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하나님의 최고의 보답
*** 하나님의 최고의 보답 / 누가복음 6:32-38
누가복음 6:32-38,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길을 돌아보면, 성공적이었습니까? 실망스럽습니까? 아니면 그저 그렇습니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애를 스스로 평가하면서 지나온 과거에 연연해 있음을 봅니다. 즉 자신의 과거 때문에, 지금의 삶에 의기소침해지거나 후회 속에서 사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흘러간 시간이어서 아쉬워하고 연연한다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과거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고, 아무리 최악의 것이었다 해도 지금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3:12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그리고 히브리서 3:13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이 말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훌륭했느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는 미래는 자신의 과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의해 좌우됩니다. 비록 지금까지는 스스로 보기에도 ‘하나님께 보상을 받기는커녕 징계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지라도, 지금부터 잘하면 그 행한 일을 하나님께 인정받고 보답받게 됩니다. 옛말에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라는 말이 있지요. 그러므로 지금까지 잘못했거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주님께 자신의 삶을 맞추어가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 중에서 비슷한 주제를 모아 놓은 말씀입니다. 그 주제는 ‘원수를 사랑하며,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라.’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앞부분의 27절부터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27절부터 34절까지에는 마태복음 5:38-48절에 나오는 내용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원수에 대한 사랑’이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원수란, 특별히 제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즉, 오늘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이익을 주거나 욕하거나 박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어서 원수에 사랑의 간단한 예가 두 가지 제시됩니다. ‘복수하는 것을 삼가라.’라는 것과 ‘빼앗으려는 자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더 주라.’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자신의 소유를 아낌없이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유에 대한 집착도 역시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말씀에서는 그 사랑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는 내용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최고의 보답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35절에서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놓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라는 것과 38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의 보답이 약속된 행위는 어떤 것입니까?
‘보답(報答)’이라는 것은 어떤 호의적인 일이나 은혜에 대한 갚음입니다. 즉 보답은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본문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용서하라.”, “주라.” 등의 표현이 모두 하나님의 보답이 약속된 행위입니다. 이러한 행위의 특징은 ‘실천적인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앞쪽에 나오는 27-31에는 우리에게는 정말 어려운 의무입니다. 이것은 고결한 삶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거의 행할 수 없는 일로 보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여겨지는 일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일에는 너무나 큰 보답이 약속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시고 또 약속하신 이유를 본문 32-34에서 밝히십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대단한 일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만 있는 일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며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이러한 일은 죄인들도 하는 것입니다. 즉, ‘더 특별하고 뛰어난 일, 죄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악조차도 선으로 갚아야 하며,’ ‘우리에게 이익도 줄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해야 하며,’ ‘너무나 가난해서 다시 갚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라고 결론지으십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말씀에는 별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서 그렇게 살다가는 바보 취급당하기 일쑤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짭니까! 이 명령이 어려운 만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답이 너무나 큽니다. 예전에 대화하던 중에 누군가가 “쉽고 돈 많이 주는 데는 없나?”라고 하자, 다른 친구가 “야, 미쳤다고 쉬운 일에 돈 많이 주겠냐! 그런데 있으면 나 좀 소개해주라.”라고 해서 모두 웃은 적이 있습니다. 노력 없는 성공은 없고, 성과 없는 보답도 없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no cross no crown!(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 라는 말처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12에서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 말씀에서 “침노”라는 단어는 ‘강제로 점령하는’ ‘폭력으로 점거하는’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해서라도 차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해서라도 차지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나타내주는 예수님의 비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3:44-46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나 사회에서의 인간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어려운 일을 자처하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조롱을 받거나 억울한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9에서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0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여러분의 주변에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어려움을 당한 사람 등에게 한 일들이 모두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비로운 일입니다.
예전에 청년들을 지도할 때, 직장에 다니는 청년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회식 때문에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 부서의 회식이 있는 날이면 한 사람도 빠지지 말라는 부장의 엄명에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또 술잔을 받지 않으면 분위기 망친다는 쓴소리를 듣게 되고, 일상 업무에서도 불이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보라고 했습니다. ‘회식에 참석하되,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술 대신에 음료수를 부탁하고, 분위기를 잘 맞춰주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술 취하지 않았으므로 뒤처리를 잘 해 주라.’라고 했습니다. 그 후, 청년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임을 밝혔고, 동료들의 배려로 술 대신 음료수 잔을 받았습니다. 또, 그 분위기도 자기 때문에 망치게 하지 않으려고 그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대신 회식을 마치고 귀가할 때면 뒤처리를 도맡아 했고, 술 취한 상관과 동료를 모두 택시를 불러서 태워 보내고 자신은 마지막으로 귀가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그는 자기 부서의 회식 자리에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고, 부장의 인정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도 역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나타내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 하나님의 최고의 보답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세상 사람이나 죄인들까지도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 아니라, 세상 사람이 하지 못하는 자비로운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36절입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이렇듯 그리스도인이 관대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35절에서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세부적인 사항이 38절에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부으시는 복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즉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우리 삶에 주어지는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말씀합니다. 둘째는 우리를 명예롭게 합니다.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하셨는데, 이 일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세부적인 사항이 37절에 있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9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받는 최고의 칭호이며 보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이 너무 무감각합니다. 이 호칭 안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약속과 특권이 있습니다. 로마서 8:32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모든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며, 혹 구했지만 받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으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2후반절-3절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영광과 의를 위한다면 무엇이든지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과 의(義)’라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과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며,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이 따릅니다.
어떤 사람이 항아리처럼 생긴 깊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그 구덩이에는 돌덩이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남자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상황에 낙심하여 그저 도움의 손길만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자포자기하고 있습니다. 한편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앞에서 본 남자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구덩이에 있는 돌로 열심히 벽을 파서 계단을 만들며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탈출을 시도한 사람은 끝내 구덩이에서 나왔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 구해주기 전까지 여전히 낙망한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말하기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하십니다.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최고의 보답을 믿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최고의 보답을 현실의 생활 속에서와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