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이해가 되십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067회 작성일 2021-01-25 16:27
***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이해가 되십니까? / 누가복음 14:25-35
 
 누가복음 14:25-35,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모든 사물이나 일에는 그 자체의 가치가 있고 그것을 얻으려면 그 가치에 따르는 보상을 해야만 합니다. 혹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체의 가치는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지으려면 그 건물의 가치에 따라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비용을 지불해야 건물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즉 어떤 것을 얻으려면 그에 따른 노력과 보상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는 무리를 향하여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무료급식과 병 고침 등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려면 분명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그 대가(代價)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참새만큼이나 자주 보였던 ‘박새’는 온종일 먹이를 구하여 둥지로 날아가서 새끼의 입속에 넣어주는데, 하루 100회 이상 꽤 많은 시간을 비행한다고 합니다. 겨울 철새로 알려진 ‘기러기’는 북극권에서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면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4만 km 이상의 먼 거리를 날아갑니다. 북극 ‘제비갈매기’는 바람의 이동 경로를 따라 북극의 번식 지역에서 남극까지 대양을 건너 이동을 하는데, 왕복 거리는 연간 약 70,900km에 달합니다. 북극 제비갈매기가 30년 이상 살 수 있다고 가정하면, 평생 달까지 3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날며, 지구를 50바퀴 도는 비행입니다.
 
비단 새들뿐만 아니라 회귀성 어류들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생물들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위해 부단한 노력과 응당한 보상을 지불하며 삽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입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이 소망을 실현하려면 그에 따라 치러야 하는 비용과 보상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비용과 보상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무엇인가 이익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단호하십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말기쯤에 베뢰아 지역에서 가르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며, 기적으로 음식을 먹이시면서 가르치셨고, 귀신을 내쫓으며 불치병을 고치셨습니다. 이러한 이적을 경험하거나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이들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리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참 생명을 얻는 제자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고,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두 가지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망대를 세우는 사람의 비유’와 ‘전쟁에 임하는 왕의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는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어서 ‘쌍둥이비유’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비유를 연속적으로 하시면서 ‘비용과 보상’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합당한 보상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다 하신 후에 다시 마지막으로 ‘소금에 대한 비유’를 하셨습니다. 즉 ‘소금의 목적은 짠 맛을 내는 것인데, 소금이 이 짠 맛을 잃어버린다면 아무데도 쓸 데가 없어 버려진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자가 되기 위한 비움과 헌신이 없는 것은 소금이 맛을 잃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가복음 16:13절을 봅시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비유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세상 것으로 채워진 마음에는 하나님을 모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이해하고 깨닫는 사람들은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이해하고 깨닫습니까?
 
※ 우리는 선택과 순종의 기로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만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의 삶에서 선택과 순종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내 생각과 내 뜻, 세상이 가는 길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 이렇게 일상의 모든 순간이 선택과 순종의 기로가 됩니다. 만일 어떤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따르든지 그에 따라 치러야 할 비용 즉 대가(代價)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짧고 강렬한 두 비유를 하셨습니다. 이 비유들은 읽기만 해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쉬운 내용입니다. 같이 잃어봅시다. 28절부터 32절입니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 비유의 목적은 ‘무엇인가 시작하기 전에 끝까지 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옛말에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고 했듯이, 중도에 하차하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귀중한 생애를 낭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과 결단이 되어 있습니까? 만일 잘못된 것이 있다면 신속하게 돌이키는 것이 낭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작가인, 헨리 누엔(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년-1996년)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일대학의 교수였으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명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1985년 프랑스의 라르쉬의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daybreak)’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나이 54세. 거기서 1년을 머문 후 캐나다 토론토의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장애인을 섬기는 데 여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출세의 길을 버리고 장애인 공동체로 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공부하는 동안 단 한 번도 1등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으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되기까지 출세가도(出世街道)를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서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라는 식물인간이 된 청년을 만난 후 그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
 
누엔 교수는 비록 가톨릭 사제였지만 그가 예수님께로 향하는 정신은 본받을 만합니다. 사람들은 출세의 자리를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탄탄대로가 열린 출세 길을 마다하고 고생을 자초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탄탄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소유물조차 버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의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낮은 자리는 자신의 것을 비워야만 갈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본문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모두 버려야 한다고 하니 걱정이 되지요?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알거지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소유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관심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사람이 치러야 할 비용입니다. 이 비용을 치를 용의가 없다면 주님 따르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터인데,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책망 받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세상의 것을 좋아하고 돈을 더 좋아합니다.
 
이러한 주님의 요구가 부당하게 여겨집니까? 부당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주어진 것들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온 사람을 아무도 없습니다. 욥이 사단의 시기를 받아 모든 소유를 다 잃어버린 후에 욥기 1:2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우리가 그토록 애지중지 하는 모든 재물도 자식도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거두어가시겠다고 하며 우리는 그 어느 것 하나도 남겨둘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인정할 때에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우리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용과 보상을 각오하고 헌신하라고 명령하거나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깨닫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순종의 대가는 우리가 치르는 비용과 보상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일찍 깨달은 사도 바울은 로마서 8: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리고 3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는 ‘당연히 주신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저의 좌우명 중의 하나입니다. 신명기 8:18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기도할 때에 종종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전도서 2:26절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예수님의 시대처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오지만 희생과 헌신만 강요한다고 하면서 떠나갑니다. 이들은 그 희생과 헌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대가가 얼마나 크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도록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고통을 주려고 하신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레미야 29:1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충분한 보상과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역대하 15: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고 하시며,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42절에서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본문말씀 중에서 예수님께서 해주신 쌍둥이 비유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르는 성도가 이러한 계산을 해보고 확신을 가지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세 가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네게 준 시간을 어떻게 썼느냐? 네게 준 돈을 어떻게 썼느냐? 그리고 네게 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느냐?”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남들 앞에 내놓기도 부끄러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작게 여기지 않으시며 비웃지 않으십니다. 작은 것이라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따라서 주님께 하듯 성실하고 진실하게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육신의 생활과 영적인 삶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상을 반드시 이행하실 것입니다. 때때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너무 가혹하게 여겨지고 실천하기 힘 든다고 할지라도 실시간으로 내 삶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매 삶의 순간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기적과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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