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생명을 지키십시오 1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400회 작성일 2019-03-27 20:06
*** 생명을 지키십시오 1. / 마태복음 10:34-39
 
 마태복음 10:34-39,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 들어가는 말
 
생명! 이 단어는 사람을 숙연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요즘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며칠 전에 ‘사회의 이슈(issue)가 되는 주제’를 보다가 ‘스위스의 블루 하우스’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용이 궁금해서 살펴보았는데 ‘서울 신문 탐사기획부’가 현장 취재를 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안락사, 조력자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안락사가 허용되어 있는 스위스까지 가서 조력자살을 한다는 것을 추적하여 탐사 보도하는 내용입니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라는 기관에서 외국인의 조력자살을 돕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이 조력자살을 원하면 상담을 하게 되고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디그니타스가 소유한 집으로 가서 자살을 시행한다고 합니다. 조력자살을 시행하는 집이 2층으로 된 파란색이어서 ‘블루 하우스’라고 불렸습니다. 조력자살이란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안락사할 수 있도록 약물을 투여하여 돕고, 사망하게 되면 스위스 정부의 의사와 경찰이 경과와 사인을 확인하는 절차였습니다. 취재하는 도중에 자살을 위하여 들어오는 사람들도 보였고 몇 시간 후에는 시신이 되어 이동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더욱이 자살이나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도 사람의 존엄성을 위한 권리라는 말에 정말 하나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충격에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조력자살을 하는 이유야 있겠지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자살하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3-4절에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말세의 사회현상이 ‘자기중심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서 비록 자기의 생명일지라도 자신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18:4절입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영적 죽음이란 하나님과의 결별입니다. 즉 하나님이 없는 마지막 불 못에 던져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이 두렵게 여겨진다면 어떤 경우를 만나도 영의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하여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기 전에 제자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참된 진리를 밝히고 사람들을 진리로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은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과 거부한 사람들 간의 갈등입니다. 이 내용은 본문 34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즉 그들이 비록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런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진리를 따르려고 한다면 이런 고난과 갈등을 예상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5-36절에서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가족이 원수가 될 정도로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심각한 갈등이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비록 이렇게 진리와 복음으로 인한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면 진리를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본문 37-39절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 즉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한 자격을 의미합니다. 참 어렵지요? 그래도 여러분은 끝까지 이 길을 가시렵니까?
 
※ 생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2015년 2월 17일. 미국 오스틴에서 열린 풀코스 마라톤 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 출전한 케냐 출신 마라토너 ‘하이븐 응게티치(Hyvon Ngetich, 29)’라는 여자 선수가 있었습니다. 하이븐은 37Km지점까지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 골인 지점을 5Km정도 남겨둔 곳에서 갑자기 탈수증세를 보이며 쓰러졌습니다. 함께 따라가던 의료진이 급하게 달려가 서 그녀를 살폈고 ‘더 이상의 경기진행은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그녀에게 휠체어에 앉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하이븐은 휠체어를 거부하고 무릎으로 남은 거리를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의료진이 양 옆에서 따라갔고, 그녀의 양 무릎은 까져서 피가 흘렀지만 포기 대신 완주를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완주 기록은 3시간 04분 02초, 불과 3초 차이로 3위에 머물렀지만 관중들은 축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이 마라토너가 자신의 경기에서 포기해도 될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한 것은 철저한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환난과 고난, 어떤 상황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부활소망이 있습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0-1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부활에 이르는 소망을 위하여 지나간 일들을 다 버리고 그 소망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바로 이 부활의 소망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라토너는 세상이 주는 메달과 명예를 위하여 불굴의 투지로 포기하지 않고 달렸는데, 하물며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위하여 영적인 경주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12:1-3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 생명을 어떻게 지켜갈 수 있습니까?
 
무엇을 지킨다는 것은 경각심과 필연성 그리고 희생적인 감내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지킨다는 사람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는 어떤 것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지켜야겠다는 결단이 없다면 어려움과 위험이 닥치면 포기하게 됩니다. 이 일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0:11-15절을 봅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을 각오를 하라.’고 하십니다. 본문 37-39절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아시지요? 이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오늘날의 우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즉 오늘날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습니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되신다면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돈을 가장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의 시간과 관심을 가장 많이 투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계속 따라다닐 것입니다. 일을 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나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성실하고 열심 있고 정직하게 대하려고 하게 됩니다. 화가 나거나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이 될 때면 ‘성령님의 감동하심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양심이 요동을 칠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더 중요하고 일에 더 관심이 많게 되면 하나님이 나라도 성령님의 감동도 없이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에 급급하게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로마서 6:16절입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이어서 8:12-14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따르는 그것이 곧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나 자신의 우상이 되어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버리십시오. 오늘 본문말씀에서 이처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즉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잠언 6:27-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즉 하나님의 말씀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며 결단을 미루지 마십시오. 우리의 생명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 않습니까? 오늘이라도 주님이 부르시면 당장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3절입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당연히 올 것 같은 내일이 오지 않는 날이 언젠가는 이르게 됩니다. 세상에서 영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미리 준비해 두십시오. 끝까지 생명을 지키십시오.
 
어느 선교사의 수기에 있는 글입니다.
갑자기 오른쪽 눈이 아파서 가까운 대학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시간을 벼르고 별러서 겨우 찾아가 안과 창구에 진찰권을 접수한 것이 오후 3시 35분. 그런데 접수창구의 직원은 “마감시간 지났습니다.”라고 짧게 말하고는 창구를 닫아버렸습니다. 그제야 접수창구의 유리문에 붙어 있는 안내장을 보았는데 마감시간이 오후 3시 30분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5분이 경과된 것입니다. 사정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픈 눈을 감싸 쥐고 병원 문을 나서야했습니다. 야속했습니다. 5분이 늦었다고 환자를 돌려보내다니…. 그것도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병원이 이럴 수가 있는 것일까. 병원 측이 원망스럽고 마음이 몹시 언짢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천국 문에 들어가려고 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천국 문 마감 시간 지났습니다.”라며 문을 닫아버린다면 …
선교사는 이런 생각 때문에 ‘그날 귀중한 교훈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은 몰라도 영원한 생명을 지키는 것은 미루지 마십시오. 기회가 한 없이 계속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우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버리십시오. 내일 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일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하십시오. 마감 전에 잘 준비하셔서 그야말로 주님이 함께 하시는 기쁨과 평안을 늘 누리시는 행복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Total 1,420건 21 페이지 RSS
설교모음 목록
No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1120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늘푸른
  • 04-10
  • 4191
1119
생명을 지키십시오. 2
  • 늘푸른
  • 04-03
  • 3299
생명을 지키십시오 1
  • 늘푸른
  • 03-27
  • 3401
1117
인생의 고난이 없을 수는 없을까요?
  • 늘푸른
  • 03-19
  • 3670
1116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 늘푸른
  • 03-14
  • 3557
1115
진정한 예배자가 되십시오
  • 늘푸른
  • 03-07
  • 4729
1114
하나님의 최고의 명령을 따르십시오1
  • 늘푸른
  • 02-22
  • 3920
1113
생명줄을 놓지 마십시오.
  • 늘푸른
  • 02-13
  • 3761
1112
하나님을 기뻐하는 찬송이 능력입니다.
  • 늘푸른
  • 02-07
  • 4406
1111
함정을 피하십시오.
  • 늘푸른
  • 01-29
  • 11744
1110
공의롭게 행해야 합니다.
  • 늘푸른
  • 01-22
  • 4173
1109
분별의 은사를 구하십시오.
  • 늘푸른
  • 01-16
  • 4167
1108
비전을 위한 열망
  • 늘푸른
  • 01-01
  • 4083
1107
진정한 부자입니까?
  • 늘푸른
  • 01-01
  • 12915
1106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까?
  • 늘푸른
  • 12-27
  • 4016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