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함정을 피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1,744회 작성일 2019-01-29 17:44
*** 함정을 피하십시오. / 로마서 9:30-10:4
 
 로마서 9:30-10:4,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금 2019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에 대한 말씀을 계속 살피고 있습니다. 첫 주일에 ‘삶을 조각하십시오.’ 두 번째 주에 ‘분별의 은사를 구하십시오.’ 지난 주일에는 ‘공의롭게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함정(陷穽, deadfall)을 피하십시오.’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함정 이란 ‘짐승을 잡기 위하여 파놓은 구덩이’도 되고, ‘다른 사람을 어려움에 빠뜨리려는 계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내용은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는 마귀의 계략으로서의 함정입니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는다.’)라고 했듯이 마귀의 계략을 알고 나 자신의 신앙을 바르게 세우면 결코 위태롭게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정을 피하는 것이 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이 되겠습니까? 이는 당연히 마귀의 계략에 빠져서 죄를 범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33-34절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이렇게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 성도를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따르게 되면 함께 낭패를 당합니다. 마태복음 15:1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그래서 마귀의 함정을 피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1장부터 11장까지를 교리와 신앙의 이론적인 설명이며, 12장부터 끝까지는 구원받은 성도의 실제적인 삶의 부분을 말씀합니다. 본문말씀은 신앙이론의 마지막 부분으로써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인 이스라엘 자손들과 이방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선민이며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약속을 받은 백성입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생명에 대한 약속도 소망도 없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이 사실을 잘 표현합니다. 2:2-3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러한 상태가 바로 이방인들의 영적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보장 받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오히려 대적하여 하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이스라엘의 가지를 꺾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잘려나간 빈자리에 이방인들을 접붙이셨습니다. 11:17-21절입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의 일부가 잘려져 나간 이유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지 않고 자신의 뜻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차려 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선민의 자리를 이방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마귀의 함정에 빠져서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설명이 본문 30-33절입니다.
 
※ 우리가 피해야 할 함정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에서 나타낸 대표적인 함정이 ‘교만과 불순종’입니다. 본문 2-3절을 봅시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열정적으로 율법을 지키려했고, 그것이 하나님께 열심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입니다. 예전에도 한 번 했던 예화가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이며 동시에 설교자이자 찬송가 작시가인 ‘호레이셔서 보나(Horotius Bonar, 1808-1889)’목사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꿈을 꾸었습니다. 저울을 든 천사가 나타나서 보나 목사의 신앙열심을 저울질하더니 “당신의 신앙 열심은 백근이오.”라고 하면서, 그 열심을 분석한 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나타내는 열심 14근, 파당적인 열심 15근, 명예 때문에 나타내는 열심 22근,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내는 열심 23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은 26근.’
잠에서 깨어난 보나 목사는 자신의 열심이 얼마나 인간적인 발상에서 우러난 것인가를 깊이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보나 목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내 삶의 방향을 많이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자손들도 자신들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까지 있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3절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만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이처럼 마지막 때가 되면 마귀의 함정에 빠져서 ‘자기도취적인 신앙인’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치 사울이 스데반을 죽이는 일을 합당하게 여겼던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 일을 했던 바울이 지금 그런 사실을 로마교회와 지금 우리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신앙생활은 그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이기심 때문인지, 파당적인 열정인지, 명예나 권력 때문인지, 사람 때문인지, 돈 때문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인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 성경말씀 가운데 기록된 유명한 몇 사람의 기록을 함정의 유형에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 자신은 혹시 이런 함정에 빠져 있지 않은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그 이름으로 안다고 하신 가장 위대한 인물인 모세를 봅시다. 모세는 하나님께 인정받아 자신의 민족을 인도한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하지만 그도 두 번 함정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10-11절을 봅시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영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은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거절합니다. 4:10절을 봅시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3절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6:12절,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30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하나님께서 화를 내실만도 하시지요? 그리고 민수기 20:10-12절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모세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사정만 생각하면서 불순종 했고, 화가 난다고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고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물을 낸 것처럼 순간적으로 교만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일을 하라고 할 때에 모세처럼 자신의 생각만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역하지는 않습니까? 또한 화가 난다고 마음대로 말하지는 않습니까?
 
다음으로는 거짓 선지자들의 경우입니다. 열왕기상 22:10-12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이처럼 400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서 전쟁을 이기게 하신다.’고 예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실이 19-23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들을 모아놓고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라고 하시자 어느 천사가 “내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즉 거짓 예언으로 아합을 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선지자들은 마귀의 거짓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깨어있지 않으면 이렇게 거짓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신천지를 비롯하여 마귀의 거짓 선동이 온 나라를 덮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빠지고 있는 함정을 봅시다. 마태복음 26:14-16절입니다.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를 주려느냐?’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제자회의 회계를 맡고 있던 가룟 유다는 돈의 함정에 빠져서 결국 자신의 스승을 노예 값인 은 30에 팔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은혜가 넘치는 초대교회에서 돈에 자유롭지 못하여 돈 얼마를 감추고 전부라고 하나님께 거짓말했다가 부부가 모두 죽었습니다. 이들만 아니라 그 당시의 바리새인과 제사장 무리들도 세상 재물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마태복음 13:22절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경고하십니다. 여러분은 돈이나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습니까? 마귀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나 나누는 것을 아깝게 여기도록 함정을 팝니다. 이 함정에 빠지면 부자 관원 청년처럼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도 죽음의 두려움이 함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하면서까지 부인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자주 직면하게 되는 어떤 함정이 있습니까? 마귀의 권세와는 맞서 싸워야하지만 함정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합니다. 이야기 하나로 결론을 맺겠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연입니다.
 
어느 음식점에서 영업을 시작하려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어려 보이는 한 여자아이와 앞을 보지 못하는 어른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음식점 주인은 그들의 행색만 보고 밥을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영업개시를 하지 않았으니 다음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 못 보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앙에 자리 잡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오늘이 우리 아빠 생신인데요. 빨리 먹고 갈게요. 죄송해요”
그제야 음식점 주인은 얻어먹으러 온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그래도 행색이며 뭐며 영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렇지만 할 수 없이 아이가 주문한 국밥 두 그릇을 갖다 주고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아이는 “아빠! 내가 국그릇에 소금을 넣어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과 함께 자기 국그릇에 있는 고기를 떠서 앞 못 보는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서 아이는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주인아저씨가 빨리 먹고 가야 한 데 어서 밥 드세요. 내가 김치 올려줄게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은 조금 전 했던 행동이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세상도 교회도 이처럼 눈앞의 돈과 세상적인 부귀영화에 마음이 팔려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겉으로는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섬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는 헛된 신앙인이 오늘의 교회를 채우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사탄과 그의 수하 마귀들, 그 추종자들이 그리스도인을 미혹하는 함정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지피지기(知彼知己), 자신의 신앙의 초점을 맞추고 마귀의 함정을 파악하여 능히 마귀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믿음의 군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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