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염려하는가?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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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4 13:45
*** 나는 무엇을 염려하는가? / 마태복음 6:25-34
마태복음 6:25-34,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 들어가는 말
세상일들이 내 뜻대로 잘 안 되지요? 요즘 들어 개인사업자들의 한숨소리가 높습니다. “지금은 무얼 해도 잘 안 된다.”고 탄식합니다. ‘취준생’이라고 부르는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신부산신학원에 등록한 한 학생은 중장비 운전을 배워서 자격시험을 치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몰리는지 두 번씩이나 등록조차 못했다고 합니다. 자격시험을 온라인으로만 접수를 받는데, 자신이 접수를 하려고 작성을 하는 사이에 컴퓨터 조작을 잘하는 젊은 사람들이 먼저 접수를 해서 자신이 접수를 하려면 이미 등록인원이 차서 마감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꼭 베데스다 연못에서 병자들이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하는 염려와 근심들이 차오르는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에 사는 사람들치고 염려와 근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요즘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고사성어에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탄식한다.’는 말인데, ‘할 일 없이 허송세월 하고 있는 신세를 한탄한다.’는 뜻입니다.
삼국지의 관우, 장비와 함께 한왕조(漢王朝)의 부흥을 외치며 달리던 유비는 한때 힘이 모자라 조조에게 몰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각지를 전전하다가 형주에 있는 유표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유표는 자기를 의지하고 찾아 온 유비를 한 작은 고을에 주둔시켰습니다.
유비가 싸움터에서 벗어나 고을에 머문 지 몇 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유표는 유비를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연회 도중 화장실에 갔던 유비는 문득 자신의 넓적다리에 군살이 찐 것을 발견하고는 ‘난세에 태어나 활을 차고 말을 달리며 천하에 서려고 한 내가 이렇게 기개 없이 살고 있다니…’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회 자리로 돌아 온 유비에게 유표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캐물었습니다.
“지난 시절 저는 항상 말을 타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군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동안 말을 타지 않아 군살이 찌고 말았습니다. 노년에 가까운 지금,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도 못하고 기개 또한 옛만 같지 않아 그저 슬플 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유비의 한탄에서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이 유비처럼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하고 염려스럽고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열심히 해보지만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은 것도 이루어진 것도 없어서 마음에 근심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생활을 해야만 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인생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7:10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즉 세상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에 필요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염려스러운 일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읽은 본문말씀은 두말할 필요가 없도록 잘 아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 안에 있는 말씀이면서 삶의 우선권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가르치시면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기는 첫 번째 요소로서의 재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 재물이라고 하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이지만 가장 위험한 것이 재물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의 위험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앞 쪽의 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재물에 우선권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적인 재물에 우선권을 두지 않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자연의 이치로 비유하여 가르치십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가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하여 사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섭리에 우선권을 두라고 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세상의 돈과 재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선권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게 되면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염려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의존하여 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생각의 열매입니다.
※ 먼저 내가 염려하는 것을 모두 찾아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의식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이 의식주는 육신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요소입니다. 우리나라는 의식주를 염려해야 하는 때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도 의식주를 염려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이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생활수준이 세계에서도 상위 20% 안에 들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지금 우리나라 사회는 삶의 질을 높이고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위한 호화스러운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세계는 먹을 음식, 마실 물, 주거 공간이 없어서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수 억 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맞서서 조금이라도 염려가 되고 걱정과 두려움이 일어나는 일들의 목록을 적어보십시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녀들에 대하여, 배우자에 대하여, 부모에 대하여, 친구와 이웃들에 대하여, 사회의 현상, 나라의 현실, 물질적인 것, 영적인 것, 과거의 일, 현실의 일, 미래의 일까지 염려되고 근심되는 모든 것을 다 소환하십시오. 필요하다면 기록하여 명백하게 볼 수 있게 하십시오. 왜 이렇게 자신의 내면의 찌꺼기들을 다 들어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봅시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입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간단하게 말해서 ‘사탄의 속임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짜 성도와 무늬만 비슷한 가짜 교인을 분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런 세상적인 염려와 근심, 두려움의 찌꺼기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늬만 교인인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보기에는 표시가 나지 않는데 이런 숨겨진 불신의 찌꺼기들을 드러내려고 사탄의 미혹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단과 사이비 종파들, 거짓 목사들, 거짓 예언자, 거짓 선생들이 온통 그물을 치고 이런 무늬만 교인인 가짜 성도를 잡아내고 있습니다. 즉 세상 염려에 빠져 있는 사람은 사탄의 사탕발림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불신의 찌꺼기들을 모두 들어내야 합니다.
※ 그러면 어떻게 내 염려를 지울 수 있겠습니까?
이런 염려와 근심, 걱정, 두려움 등의 불신의 찌꺼기들을 어떻게 지울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어려운 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 했고, ‘지피지기 백전불퇴(知彼知己 百戰不退)’라고 했습니다. 모두 ‘자신을 이기고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언 4:23절에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했으며, 16:32절에서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스리기 어려운 자신의 마음이지만 이 내면의 불신의 찌꺼기를 없애려면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십시오.
과학자 뉴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난롯가에 앉아서 책을 읽던 뉴턴이 갑자기 큰 소리로 하녀를 불렀습니다. 하녀가 달려오자
“난로불이 너무 뜨거우니 불 좀 낮추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난로는 장작을 사용해서 불을 지피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줄이기는 힘듭니다. 요즘의 전기난로나 석유, 가스난로처럼 쉽게 조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장작불을 어떻게 당장 낮춥니까? 하녀는 잠시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의자를 조금 뒤로 물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도 그렇다고 생각되지요? 그렇다면 그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뉴턴이 생각이 모자라서 그랬겠습니까? 뉴턴은 어떤 다른 중요한 것을 생각하느라 의자를 뒤로 물리면 된다는 사소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사로잡히면 다른 것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됩니다. 걱정과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립니까? 본문 25-30절까지를 봅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 말씀은 ‘삶의 원리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 이들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생명들입니다. 이 하찮은 생명조차 하나님께서 모두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모든 생명의 삶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마태복음 10:28-31절을 봅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이며 나를 가장 세심하게 알고 계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약속을 믿으십시오. 이 믿음이 우리 내면의 모든 불신의 찌꺼기를 다 지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짜 성도와 가짜 교인을 분리하기 위하여 사탄의 미혹이 아주 강력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에 빠져서 염려하고 근심, 걱정, 두려움에 싸이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 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내면의 불신의 찌꺼기들을 들어내고 지워야 합니다. 이 불신의 찌꺼기를 지워내는 것은 세상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믿고 순종하는 자녀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 믿음의 삶으로 염려가 아닌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