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누리는 인생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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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6-18 14:47
*** 즐거움을 누리는 인생 / 로마서 12:3-13
로마서 12:3-13,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 들어가는 말
라이프스타일(lifestyle, 삶의 방식, 생활양식)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사람은 저마다의 생활양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활양식이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일벌레처럼 일만하는 스타일, 마지못해 사는 비관형,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고 하듯이 즐기는 스타일, 이런저런 생각 없이 사니까 사는 무관심형,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사는 긍정형 등등. 어떤 스타일입니까?
크리스천 잡지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에는 낮 열두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초라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교회에 들어갔다가 2,3분이 지나면 다시 나와서 어디론가 가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노인에 대하여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인에게 그 노인을 만나서 사연을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관리인이 교회에서 나오는 노인에게 왜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나요? 기도하려고 왔지요.”
“할아버지는 기도할 만큼 오랫동안 교회에 머무르지 않으셨어요.”
“나 참, 난 오래 기도할 줄 몰라요. 날마다 열 두 시만 되면 이리로 와서 ‘예수님 나왔어요. 나, 짐이에요.’ 하는 거요. 그러다가 그냥 간단 말이요. 그저 짧은 기도죠. 그래도 들어주실 것 같아서요.”
얼마 후, 노인이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입원해 있는 병동에 놀라운 감화를 끼쳤습니다. 투덜대기만 하던 환자들이 즐거워하게 되고, 가끔씩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을 담당하는 간호사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다들 그러는데 병실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진 것이 할아버지 덕분이라더군요. 할아버지는 항상 즐거우시다면서요?”
“그래요 간호사 선생, 나는 그렇고말고. 그런데 그것은 내 방문객 덕분이야. 날마다 그 분이 나를 기쁘게 하거든.”
간호사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노인은 친척도 없어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으며 늘 혼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 궁금해진 간호사가 물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방문객이라뇨? 그 방문객은 언제 오나요?”
“날마다 오지, 암 그렇고말고. 날마다 열두시면 내 침대 저쪽에 그분이 와서는 서 계신단 말이오. 내가 그분을 쳐다보면 그분은 싱긋이 웃으시면서 ‘짐, 날세. 나, 예수네.’ 하지 않겠어.”
이야기만 들어도 그 광경이 상상되고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 같지요? 이 이야기 속에는 깊은 신앙의 이야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깊은 신뢰가 느껴집니다. 이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분량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인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즐거움을 누리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15:1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가진 사람들이며, 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들인데 날마다 즐겁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십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8:10절에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로마서는 1-11장까지에서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교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9장부터 11장까지는 교리 부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이방인의 관계를 비롯한 믿음의 부분을 기록했습니다. 아마도 이 편지를 읽을 로마의 이방인들이 자신의 영적인 위치를 깨닫기를 바라고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12장에 들어오면서 다시 8장에서 이어지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신앙적인 삶’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2장에서 시작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삶은 15장까지 이어집니다.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 합당한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이 본문에서 가장 중심된 구절이 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생활에서 분수에 지나치지 않는 적절한 범위 안에서 신앙적인 활동하라.’고 하십니다. 한자어로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라는 말처럼,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적, 육적인 분량 안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즐거움은 어떤 것입니까?
‘즐거움’ ‘기쁨’ ‘감사’ 이런 삶의 긍정적인 형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영적 삶의 요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즐거움과 기쁨에도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즐거움은 반드시 즐거움을 제공하는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가족 중의 경사가 있다든지, 좋은 자동차나 원하던 것을 얻었다든지 하는 즐겁게 하는 요소가 있어야 하며 이런 즐거움은 제한적입니다. 즉 즐거움의 요소가 사라지면 즐거움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즐거움은 세상의 어떤 환경이나 조건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22절에서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시며 15:11절에서는 이 기쁨의 출처를 분명하게 밝혀주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즉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즐거움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내면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은 외적인 환경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24절에서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본문 12절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삶의 자세를 가르치면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말할 수 없는 이런 즐거움이 있기는 합니까? 있다면 이런 즐거움을 어떻게 얻습니까? 여러분, 혹시 세상적인 즐거움을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즐거움은 세상적인 소유나 성취나 만족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 12:43절에는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봉헌할 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이들의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즐거움입니다. 전도서 5:19절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즉 인생이 재물과 부요함을 누리게 하시는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 즉 세상적인 재물이나 풍부함이나 바라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나 영적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라는 즐거움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해답은 이미 앞에서 나왔습니다. 요한복음 15:9-11절을 봅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려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 살면 됩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12절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사랑의 삶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즐거움을 누립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린다는 이 기쁨과 즐거움이 세상적인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소유하는 것 즉 가지는 것과 누리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아시지요?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것으로 모아두고 쌓아두는 것입니다. 반면에 누린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향유(享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벌어서 저축해두면 쌓아두고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돈으로 문화생활을 즐긴다든지 여행을 한다든지 봉사생활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누리는 것입니다. 또 한 예로, 자신에게 좋은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만 있다면 그저 재능을 소유한 것입니다. 반면에 그 재능으로 섬기고 봉사하고 나누는 것은 누리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사랑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그 은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에서도 4-8절까지 은사에 대하여 말씀하며 9-13절까지에서 실질적인 활용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5:14-30절에서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재능은 반드시 활용하여 이익을 남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21절과 23절에서 잘 활용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반면에 주어진 재능을 활용하지 못하고 소유만 했던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처럼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을 사랑으로 덧입혀서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활용한다는 것은 세상에 영향력을 끼쳐 열매를 맺는 것인데 이것이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라고 표현하십니다. 이렇게 잘 활용하여 많은 영향력을 끼쳐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5:8절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뿐만 아니라 본문말씀에서는 많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본문말씀에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내용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은사를 잘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앞쪽의 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으로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이를 세심하게 잘 살펴서 생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본문 3절에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즉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교훈합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지혜롭게 잘 사용하라고 하시며,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신앙생활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분량에서 지나치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분량까지 이르게 되면 오히려 자신에게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 15:13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살아도 한 평생이요,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아도 한 평생이며, 기쁘고 즐겁게 살아도 한 평생입니다.여러분이 느닷없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수십억 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선물 받았다면 아마 잠도 제대로 못 자도록 기쁘겠지요. 우리는 이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원한 소망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그리스도인인데 즐겁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주님으로 인한 즐거움으로 얼굴이 빛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나날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