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믿음의 눈이 삶의 능력입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477회 작성일 2019-08-29 14:16
*** 믿음의 눈이 삶의 능력입니다. / 마가복음 9:14-24
 
 마가복음 9:14-24,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 들어가는 말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많습니다. 저는 늘 하는 말처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쉽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억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합니까? 이 시간에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주제도 역시 신앙생활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그리스도인에게서 가장 많이 거론되기도 하며 필요한 것이지만 실상은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2절에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라고 하셨으며, 또한 로마서 14:23절에서는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하십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본이며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이 단순히 입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이나 의혹이 단 1%도 들어있지 않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온전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능력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리고 요한복음 14:12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이런 믿음은 지금처럼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받으실 고난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황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특별한 시간을 마련하셨습니다. 6일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헬몬 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을 산 아래에서 머물도록 하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사람을 데리고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산에 오르신 이유는 6일 전에 예수님께서 받으실 십자가 고난을 이야기 했을 때에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확신 있는 믿음을 세우시기 위하여 세우신 특별한 조치였습니다. 세 명의 제자들은 헬몬 산에서 변모되신 예수님의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까지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성으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곳이 너무 황홀하고 좋아서 거기에다 초막을 짓고 머물러 있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산 아래에서는 시끌벅적한 문제가 벌어져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산 아래에 남아 있던 9명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지요. 그때 벙어리 귀신이 들려 고생을 하는 아들을 가진 한 아버지가 병 고칠 소망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아이의 병을 고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경꾼들은 더 많아졌고, 서기관들은 무능한 제자들에게 질문공세를 펴고, 제자들은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그곳에 도착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놀라며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병든 아이의 아버지가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과 둘러선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에 대하여 본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지금 믿음의 중요성과 그 믿음이 어떤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뻐드렁니 때문에 놀림을 많이 당하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8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9살 때에는 남동생이 죽고, 다음 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에게는 불행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원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가 되어버린 어린 소녀는 어렵게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을 가졌습니다. 여섯 명의 자식 중 한 명이 요절했을 때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랑해줘야 할 아이가 아직 다섯이나 있어.’라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아직 한창 젊은 39살의 나이에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편을 끝없이 독려하고 현명하게 내조하여 남편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32대)인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Franklin Delano Roosevelt)’의 부인이며,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영부인입니다.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일어서는 힘을 세상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합니다. ‘극복력’, ‘탄성’ 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강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의 여러 요인들에 의하여 염려와 근심과 절망이라는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제자인 베드로가 이런 변화를 겪을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31-32절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 말씀은 믿음의 회복을 위한 예수님의 배려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리 믿음을 장담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의심하고 염려하고 절망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원한 절망에 빠져버리듯이 믿음의 회복탄력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즉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내 삶의 모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을 실패하여 물에 빠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들판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하신 후, 제자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따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한 밤중이 되어 거친 바람으로 제자들이 괴롭게 노 젓는 것을 아시고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탄 배로 향하셨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두려워할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했고, 예수님께서는 “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대담하게 물 위로 뛰어 내려 몇 발자국 걸었을 때에 거친 바람을 보고 그만 두려워하여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지게 된 이유는 ‘환경에 대한 두려움’ 즉 ‘불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환경을 보다가 불신에 빠지게 된 원인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세상을 바라보면 그 믿음이 사라지고 염려와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솔직히 지금 여러분의 수중에 돈이 없고, 먹을 양식도 없는데 ‘주님께서 주실 것이니 예수님만 믿고 바라보십시오.’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전에도 들려드렸던 고아들의 아버지이자 기도의 사람인 ‘조지 뮬러’ 목사님에 대한 일화입니다. 뮬러 목사님은 일생 동안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고아들을 위해서는 많은 돈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우리 고아들이 먹을 것이 없습니다.”라고 요청한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았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살았기 때문에 아무런 염려나 갈등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고아원에 양식이 모두 바닥이 나서 점심 끼니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아원의 총무는 뮬러 목사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 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전과 같이 식사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식당에 앉히고 배식 준비를 하라.’
고 했습니다. 이제 식사 시간이 다가 옵니다. 지금쯤은 배식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음식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총무는 다시 목사님에게
‘기도만 한다고 되겠느냐? 음식을 준비해야 되지 않겠느냐?’
는 투로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테니까 기다리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 고아원 정문으로 트럭이 들어왔습니다. 그 트럭은 빵을 가득히 싣고 있었으며 ‘배달처의 사정으로 빵을 배달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고아원이 있어서 들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빵을 드려도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빵은 점심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식탁에 올랐습니다. 그 이후 믿음이 없었던 총무는 해임되었습니다.
 
저도 이런 극적인 은혜를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이런 은혜를 경험하면 주님을 더 깊이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험적 신앙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조금 전에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만 헤아려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았던 이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귀신들린 아이를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과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7:19-20절을 봅시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이 없으면 능력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세상사는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믿음이 작아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까지도 불신에 빠졌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좀 도와주십시오.”라는 어정쩡한 마음 자세로 기도합니다. 이처럼 불신의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모든 환경을 다스리시며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제자들이 믿음도 작았지만 그나마 기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아무 것도 아니고, 기도 없이는 믿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어둡고 답답한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뿐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환난의 때를 이길 수 있는 길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뿐입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은 ‘어떻게 이런 것까지…’라고 할 만큼 사실적이고, 소박하고, 세세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 분은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열쇠를 잃어 버렸을 때에도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어린 고아에게 먹을 것이 필요합니다. 창고의 열쇠를 찾게 해주십시오.”그리고 손으로 창고바닥을 더듬어 보니 열쇠가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꿈속에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옵소서. 내가 혹시 밤중에 생명이 떠난다 할지라도 주께서 나의 시체를 향기롭게 하시고, 내 얼굴이 너무 더러워 보이지 않게 하옵소서. 꿈속에서도 주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자신의 욕심이라고는 들어있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이런 기도가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곧 삶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며, 죄가 사하여지며,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가족들과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구하십시오. 이것이 마지막 때에 생명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세상을 이기는 진정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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