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을 잊으면 고통이 열립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3,563회 작성일 2019-07-09 22:18
*** 하나님을 잊으면 고통이 열립니다. / 이사야 1:2-9
 
 이사야 1:2-9,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참외밭의 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 들어가는 말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반포지효(反哺之孝)라고도 하는데, 직접적인 뜻은 ‘먹이를 돌려드림으로써 은혜에 보답한다.’는 것입니다. 즉 ‘깊은 효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들이 어릴 때는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으며 자라지만 자란 후에는 각자의 길을 갑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줌으로써 키워 준 은혜에 보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포보은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조선시대의 가객(歌客)이었던 박효관이 이 말로 지은 시조가 한 편 있습니다.
“뉘라서 까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예로부터 까마귀에 관한 전설이나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옵니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도 한 토막 들어보십시오. 이 이야기는 ‘내 고장 전설’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옛날 임지로 취임해오던 밀양부사가 아이들에게 잡혀 죽게 된 까마귀 새끼를 살려 주었습니다. 부사가 취임하여 1년이 지난 여름날 밀양 성내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을 잡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사는 단서를 찾으려고 관내를 암행하다가 까마귀 두 마리의 인도로 이름 없는 정자에서 하룻밤 쉬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까마귀를 쫓아가 본 곳에서 가매장된 시체와 말채 한 개를 찾았습니다.
부사는 고을 내외의 마부들을 모아 잔치를 벌이고, 말채를 한 장소에 모은 뒤 가무를 즐기게 했습니다. 부사는 마부들이 모아놓은 말채에 무덤에서 주워 온 것을 섞어 두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마부들이 돌아갈 때 유심히 살펴보니 범인은 자신이 가져온 말채는 잊고 익숙한 것, 즉 무덤에서 가져온 말채를 집어 들었습니다. 이렇게 범인을 체포한 부사는 천하의 명관으로 이름이 나게 되었습니다. 부사는 은혜를 갚은 까마귀의 의리를 기리기 위해 그 정자를 ‘오의정’이라 이름 짓고 현판을 올리게 했습니다.
 
까마귀 이야기를 서두에 한 이유는 적어도 우리는 ‘이 까마귀만도 못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들어보셨으니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짐작하시겠지요?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택하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일마다 때마다 그 크신 은혜를 베푸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헛된 세상의 것들을 따라가 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이 이 성경시대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더 가슴이 아픕니다(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이 이방인보다 못하게 텔아비브는 세계 제일의 동성애 도시가 되었고, 얼마 전에는 동성애자가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최초의 동성애 랍비까지 임명되었음.). 그러면 ‘이런 상황이 이스라엘에만 있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까마귀보다 못하게 오히려 까마귀들의 비웃음을 살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는 시기와 남 유다가 멸망하기 이전에 활동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에 전했습니다. 1절에 등장하는 네 명의 왕, 웃시야(남 유다 10대), 요담(11대), 아하스(12대), 히스기야(13대)가 통치하던 시기는 B.C787-B.C697년까지 90여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네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60여 년간 남 유다에서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니 본문말씀은 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어린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 유다가 B.C586년에 멸망당했으니 아직은 멸망 때까지 150여년이 남아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탄식하시며 경고하시는 이유는 남 유다가 멸망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본문 5-6절에서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고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의 백성들은 이 사실을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패망할 줄을 안다면 어찌 그 길을 계속 가겠습니까?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시대상황을 이렇게 읽고 있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도 자신들이 처한 다급한 상황도 전혀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과의 변론 자리에 초대까지 하셨습니다. 18-20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는 유다 백성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신 것입니다. 즉 ‘아직은 남 유다가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살기 위하여 돌이키라.’고 경고하십니다. 즉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돌이키면 살게 될 것이고 거절하고 여전히 세상에 파묻혀 살면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패망해가는 한민족을 살려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불과 2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별로 가망이 없었습니다. 노론, 소론, 남인, 북인 사색당파로 집안싸움을 일삼고, 쇄국정책으로 말미암아 발전하는 세계와도 동떨어져 양반걸음에 천자문이나 읽던 나라였습니다. 이런 우매한 백성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섭리로 1875년 고종 1년에 일본 군함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복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중국 선교사로 있었던 Horace N. Allen 선교사가 1884년 9월 20일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알렌은 한국에 온 첫 공식 선교사였으며, 이후 광혜원이라는 병원을 개설하여 본격적인 복음화가 시작되었습니다(물론 이 보다 훨씬 전부터 복음화가 시도되었습니다.). 이 때로부터 지금 대한민국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세계 20대 강국의 자리에 오른 것은 불과 이후 135년이었습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한민족을 사랑하셔서 이 마지막 때의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민족은 물론 이 나라의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사회주의로 전락해가고 있고, 이 나라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다원주의 신앙에 빠져서 우상숭배자들과 손을 잡았습니다(WCC, NCCK, WEA, 가톨릭). 본문 4-6절을 봅시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 나라의 교회들이 우상화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들도 모르게 돈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가정이나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일터와 직장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 우상임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교인들은 자신이 우상숭배자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잊어버리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버리시며 그 순간부터 삶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사무엘이 마지막 설교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을 깨우치면서 이런 내용을 말합니다. 사무엘상 12:9-10절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니 그들이 저희를 치매,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이 내용은 사사시대의 상황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잊고 세상을 따르고 우상숭배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도 다른 나라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호세아 4:6-7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사람들은 고통스러울 때는 하나님을 찾지만, 삶이 조금 회복되고 살만하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 즐거움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이런 간사한 인생의 마음을 일컬어서 “조변석개(朝變夕改,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침.’/ 정책이나 계획, 마음 따위가 수시로 바뀌는 모습. /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라고 했으며,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꼬집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까? 아니면 인생이 바빠서 까마귀보다 못한 배은망덕(背恩忘德)하지는 않습니까? 이사야 31:1-2절을 봅시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도 아니하나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애굽으로 표현한 말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따라가면 고통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신명기 30:19-20절을 봅시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본문말씀에서와 같이 이 말씀에서도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라는 재판관적인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즉 살기 위한 길은 ‘오직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선언하십니다. 요한복음 15:5-6절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하나님을 찾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잊으면 고통스러운 삶이 열립니다. 이 나라가 사는 길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이 나라의 교회가 사는 길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 우리가 사는 길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성 프랜시스가 자기고향에 있을 때 자기 하인의 행동에서 깨닫게 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루는 자기 집 하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모습을 보다가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발견했습니다. 큰 두레박을 우물에 내려 물을 가득히 담은 후 끌어올릴 때면 항상 조그만 나무토막 하나를 물통 안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궁금해진 프랜시스가 하인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네, 주인님, 물을 퍼올릴 때 나무토막을 물통 안에 넣으면 물이 잘 흔들리지 않아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답니다.”
하인의 설명을 들은 프랜시스가 친구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친구여,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 마음의 물통을 가지고 있는가? 두려움과 고통으로 흔들리고 절망에 부서지는 마음, 그러나 거기에 십자가라는 막대기를 던져보게.”
 
오늘은 맥추감사절로 지키던 기간입니다. 우리교회가 특별하게 감사절로 부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일의 삶이 감사절이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합니까? 만일 여러분이 감사절을 지키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삶에 마음이 흔들려서 까마귀보다 못한 하나님 은혜에 배은망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막대기,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막대기를 넣어두면 육신의 삶 때문에 마음이 잘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쁘게 섬겨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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