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품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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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8-20 14:41
***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품 / 요한계시록 2:8-11
요한계시록 2: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 들어가는 말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적합한 개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삼인삼색(三人三色)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성격이 있고 개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성격이나 개성이 따로 있을까요?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사건들과 인물들을 죽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단서를 하나 찾았습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중 일부인 마태복음 24:10-13절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마지막 때의 세상적인 혼탁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확신과 결단과 인내가 요구 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3:14절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이 말씀도 역시 동일한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 신속한 결단, 끝까지 싸우는 인내를 이루는 우직한 성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성격은 요한계시록 3:16절에서 말씀하시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함입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이와 같았습니다. 열왕기상 18:21절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여러분은 자신의 영적인 성격이나 개성이 어떠하다고 생각합니까? 아침저녁 달라지는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마음은 아니겠지요?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들인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두 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지 않은 두 교회 중 한 교회이며, 예수님으로부터 ‘신실함을 인정받은 교회’입니다. ‘서머나’는 기원전 4세기에 재건된 터키의 아름다운 고대도시입니다. 현재에는 터키의 이즈미르 주(州)에 속하며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은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이즈미르’시입니다. 인구는 2000년 당시 225만 명에 이르는 대도시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협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첫째 위협은 ‘우상숭배’였습니다. 두 번째의 위협은 ‘로마 황제 숭배의 최고 중심지’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위협은 ‘거대한 유대인 집단’이었습니다. 특히, 서머나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살시키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서머나에는 유명한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주후 156년 2월 2일 사도요한의 제자로서 서머나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인 폴리캅 감독입니다. 이처럼 서머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나 교회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죽기까지 믿음을 지킨 신앙의 영웅들로 가득했습니다. 가난하고 핍박과 고난이 많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우직한 성품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과 같은 우직한 성품이 오늘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끝까지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오래된 난센스 퀴즈(nonsense quiz) 하나 내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죽기를 각오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강한 사람이 아니라 부드럽고 사랑 가득한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강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집니다. 세계의 역사 속에서도 기독교는 항상 핍박과 박해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쫓겨 다니고, 불이익과 고통을 당했던 나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외적이고 육신적인 환경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적 즉 영적으로는 세상의 그 무엇도 꺾을 수 없는 강인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죽음과 고통과 불이익을 불사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영의 생명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속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신속한 결단으로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싸우는 우직한 성품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히브리서 11:38절에서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1900년도에 신중하면서도 우직한 미국인 건축가가 있었습니다.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ioyd Wright. 1867~1959)’라는 건축가입니다. 그는 미국 건축에서 창조성을 가장 풍부하게 발휘한 천재로 인정받았으며, 라이트의 ‘프레리 양식’은 20세기 주택설계의 기본이 되었던 유명한 건축가입니다. 그가 일본 동경에 호텔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지진이 잦은 이 지역에 호텔을 짓는다는 것은 1890년 당시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이 호텔을 짓겠다고 했을 때 일본 사람들은 야유와 조소를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진에 버틸 건물은 없다. 불가능한 일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라이트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야유 속에서도 주도면밀한 건축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지하 2.5m에 분포한 넓은 점토(粘土)층이 지진의 충격을 흡수하도록 특수한 공법을 사용하여 건축했습니다. 이 호텔이 5성급인 ‘임페리얼’호텔이었고, 무려 4년이라는 공사 기간이 소요됐지만, 건물이 완공된 후에도 라이트의 특수공법을 인정하는 일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1952년 도쿄에 사상 최악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건물이 나무토막처럼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그 비참한 폐허에서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는 건물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라이트가 건축한 지금도 운영 중인 임페리얼 도쿄 호텔(Imperial Hotel Tokyo)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영적인 신념 즉 영의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도록 중요합니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조롱과 야유 정도로 마음이 바뀔 정도가 되면 지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옛 말에도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주님을 따르기 위한 중요한 결단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25-33절에서 ‘제자가 되는 길’에 대한 예수님의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길을 말씀하시면서 두 가지의 짧은 비유를 하셨습니다. 28-32절을 봅시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 두 비유는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다른 이야기여서 ‘쌍둥이 비유’라고 합니다. 이 비유의 의미는 ‘신중하게 결정하고 확실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끝까지 못 갈 것 같으면 애당초 시작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다면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본문 10절을 봅시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가는 길에는 환난이 따르겠지만 끝까지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고 있는 이 길입니다. 이 길을 끝까지 지킨 사람에게는 “생명의 관을 줄 것”이며, 본문 11절에서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 길을 포기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지켜갑시다.
※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영적인 성품은 올곧은 성품입니다.
말씀 시작 부분에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 신속한 결단, 끝까지 싸우는 인내를 이루는 우직한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가야 할 생명은 세상의 것이 아닌 영원한 영적인 것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본문 9절을 봅시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적으로는 궁핍했고 고난이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비방 즉 유대교의 훼방이 극심했습니다. 하지만 서머나 교회를 괴롭혔던 그 환경은 세상의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보실 때에는 오히려 그들은 부요했으며, 사탄의 세력에 무릎 꿇지 않은 영적으로 올곧은 삶이었습니다. 즉 세상적으로는 괴로움과 궁핍이 심하고 사탄의 훼방이 극심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하고 튼튼했습니다. 이 길과 이 삶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생명의 길이며 영적인 성품입니다. 서머나 교회 다음에 나오는 버가모 교회에 하신 말씀에도 “네가 어디서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종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2:13)고 하셨습니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는 말씀은 ‘사탄의 활동 본부가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처럼 버가모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렇게 혹독한 환경 속에서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할 때에 조차도 버가모 교회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주변의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성품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성품입니다.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市에 위치해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USMA / 별칭, 웨스트 포인트, West Point)’가 있습니다. 이 미육사는 1802년 사관학교로 설립되었는데 이 사관학교에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매주일 사관생도들이 예배 할 때에 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주여! 힘든 정의를 택하고 쉬운 불의를 택하지 않게 하옵소서. 온전한 진실을 구할 수 있는데도 절반 진실에 만족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에게 강한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에 충성하게 하시며, 악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게 하소서. 진리가 무너질 때 두려움이 없이 대항하게 하소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영적인 군사’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디모데후서 2:3-4절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군인의 가장 큰 특징은 ‘명령복종’입니다. 그 명령이 비록 죽음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군인은 복종합니다. 그리스도인을 ‘예수님을 따르는 영적인 군사’로 표현하는 것도 예수님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적인 군사들은 예수님의 명령 외에는 결코 따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0:4-5절에서 말씀합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적인 군사로서 세상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움직임이 부산합니다. 자국(自國)의 이익을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고 테러와 전쟁도 불사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처럼 이권을 지키려는 집단들이 모여서 주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영적인 성품을 점검하고 굳게 세워가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26:3절에서 약속하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성품으로 평강으로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삶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