서 연필 한 자루를 사 주면서 ‘사장님’이라고 불렀던 그 CEO를 찾아왔습니다. 그 CEO에게 진정한 감사를 전했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했는지 아시겠지요? 하나님께서는 걸인처럼 세상을 의지하고 떠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9-10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능력으로 살려면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입니다. 그러할지라도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담대하게 능력을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나타내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