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을 기뻐하는 찬송이 능력입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405회 작성일 2019-02-07 16:34
*** 하나님을 기뻐하는 찬송이 능력입니다. / 요한계시록 19:1-8
 
 요한계시록 19:1-8,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들어가는 말
 
복음송(1083) 중에 ‘찬송을 부르세요.’라는 곡이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 부르세요.’이 가사처럼 찬송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왜냐하면 찬송,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감사를 표현하는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결코 찬송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 사는 날들이 항상 기쁨과 감사로 충만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 다섯 번째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찬송이 능력입니다.’ 라는 제목, 즉 ‘찬송’을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시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앞날에 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본문 바로 앞의 18장까지 요한은 3차에 걸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들을 보았으며, 세상 나라를 대표하는 바벨론의 멸망을 보았습니다. 본문이 있는 19장부터는 천사들의 찬송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찬송들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 19장을 영적인 대 전쟁이자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라는 주제를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19장 전반부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는 세 노래가 들리게 됩니다. 첫 번째 노래는 1-2절로써 큰 무리의 노래인데, 큰 음녀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노래합니다. 히브리어인 ‘할렐루야’라는 단어는 ‘찬양하다.’라는 의미의 ‘할렐’과 하나님을 나타내는 기본단어인 ‘야’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이 할렐루야 찬송은 시편 111편과 112편의 앞부분과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타납니다. 큰 무리의 이 찬송은 두 번째 반복되다가 24장로와 네 생물이 “아멘 할렐루야”(4절) 하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립니다.
 
특히 6절 이하에서는 성도들이나 혹은 천사들의 찬양으로 보이는 찬송소리를 듣습니다. 요한은 이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했는데, 이들은 큰 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와 의로우신 심판을 찬양합니다. 이 소리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찬송으로서 할렐루야로 시작되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은 바벨론에 심판이 임한 것으로 말미암아 감사하는 찬송이 아니라,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준비되었기 때문에 부르는 찬송입니다(6-8절). 이 노래와 함께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하라는 천사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기서의 혼인잔치 혹은 결혼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함을 받은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한 가지는 큰 음녀의 옷차림과 그리스도의 신부의 옷차림입니다. 음녀의 옷차림은 계시록 17:4절에 있습니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본문 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의 옷단장입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음녀는 세상 정부의 비호를 받는 악의 큰 세력을 말하며, 혼인잔치의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신부는 그의 몸 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것으로 치장하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2:9절입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처럼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갖추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노래하는 찬송은 영원한 것입니다.
 
본문에서의 찬송은 성도들의 최후의 승리로부터 비롯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세상 정부와 그 세력들인 큰 음녀 바벨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의로우신 심판에 대하여 큰 무리의 성도들과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 하나님 보좌 앞의 24장로들까지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찬송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하도록 계속됩니다. 요한계시록 5:13-14절입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이 장면이 하나님 나라에서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이사야 43:21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사실을 베드로전서 2:9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이 찬양이며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이 땅에서 살 때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러서도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입니다.
 
6.25 한국전쟁 일화 중에 ‘노래하는 헌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해병 제5연대 F중대의 ‘셜츠’하사입니다. 그는 수시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의 찬송을 듣는 군인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밤, 개인 참호에서 보초를 서다가 북한군 유격대의 습격을 받아 총에 맞았습니다. 조용하던 밤이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로 뒤덮였습니다. 그런데 그 요란한 중에도 조용한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셜츠 하사가 죽어가면서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그 찬송은 우리 찬송가로는 ‘갈보리산 위에’라는 곡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침입했던 적군이 이 노래가 끝나기 전에 모두 후퇴했고, 오히려 습격 받은 해병들은 용기백배하였다는 것입니다. 5연대의 군목이 셜츠 하사를 회상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찬송은 정말 신비한 힘이 있었다. 목청은 과히 좋지 않았으나 정성을 다해 간절히 부르는 그의 찬송을 들으면 무한한 용기와 위로를 받았었다.”
 
셜츠 하사의 경우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찬송은 할 수 있습니다. 소리를 낼 수 없다면 마음으로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찬송은 세상의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찬송이 영원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감사하며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영원히 감사하며 찬양해야 할 주제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서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라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노래하는 찬송은 우리 삶에서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 찬송은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두 번째로 할렐루야!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1절의 할렐루야  찬송과 3절의 할렐루야 찬송은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의 성도들의 찬양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할렐루야 찬송이 오직 이곳에서만 나옵니다. 이 할렐루야 찬송이 울려 퍼질 때에 마귀와 세상 세력인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의 불길로 맹렬하게 타올랐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찬송은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는 자들의 심판으로 연결됩니다. 히브리서 10:30절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이 말씀처럼 원수 갚는 것이나 심판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원수를 갚거나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 12:19-20절을 봅시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 말씀처럼 원수 갚는 것도, 심판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신원하시고 의로운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면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찬송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좋은 예가 빌립보 감옥에서 일어난 이적의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16:22-26절을 봅시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이 성경말씀으로 복음송을 지은 것이 주숙일 씨가 쓴 ‘울고 있는 형제여’라는 노래입니다(미가엘 1070). “울고 있는 형제여 왜 찬송을 잊었는가 어둠 속의 찬송은 기적을 부른다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문을 찬송으로 열었다오. 고통의 문을 찬송 찬송으로 찬송 찬송으로” 왜 찬송에 이런 능력이 있습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찬송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찬송으로 표현되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50:14-15절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30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을 보이십니다. 세상 노래는 술 마시고 기분 좋을 때 부르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의 노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의 찬송은 하나님께서 낱낱이 기억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항상 해야 하는 것이며 영원한 것이지만 각박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찬송을 얼마나 합니까? 아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할 때 외에는 찬송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하기도 바쁘고 힘든데 찬송할 생각이 나겠습니까? 일이 힘들고 고달프니 심기가 불편하고, 심기가 불편하니 짜증이나 불평을 하게 되고, 불평이 많아지면 인간관계도 틀어지고 육신도 병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이것이 영적인 악순환입니다. 시편 37:7-8절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그런가 하면 시편 147:1-3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고통 중에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송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주어지는 세마포 옷을 입혀주십니다. 세마포 옷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셨는데, 성도들의 옳은 행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천국 혼인잔치의 초대장이 주어집니다. 본문 다음의 9절입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 하기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송의 삶으로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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