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190회 작성일 2019-04-10 21:09
***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누가복음 24:13-17, 27-32
 
 누가복음 24:13-17, 27-32,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일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일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하고
 
** 들어가는 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최대의 명절이자 최고의 소망인 부활절이 다가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영적인 삶을 정비하는 사순절 기간이구요. 그래서 오늘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지금 우리는 진정한 부활의 삶을 사는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중동의 레바논에서 6년 반 동안을 인질로 억류되었던 AP통신 중동 지국장인 ‘테리 앤더슨’기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극적으로 풀려난 후에 자신의 심경을 밝혔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레바논의 테러분자들은 자신을 감옥에 가두어놓고 수없이 고문하며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끔찍한 위협 속에서 잃었단 옛 신앙을 회복하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앤더슨 기자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잃어버렸던 신앙을 회복했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소망을 붙잡았습니다. 그 소망이 믿음을 주었고 결국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밝게 빛납니다. 이 빛나는 소망 가운데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이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의 소망은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에 빛이 나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지만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어두운 절망감만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 후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중에 이 두 제자는 절망에 쌓인 채로 고향인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셨지만 그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일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여러분의 삶은 지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삶에 지치고, 실망과 절망감에 빠져 힘없이 낙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만난 후 기쁨과 감격으로 사명의 자리인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신 후에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자 따르던 제자들은 모든 소망이 다 끊어져버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대로 거리를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장사된 지 사흘이 지난 아침에 어떤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두었던 무덤에 다녀와서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좌절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허탄한 마음을 안고 하나 둘씩 제 갈 길로 흩어져 갔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하나는 배반하여 예수님을 팔고 난 후 자책감에 빠져 자살했고, 갈릴리가 고향인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련다.’(요 21:3)며 일어서자 다른 갈릴리 사람인 제자들과 또 다른 제자들이 합세하여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엠마오’가 집인 두 제자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대는 21절에서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고 한 표현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대는 예수님이 사형을 받아 죽음으로서 산산이 깨어져버렸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이제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다시 예전의 그 고통스러운 세상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삶은 어떤 자리입니까?
 
어느 청년 성도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두우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가정의 일을 말하면서 실타래가 엉키듯이 꼬여서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도무지 제 사정을 모르십니다. 일마다 되는 것이 없고 문들이 모두 닫혀서 나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삶의 일들이 꼬이고 실마리를 잡을 수 없어서 답답할 때가 없습니까? 우리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지만, 살다보면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무지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제 자신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아도,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아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여서 ‘하나님께서 개입해 달라.’고 간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심정이 되어 마음이 낙심될 때가 있지요? 세상은 세상대로 ‘불경기’라며 ‘정말 죽겠다.’고 야단이지만, 한국교회의 사정은 더 암울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생각나면서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누가복음 21:25-28절입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이 말씀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입니다. 사람이 무서워서 기절할 정도로 큰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일들이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준비하고 있어야 할 일은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복된 삶의 자리에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상황에 빠져 주눅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날을 미리 알려주시면서 용기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6:32절에서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6:32-33절에서는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현실의 두려움 때문에 그 말씀을 까마득하게 잊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여인들의 말조차 믿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먹고 살 일이 걱정되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세상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삶의 자리에 있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가 아닌 육신을 따르는 세상의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머물러 있는 자리가 육신의 삶에 매인 세상의 자리는 아닙니까?
 
※ 나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닫힌 불신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곁에 계셔도 알지 못합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일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리고 21절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이 이하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조차 무시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깨닫지 못하는 마음은 엠마오로 향하는 길 즉 세상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디로 가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본문 25-27절을 봅시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뜨거웠다(32절)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에 나타나는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입니다. 두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즉시 영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인 줄 알아보았으며, 그 즉시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을 때에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은 예루살렘 즉 주님께서 명령하신 자리, 주님이 계신 자리입니다.
 
그러면 내가 가야 할 길과 머물러야 할 삶의 자리를 어떻게 찾습니까?
어느 유명한 소아과 전문의가 체중 미달로 태어난 신생아를 치료하는 특별한 처방을 했습니다. 이 전문의는 병실을 회진할 때 이 신생아의 진료기록표에 이런 처방전을 써놓았습니다.
“이 아기는 세 시간마다 사랑을 받아야 함.”
 
의사들은 한 결 같이 신체적 질병이나 정신적인 질병들은 대부분 ‘불안이나 고독함 그리고 자신이 버림받고 소외당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혼자라는 생각, 소외당한다는 생각 이런 것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일으켜서 질병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체중미달의 신생아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한 사랑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이 모든 질병을 이겨내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고 머물러야 할 삶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사람들이 무서워서 방의 문들을 모두 걸어 잠그고 숨죽이며 있었던 제자들, 풍랑 이는 어두운 호수 위를 노 저어 가던 제자들의 두려움 등.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에서 끊어져 있을 때에 제자들은 두려워 떨었고 갈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다시 부어졌을 때에 제자들의 가슴은 뜨거워졌고, 두려움이 사라져서 죽음조차 불사하게 되었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절) 사도행전 1: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면 주님이 만나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마음이 뜨겁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5:14-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이 가야 할 길 머물러야 할 자리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야 할 길과 머물러야 할 삶의 자리를 찾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생명의 길을 잃지 않도록 말씀 안에서 순종함으로 깨어있어 마음 뜨겁게 사명을 감당하는 신실한 주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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