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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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02 14:16
*** 사명자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 창세기 28:10-19
창세기 28:10-19,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사명자입니까?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드시지요? 흔히 그리스도인들을 사명자라고 부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명(使命)이라는 말은 ‘사신이나 사절이 받은 명령’을 의미하는데, ‘맡겨진 임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보편적으로 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말인데,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은 ‘소명(召命)’입니다. 소명이라는 말은 보편적인 의미는 ‘신하를 부르는 왕의 명령’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특별하게 사용하는 의미는 ‘어떤 특수한 신분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도록 신의 부름을 받은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사도로 삼으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소명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22-24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이 시간에는 사명 자에 대하여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사명 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명 자로써의 담대함과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야곱이 형인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부모가 있는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던 도중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쌍둥이 형인 에서를 교묘하게 속이고 장자의 권한과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다가 에서의 분노를 쌌습니다.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어머니인 리브가는 야곱을 자신의 고향인 하란으로 피하도록 야곱을 보냅니다. 두려움과 쓸쓸함으로 홀로 길을 가던 중에 날이 저물어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날이 저물자 야곱은 비박(菲薄) 할 수 있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길쭉한 돌 하나를 베게삼고 누웠습니다. 언뜻 잠이 들었는데 꿈에 땅에서 하늘까지 닿은 긴 사닥다리가 보였습니다. 그 사닥다리에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고, 그 끝에는 하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면서 떨며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야곱은 자신이 베게로 삼았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야곱은 그곳을 이름 하여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보시면서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낯선 땅을 여행하던 야곱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꿈을 통하여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할아버지인 아브라함과 아버지인 이삭의 대를 잇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이며 사명자라는 사실을 일깨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다 이루기까지 야곱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실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궁극적으로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약속입니다. 이 구원의 약속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삭, 야곱, 요셉을 이어 사사들과 선지자들 다윗과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과 믿음의 선조들로 이어서 우리들에게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셔서 그 약속이 이루는 그날까지 이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이어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믿음을 지키며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의 눈은 사명 자에게로 향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이 사명 자에게로 향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명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11:11-12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또한 역대하 16:9절에서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부모의 집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갈 때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경 속의 인물들에게만 주어집니까?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사도행전 27:23-24절을 봅시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자를 다 네게 주셨다.’하였으니” 이 말씀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고소로 잡혔을 때에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결국 지중해를 거쳐 로마로 가던 도중에 배 안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폭풍으로 14일 간이나 먹지도 못하고 고통스럽던 276명의 항해자들에게 바울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니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 시민과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바울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폭풍이나 어려운 환경이 닥쳐도 바울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 장인 28:1-6절을 봅시다.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지만 어떤 해로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6:17-18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 말씀대로 사도 바울은 독사의 해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멜리데 섬의 모든 병자들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왜 이런 능력이 일어났습니까? 바울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또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명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사명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사명자로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관심을 가지시고 살피심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명자에게 반드시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본문 13-15절을 봅시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과 아버지인 이삭에게 대를 이어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약속이 야곱에게 주어져서 약속의 대를 이어가겠다고 하십니다. 그 약속은 가나안 땅 상속과 야곱의 후손이 땅의 티끌같이 번성하리라는 것과 땅의 모든 백성이 야곱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지금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낯선 땅으로 가는 먼 여행길에서의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을 반드시 이루게 하겠다.’는 보증입니다. 이보다 더 든든한 보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명자의 삶을 사는 사람을 결코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우리를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그 날까지 반드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이 사명을 다 이룰 때까지 항상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매 삶의 순간순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따를 수 있게 됩니다. 누가복음 21:36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그리고 골로새서 4:2절에서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이 외에도 열 처녀의 비유를 비롯한 많은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고 경고하십니다.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행하게 되면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버림받게 됩니다.
어느 스승이 제자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가다보니 길가에 종잇조각 하나가 뒹굴고 있었습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종이를 주워 오라.’고 했습니다. 제자가 종잇조각을 스승에게 내밀자 스승이 물었습니다. “그 종이는 무엇에 쓰던 종이인 것 같으냐?” 제자는 종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종이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풍겼습니다. “꽃향기가 나는 걸 보니 꽃을 쌌던 종이인 것 같습니다.”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습니다. 잠시 후에 길 가에 새끼줄 한 토막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스승은 이번에도 ‘저 새끼줄을 주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번처럼 물었습니다. “그 새끼줄은 어디에 썼던 것 같으냐?” 제자는 새끼줄에서 냄새를 맡고는 “비린내가 나는 걸 보니 생선을 묶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았느냐? 사람의 본성은 본래 맑고 깨끗하단다. 그런데 그가 만난 사람에 따라 축복을 받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한다.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면 뜻이 높아지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하면 재앙이 뒤따르는 법이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꽃을 싼 종이에선 향기가 나고, 생선을 묶은 새끼줄에선 비린내가 나듯 사람은 무엇인가에 서서히 물들어가면서 깨닫기가 어렵고 고치기란 더 어려운 법이란다.”
사람은 모름지기 ‘어떤 것을 따라 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세상의 것을 따라다니면 그의 모습에서 세상의 혼잡한 것만 느끼게 되고, 예수님을 따르면 그의 모습에서 천국의 아름다움과 밝음을 느끼게 됩니다. 로마서 8:5-6절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닮아 가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의 사명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성실하고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명 자가 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관심과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는 복된 생애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